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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Jul 15. 2020

그럼 나는 지금 내 삶의 어디쯤 와있는 걸까?

장학리 139-78

춘천에 너를 만나러 갔다가는 꼭 듣게 되는 두 마디가 있지. 뭔 줄 알아? “이번에 오면 구봉산 꼭 가야 돼”와 “아, 구봉산 갔어야 했는데 다음에 꼭 가자”야. 작은 계획에도 금방 기대를 품고 아쉬움이 남으면 곧장 다음번을 기약하던 나의 단순함을 너도 눈치챘던 걸까. 하여간 구봉산 구경 언제나 한번 시켜주려나 생각하다 오늘 갑자기 혼자라도 거길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언젠가 네가 이런 말을 했지. 꿈을 찾아 서울 땅을 밟았지만 서울에서의 삶도 녹록지 않았다고,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마다 춘천에 돌아왔다고. 그러면서 구봉산에 가서 춘천의 전경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마음을 다잡게 된다고 했던가, 그런 비슷한 얘기를 했던 것 같아. 난 지금 딱히 좋은 일도, 그다지 나쁜 일도 없는데 마음은 복잡하고 그렇다고 시기나 계절 탓 같은 걸 하기도 지겨워졌거든.

근데 난 또 산이래서 배낭에 물도 챙기고 어제 시장에서 산 껍질째 먹는 사과도 하나 씻어 왔는데, 네가 일러준 곳을 지도에 찍었더니 왜 카페거리라고 나오는 거야? 아니, 게다가 산 초입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고 이후에는 걸어 올라갈 참이었는데 그렇게 가는 길은 있지도 않고, 버스기사 아저씨도 중간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올라가라고만 하시더라.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도 어렵게 택시를 잡아타고 여기까지 왔는데 산 중턱에 온통 복층으로 된 카페 천지야. 그중에서도 여기는 아주 전망 좋은 카페네, 이 럭셔리한 친구야.

하긴 집 근처 아차산도 자주 오르지 않는 내가 별안간 춘천까지 와서 무슨 등산을 하겠다고, 얼마나 큰 감회를 바랐던 건지. 이번 여정에다 대단한 의미라도 부여해줄 뭔가가 필요했던 건지도 몰라. 유럽풍의 고급스럽고 거대한 문을 밀고 들어가 카운터 앞쪽으로 잔뜩 놓여진 빵들과 계단을 따라 멋스럽게도 꾸며놓은 카페를 보니 그제야 혼자 웃음이 터졌지 뭐.

빵 종류 하며 음료 메뉴도 하도 많아 한참을 고민하다 아메리카노 한 잔과 왕밤빵을 시켰어. 지금은 주문한 걸 받아서 2층에 올라왔고, 푹신한 쇼파가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지. 토실한 밤이 가득 올려진 빵을 주욱 뜯어서 한입 물고 커피도 한 모금 마신 뒤에 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래 이게 차라리 나답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나를 찾겠답시고 오지에 나가 평소에 먹지도 않던 음식들을 잔뜩 먹고,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 틈에서 요상한 잎차를 매일같이 마시던 때를 생각하면 그것도 용감은 했다만. 내가 가장 익숙하고 편하게 느끼는 상태가 뭔지 잘 아는 게 새로운 나를 찾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지 않겠냔 말이야. 근데 이렇게 말해버리고 나니 또 요즘 부쩍 내가 현실에 안주하는 데에 능숙해져 간다는 생각도 드네. 말하자면 모든 일에 별 기대도 아쉬움도 가지지 않게 되는 상태랄까.

엊그제 친구가 무료로 강점테스트를 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알아와서는 다같이 그걸 해보자고 했거든. 심리테스트 같은 게 뻔하긴 해도 여럿이 결과를 놓고 수다 떠는 건 또 재밌으니까 나도 동참했는데, 하다가 기분이 이상해졌어. 뻔한 테스트답게 문항도 결과랑 어떤 연관이 있을지 눈에 훤히 보이는데 내 답안이 그새 이전의 내가 택하던 것과 많이 달라졌다는 게 느껴지는 거야. 결과도 참혹했지. 24가지 강점의 목록 중 강한 것부터 약한 것이 쭉 나열되어 있는데, 나 ‘희망’이 23번으로 나왔어, 뒤에서 두 번째. 내가 희망주의자 그런 건 아니지만 앞이 창창한 청년이 이렇게 희망을 품지 않고 사는 건 좀 서글프지 않아? 심지어 우리 아빠는 핸드폰에 나를 ‘희망’이라고 저장해두셨다고.

