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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노 Jun 10. 2016

[그림책수업] 화, 내 안의 화를 다루는 방법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몰리 뱅

  교직 5년 차에 처음으로 맡은 저학년 아이들의 교실에서는 다툼이 잦았다. 뭐가 그렇게 화가 나고 서러운지 별 것 아닌 일 가지고도 씩씩거리며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성이 난 상태로 불려나오곤 했다. 어린아이들일수록 분노의 감정이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내 앞에서도 상대방 친구에게 고함을 치거나, 순간적으로 욱해서 손이 올라가는 아이도 있었다. 평소에는 귀여운 개구쟁이에 에너지가 넘치지만 그만큼 화도 잘 내는 아이였다. 감정의 파도 꼭대기에 있을 땐 좋은 말로 타이르거나 그만하라고 다그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일단 화장실로 가서 세수하고 숨을 고른 다음, 이야기할 준비가 되면 오라고 했다.

 

  어른들조차도 분노의 감정에 끌려 다니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솔직히 나 역시 작은 일에도 파르르 화가 치솟곤 한다. 그렇지만 화가 나는데 꼭 감추고 참아야만 하는 걸까?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사회적 문제들 역시 내 안의 화를 무시하고 억누르기만 했기 때문에 생기는 병이다.  

    

  프로이트는 성격발달이론에서 항문기를 거치며 공격성과 분노의 감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공격성과 분노를 인간의 감정을 이루는 중요한 축으로 보았다.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동기나 에너지의 상당 부분이 여기서 나온다는 것이다. 평소 프로이트 이론을 좋아하진 않았는데, 우리가 흔히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감정을 인간 발달의 중요한 원동력으로 주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즐거움, 행복, 기쁨뿐 아니라 아이가 보여주는 분노, 짜증, 공격성과 같은 감정 역시 외면할 수 없는 인간 감정의 한 측면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다스리는 힘 또한 우리가 강제로 제거한다고 생기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화라는 감정을 무조건 참아내거나 숨겨야 할 나쁜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을 먼저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감정에 휩쓸려 실수를 하거나 나와 상대에게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은 분노가 터져 나오는 순간과 그것이 사그라드는 과정의 감정선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한창 재미있게 가지고 놀던 고릴라 인형을 언니가 빼앗으며 소피의 화가 폭발한다. 마치 막 터지는 화산과 같은 소피의 마음. 쾅쾅 발을 구르고, 시뻘겋게 소리도 지르다가 밖으로 달려 나간다. 화가 가득 찬 상태로 달리고,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 서러움도 밀려온다. 잠깐 훌쩍 울다가, 너도밤나무 위로 올라가 드넓은 바다를 바라본다. 마치 드넓은 바다가 소피를 포근히 감싸주는 듯하다. 평온해진 마음으로 소피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가족들은 소피를 포근히 맞아준다. 소피도 이제 더는 화가 나지 않는다.  
언니가 고릴라 인형을 빼앗아 화가난 소피, 붉은 색 기운이 감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소피, 시뻘겋게 소리를 지르고 괴물같은 모습으로 발을 쿵쿵 구른다.
푸른 빛의 너도밤나무, 푸른 바다와 자연 속에서 평온을 되찾아가는 소피.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소피를 맞아주는 집과 가족. 따뜻한 노란 빛의 온기가 감돈다.

 

 단순한 이야기지만 강렬한 원색과 직설적인 선으로 표현한 그림은 소피의 감정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시뻘겋게 폭발하는 감정, 그리고 푸른색의 평온한 자연, 노란색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집과 마음이 가라앉은 소피. 네 살배기 딸도 이 책을 매우 좋아하는데, 그림과 색채를 통해 감각적으로 ‘화가 난다’는 것을 이해하고 소피에게 감정이입을 한다.


감정 인지하기 - 내 몸과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자.

     

  제목을 살짝 가린 채로 표지를 가득 채운 소피의 화난 표정을 보여주었다. 치켜 올라간 눈썹, 벌름벌름한 콧구멍과 삐뚤어진 입까지 금세 소피의 표정을 따라 하며 재밌어했다. 그리고 소피처럼 머리끝까지 화가 났었던 경험을 물었다.

     

“동생이 내 물건을 빼앗아갔을 때요.”

“형이 나를 때렸을 때요.”

“엄마가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을 때요.”

“친구가 나와 놀아주지 않을 때요.”

“놀이에서 억울하게 졌을 때요.” 

     

  아이들이 화가 나는 이유는 정말 다양했다. 그러나 그 바탕의 공통적인 심리는 ‘뜻대로 되지 않음’이다. 생각해보면 그 상황이 좀 더 복잡하게 얽힐 뿐, 어른들의 세계에서도 분노는 나의 욕구가 타인이나 사회에서 충족되지 않을 때 생긴다.  

