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기를 그만두었을 때, 그 청춘은 끝나는 것이다.
언제나 긴소매의 옷을 걸치고 있던 그녀의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피아노 앞에 앉아 '솔베이지의 노래(Solveigs Song)'를 연주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생일날 내게 말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늘 '세상에서 가장 불필요한 건 전쟁'이라 말씀하셨지.”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내게 선명하게 남아있다. 2017년 2월 21일. 그녀의 29번째 생일이자, 그녀의 할아버지가 향년 90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한 날이었다.
마치 죽음의 통과 의례와 같이, 그날 장례식장에서는 그녀의 할아버지이자 고인 박성일의 생전 모습에 관한 이야기가 떠돌았다.
「그는 늘 그 언덕 위에서 바이올린을 켰어. 그게 그땐 별일이었지. 서장집 장남이 말이야.」
「그때 할아버지가 켜던 바이올린은 어디 갔나요?」
「성일이 아버지가 그걸 가만히 보고 있었겠나? 다 부숴 버렸겠지. 그러다가 전쟁에 나갔어. 6.25 말이야.」
나중에 그녀에게 들은 부연 설명으로, 그녀의 할아버지는 6.25 전쟁에 참전하여 팔에 총상을 입었고 그 후 더 이상 바이올린을 켤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매일 아침 할아버지가 연주하던 ‘솔베이지의 노래’는 본인이 직접 연주할 수 있도록 쉽게 고쳐 쓴 피아노곡이라고 했다.
그날, 나는 집으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솔베이지의 노래'를 들었다. 흐르는 선율 사이로 노랫말이 들렸다. ‘아마도 겨울이 가고 봄도 가겠지. 겨울 가고 봄도, 그런 후에 오는 여름도 가고.. 한 해 전부도. 그러나 언젠가 너는 올 거야.’ 노랫말 사이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전쟁터로 떠난 연인을 기다리는 곡을 연주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녀의 할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잃은 것은 무엇이었나. 문득 할아버지의 피아노 위에 올려져 있던 낡은 책의 마지막 장이 생각났다.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청춘은 짧다. 꿈꾸기를 그만두었을 때, 그 청춘은 끝나는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그의 생전 모습을 떠올렸다. 혹시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그의 청춘을 기다린 건 아니었을까.
- 2017년 2월 21일, 조.
(이전 글 '오래된 업라이트 피아노'와 내용이 이어집니다.)
음악. 에드바르 그리그(Edvard Grieg)의 페르 귄트 모음곡 중 '솔베이지의 노래(Solveigs 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