근데 너 혹시 산에 가는 거 좋아해? 산 중턱에 있는 전망 좋은 카페에 앉아서 할 소리는 아닐는지 몰라도 나는 솔직히 산이 왜 좋은지 모르겠어. 누군가 “바다가 좋아? 산이 좋아?” 하고 물으면 난 모두가 바다가 좋다고 대답할 줄 알았거든. 그건 나의 대단히 편협한 사고였지. 그게 얼마나 편협한 생각이었는지 안 뒤로는 산이 왜 좋으냐고 물어보기도 조심스러워졌어. 산에 가는 거 좋아하면 왜 좋은지 좀 알려줘라.

나한텐, 목요일 점심 때부터 나를 꼬드기기 시작해 토요일 아침이면 산에 가자고 조르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덕에 종종 산에 갔었어. 산에서 내려오면 되게 유명한 떡볶이집이 있거든. 그리고 그 옆에 유명한 떡볶이집보다 더 맛있는 떡볶이집도 있지. 이 동네 사람들만 아는 맛집 말야. 떡볶이 먹으려고 따라다니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그 근처 메밀국수집, 순두부집, 닭한마리집 하나씩 도장 깨는 맛으로 토요일을 기다려.

하여간 그 친구 말로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정상에 오르면 성취감이 있다는데 난 여전히 잘 모르겠더라. 내가 성취감을 너무 쉽게 느끼는 사람이라 그런가.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많잖아.


예를 들어 산 들어가는 초입에 절이 있거든? 거길 지날 때마다 너무 들어가 보고 싶은데 혹시라도 마주친 스님에게 속세에 물든 미련한 중생 취급을 받을까봐 용기가 안 났었어. 그러다 법당문이 다 닫혀있는 날, 슬쩍 들어가서 마당도 한바퀴 돌아보고 저마다의 기도가 쓰인 기왓장도 살펴보고 나왔는데 그날은 정말이지 ‘아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크나큰 성취감을 느꼈단 말이야. 친구가 개수작 부리지 말라면서 내 뒷덜미를 끌고 함께 산을 탔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확실히 나는 정상에 올라야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야. 그 중간 어느 쯤에서도 다 비슷하게 충만하고 싶어. 스무살 때 선물 받은 책에 사람의 평균 수명이 80세라 봤을 때 그 평생을 하루에 비유한 이야기가 나와. 그러니까 1년을 18분 쯤으로 계산하는 건데 방금 막 내 나이를 넣어 계산해보니 요즘 내가 아침에 막 집을 나서는 시간이더라. 웃기는 일이지. 그러고 보면 그 책을 처음 읽었을 즈음에는 그마저도 아침에 막 일어날 시간이라 힘이 솟는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 희망을 웃긴다고 하고 있네, 나.

이러다 다시, ‘지금 부지런히 준비해 집을 나서면 점심 때쯤 즐거운 일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나 ‘조금만 일찍 일어났으면 더 좋았을 걸’하는 아쉬움을 가지게 되는 날이 오기도 하려나. 그건 또 내 삶의 어디쯤에서 일어날 일인지 알 수가 없으니 역시나 그런 날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거야.

우리 사는 동안 정상까지 올라가지 못하게 되거나 애초에 절 앞에서도 돌아서게 되더라도, 하다못해 산에 가다 말고 떡볶이집에 눈이 팔려 산은 코빼기도 보지 못했더라도 그 안에서 더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살아보면 어떨까. 택시를 타고 구봉산에 올라 아메리카노가 4,500원이나 하는 전망 좋은 카페에 왔지만, 이렇게 편지를 쓸 수 있어서 기쁜 것처럼.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도록 너무 치열하게 나아가지 않아도 그 순간에 존재했음만으로 의미가 있는 나날이 계속 있을 거라 믿으니까.       

- 다시 돌아갈 땐 콜택시라도 불러야 하나, 문득 걱정이 되는 구봉산 카페거리에서.


https://www.melon.com/song/detail.htm?songId=30436826

* 이 원고는 2018年 어반플레이 웹매거진에 '춘천 음악기행' 시리즈로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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