     

  이번에는 화가 날 때, 내 몸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떠올려보고 말로 표현해보기로 했다. 걷잡을 수 없이 내 안에서 감정의 파도가 몰아칠 때, 그것을 인지하고 바라보는 것은 매우 어다. 특히 분노, 슬픔과 같이 부정적인 감정일 경우엔 더욱 쉽게 휩쓸려버리곤 한다. 내 안에 살아 움직이는 감정이 일으키는 내 몸의 변화, 그로 인한 마음의 느낌을 바깥으로 꺼내 말로 표현해보는 것만으로도 ‘화’라는 감정을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날 때, 몸 안에는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이야기해보자."

“심장이 쿵쾅쿵쾅 빨리 뛰어요.”

“머리에 열이 나고, 얼굴이 빨개져요.”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물이 나요.”

“귀에서 삐, 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아요.”

     

"그런 순간에 너희들 마음과 기분은 어떠니?”

“소리를 지르고, 다 때려 부수고 싶어 져요.”

“동생이나 형이 너무 밉고,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감정 해소하기 - 화가 날 땐, 화를 내자!

     

“혹시 화를 그냥 꾹 참거나 마음에 담아둔 적이 있니?”   

“친구가 내 물건을 허락 없이 가져가서 썼는데, 화내면 같이 안 놀아줄 것 같아서 참았어요.”

“동생이랑 싸웠는데 화내면 엄마한테 혼날까 봐 참았어요.”

  

 "그렇게 화를 참고 나면 어떠니?"

"억울하고 답답해요."

"계속 그 일이 생각나서 화가 쌓여요."

"친구(동생, 부모님)가 미워져요."

   

  어릴 때 나는 화는 드러내지 않고 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웠다. 어른이 되고 나니,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그것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상황도 더욱 많아졌다. 그러나 억눌러둔 화의 에너지는 결국 나의 몸과 마음을 공격한다. 무조건 참거나 숨겨야 할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 역시 내 안에서 일어나는 에너지의 한 부분이며,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내 마음이 화가 날 땐, 화를 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신문지를 한 장씩 나눠주면서 내가 억눌러놓았던 화가 났던 기억과 그 순간 내 마음의 상태를 쓰도록 했다. 욕을 써도 되냐고 하는 아이도 있기에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 소피처럼 발을 쿵쿵 구르고, 소리도 아악~ 질러보고, 화가 나는 감정을 담아 신문지를 마구 찢고 던졌다. 잠깐 사이에 교실이 난장판이 되었다.  

    

“기분이 좀 어떤 것 같니?”

“속이 시원해요.”

“더워요.”

“재미있어요.”

     

 그저 신문지를 찢고 던지며 소리 지르는 것이 재미있는 듯했지만, 꼭 거기에 의미가 담길 필요는 없다. 무엇이 되었든 시원하게 발산해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감정 다루는 방법 알기 - 나만의 화 다루기 비법

  

  그러나 내 안의 화를 분출한다고 매번 그 분노의 파도에 몸을 맡길 수는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그 에너지는 나와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화가 날 때마다, 주변의 물건을 마구 부수고 소리를 지르면 어떻게 될까?"     

“주변이 난장판이 될 것 같아요.”

“내 방이나 교실에 남아나는 것이 없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고 피할 것 같아요.”

 

“그렇다면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마구 던진 물건에 가까운 사람이 다치거나 날카로운 말들을  듣게 되면 어떨까?"  

“그 사람도 엄청 화가 날 것 같아요.”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요.”

“상대방이 상처받을 것 같아요.”   

     

“소피는 화가 뻗쳐오르는 순간 어떻게 했니?”   

“집 바깥으로 달려 나가서 계속 달렸어요.”

“숲 속에서 새소리를 듣고, 나무 위에 올라가 바다를 바라봤어요.”

     

“너희들에게도 소피처럼 화가 날 때, 마음을 달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니?”   

“저는 옥상에 올라가 음악을 들어요.”

“운동장이나 놀이터로 나가서 숨이 찰 때까지 달려요. 

“자전거를 쌩쌩 타고 오면 기분이 나아져요.”

 “저는 그냥 잠을 자요.”

 “혼자 방에 들어가 엉엉 울어요.”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소리를 질러요.”

     

  분노가 가라앉는 과정에서 아이들에게도 필요한 것은 혼자만의 시간이다. 일단은 문제에서 떨어져서 나의 화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조금 마음이 차분해지면, 때론 문제의 상황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린아이들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감정에 솔직하며 감정을 지켜보고 다루는 방법의 본질을 더 잘 알고 있었다.  

     

 수업을 끝내면서 분노를 개인의 문제로만 초점을 맞추어 다룬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분노를 일으킨 상황이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순간적인 갈등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정말로 억울하거나 불합리한 문제일 수도 있다. 화가 난다는 감정이 온전히 개인의 책임이며, 개인이 떠맡아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는 아니다.  때문에 단순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화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만이 건강하게 화를 다스리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한차례 분노가 지나가고 난 이후에도 무엇인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될 때는 삐뚤어진 개인의 마음 탓을 하는 것 아니라 문제를 바로잡는 쪽으로 에너지의 방향을 돌려야 할 때도 필요하다. 고민과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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