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마음속으로만 꿈을 생각하고 머릿속에만 일정을 담아두다가 가까운 친구에게서 다이어리를 선물로 받게 되면서부터 이상하게 집요하는 정도로 기록을 하게 되었다. 날이 흐릴라치면 그때의 감정을 담았다. 그런데 기쁠 때의 일은 잘 기록이 안 되는 건 왜 그런지 모르겠다. 힘들 때 누군가를 찾는 나약한 모습처럼 말이다.
나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1년 전부터다. 나름 내 인생이 뭔가 할 말이 많다고 여겨졌나 보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면 나 스스로가 그건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지 라며 다시 가슴 밑바닥에 처박아둔다.
요즘 바쁜 일상 속에서 돌아보면 정확히 15개월 전이다. 피아노 레스너로 활발하게 일하며 행복에 겨운 것인지 정말 힘들어서 울어대는 것인지 구분이 어렵게 날마다 SNS 게시글에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다는 이야기로 하루를 마감했다. 현대인 병이다. 울어대는 게시글에 응원과 위로의 글을 먹고 힘을 내는 SNS 기생충이 되어갔다.
코로나 19로 일상이 마비된 지 1년 8개월이 지나간다. 갑자기 무너진 건물에 재만 남아있고 손 쓸 기운도 없이 바라보는 심정이랄까. 지금까지 한 가지 일에만 종사했기에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해볼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10년 전 피아노만 잘 치고 레슨만 잘하면 된다고 잘난 척하는 나에게 친구가 내뱉은 독설이 생각났다.
언제까지나 피아노만 치면서 우아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피아노 배우겠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면 그땐 뭐할 건데? 네가 마트에 가서 계산원이나 식당에 가서 설거지 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난 두 눈이 튀어나올 정도의 충격적인 말에 한동안 우울감에 시달렸다. 자존심도 상했지만 정말 내 인생의 B 플랜은 필요한 것일까 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생각해보지도 않았지만 생각해보기 싫은 과정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부터 아마도 10년이 지난듯하다. 코로나 19의 대비책이 없는 현실은 우리 모두를 혼란 속에 빠뜨렸고 2020년이라는 1년을 도둑맞은 것처럼 기억 속에는 아무 한 일이 없다. 그 친구의 말이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늘따라 유난히 에세이 5 기반의 카톡방 알람이 분주하다. 사실 늘 분주했다. 과제물 제출, 오마이 뉴스, 브런치, 블로그 등 게시가 되면 서로의 글을 읽어주고 격려해주느라 활기가 넘쳤다. 처음 당당하게 에세이 반에 문을 두들기며 시작했던 나의 사기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이젠 에세이반의 낙오자가 된듯한 심정이다. 사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바빠진 일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꼭 나도 글을 잘 써보리라는 의지와는 다르게 자꾸만 철도 위에서 나 혼자 다른 선로를 타고 가는 느낌이다.
지금 내 책상에는 서류가 잔뜩 쌓여있다. 회사를 만드는 과정의 서류, 공연기획에 관련한 서류, 매거진에 올려야 할 기사들과 사진들. 피아노를 치고 있어야 하는데 요즘 매일같이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참 아이러니하다.
10여 년 전의 친구의 말이 오늘따라 더 와닿는다.
어쩌면 그때 그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 노트북 자판도 못 두들겼을지도 모른다. 이루는 것보다 지키지 못하는 약속이 더 많은 나의 버킷리스트. 급하게 해야 할 일들에만 매달려 있기에 자꾸 뒤처지는 것 같다.
에세이 5 기반의 알람이 오늘 나를 재촉한다.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리해봐야겠다. 초조한 마음 덕분에 이번 주 과제물은 시간 안에 제출할 수 있게 되었다.
줄다리기를 할 때 앞의 선수와 함께 발맞춰야 무너지지 않고 함께 움직이는 방향에 초점을 맞춰야 힘이 덜 들어감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몰랐던 진리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