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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노 May 02. 2016

안전한 둥지, 그리고 땅콩 너머의 삶

「아기오리들한테 길을 비켜주세요」 -로버트 머클로스키


  스물 한 살의 여름, 한 달간 몽골여행을 다녀온 뒤 기숙사 침대에 누워 룸메이트 친구와 나눈 대화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그 때, 이렇게 말했었다. 

“집에 나를 매어두고 짐을 풀어놓는 삶을 살지 않을 거야.” 집이라는 공간에 짐을 풀어놓는 순간 나의 삶이 그 곳에 붙들려 저당 잡힐 것만 같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스물 몇 살의 나는 순간순간 마음의 소리와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떠나고 옮길 수 있는 유목민 같은 삶이 아름답다 느꼈다. “길 위에서 살거야” 라는 막연한 낭만을 읊었던 때였다.

몽골의 초원, 그리고 유목민들의 이동식 집 게르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동안 내 삶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집이라는 공간의 의미가 달라졌다. 그 전까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집은 엄청나게 중요한 삶의 조건이 되었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가 위험하지 않게 안정적으로 자랄 곳을 찾아야겠다는 갈망과 책임감이 생겼다. 집을 옮겨 다녀야 한다는 불안정함은 모험이 아닌 위험이었고, 워킹맘으로서 나의 직장과의 거리와 교통, 그 외 주변의 환경 등 그 모든 것으로부터 아이가 위협받지 않고 잘 자랄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싶었다.   

      


  

  이 책의 Mallard씨 오리 부부는 둥지를 틀고 알을 낳을 수 있는 안전한 곳을 찾아 이 곳 저 곳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아빠 오리 Mallard씨가 찾아낸 곳마다 엄마 오리 Mallard부인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숲 속엔 천적인 여우가, 물 속엔 거북이 살고 있어서, 어떤 곳은 먹을거리가 없어서, 천적인 여우나 거북이는 없지만 난폭한 자전거가 위협하기 때문이다. 둥지를 틀 곳을 찾아 헤메는 오리 부부가 나와 같았다.

보스턴 공원의 호수에서 쉬어가기로 한 Mallard씨 부부

  

  안정된 주거지에 대한 욕구는 일종의  본능이다. 특히나 이 대한민국에서 ‘집’의 의미는 더욱 남다르다. 평생 내 집 마련을 꿈으로 갖고 열심히 살아온 나의 부모님 세대들에게도, 아무리 노력해도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삶을 계획하고 꿈꿀 수 없는 젊은 세대들에게도 말이다.  

'아기를 잘 키울 줄 아는 엄마오리'와 아기오리들

  우여곡절 끝에 Mallard씨 부부는 보스턴 시민공원의 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마이클 아저씨가 던져주는 땅콩을 먹으며 오리 부부는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운다. ‘아기를 잘 키울 줄 아는 엄마오리’ Mallard 부인은 아기 오리들에게 헤엄과 잠수, 한 줄로 서서 따라오는 법, 자전거와 스쿠터를 피하는 방법도 가르친다. 보스턴 시민공원에 터를 잡고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비록 그 곳 호수 바닥엔 먹을거리가 없지만, 천적도 없을 뿐더러 시민들이 던져주는 맛있는 땅콩이 있다. 그리고 아기 오리들은 보스턴 시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들이 던져주는 땅콩을 받아먹고, 위험한 천적이 없는 호수의 한 섬에서 편히 잠이 든다.   

  실제로 보스턴 시민공원에는 나란히 줄을 서서 걷는 엄마오리와 아기오리들의 동상이 있다고 한다. 이 그림책에서 나를 가장 매혹시킨 장면인 아기오리들이 줄을 서서 위험을 피하고, 엄마오리가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꽥꽥 길을 비켜 달라 외치며 큰 길을 건너는 모습이 진짜 존재할 것만 같다. 보스턴을 직접 가보진 않았지만, 그림책에 등장하는 곳곳이 보스턴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하니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 그림책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질 것이다.

안전한 공원에서의 땅콩을 받아먹는 평온한 삶, 그들은 행복한걸까?

   마지막 장면은 Mallard씨네 오리 가족의 평온한 삶을 보스턴 시민공원의 호수를 롱 샷으로 비추며 아름답게 끝이 난다. 다행이다. Mallard 부인이 그토록 찾아 헤메던 안전한 둥지를 찾아서.

 


  그러나 그림책을 덮고 어딘가 공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Mallard씨 부부의 노력으로 아기 오리들은 스스로 먹이를 찾지 않아도 되는 곳, 천적이 없는 곳에서 언제든 배고프면 사람들로부터 땅콩을 받아먹으며 사는 삶을 살 것이다. 그렇지만 언젠가 아기 오리들도 자라 새로운 세계를 찾아 떠나야 할 때가 오지 않을까. Mallard씨 부부는 정말 천적을 피해 먹이를 찾고, 보금자리를 개척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아니, Mallard씨 부부야 말로 계속 그렇게 공원 안에서 땅콩을 받아먹는 삶에 익숙해져 살아도 되는 것일까? 보스턴 시민공원 밖에는 여우도 있고, 거북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잭, 캑, 랙, 맥, 낵, 왝, 팩, 쾍 여덟 마리의 아기 오리 중 어느 순간 시민 공원에서의 안전한 삶이 따분하게 느껴져 새로운 바깥 세계로 떠나고 싶어 할 오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나름대로 열심히 찾아낸 안전하고 행복한 둥지에서 성실히 은행 빚을 갚아가며 모범적으로 잘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문득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공허함이 몰려올 때가 있다. 이 대한민국에서 모범적이라 정해준 기준에 그럭저럭 잘 맞춰가며 살고 있는데 말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두려워했던 것의 실체는 ‘집’이라는 공간이 아니라, '땅콩'이라고 하는 사회가 정해준 모범적 기준에 익숙해져 그것에 저당 잡혀버리는 삶이다. ‘길 위에서 살거야’ 라고 생각했던 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래야만 한다’고 당연시되는 기준의 삶이 아니어도 세상엔 충분히 다양한 모습의 삶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불안해보인다고 해서 불행하다거나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Mallard씨네 가족을 보며 내가 가졌던 안정된 주거지에 대한 본능과 갈망이 아이에게 땅콩의 삶을 물려주기 위함은 아니었음을 다시 생각한다.

  엄마 오리는 내내 토닥여주고 싶을 만큼 용감했고 최선을 다했다. 그렇지만 그녀가 만들어둔 안전한 테두리가 곧 아기 오리들의 삶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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