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세차를 했다.
두어 달쯤 된 것 같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운전병 출신이다.
평생 할 세차를 그때 다했다.
아니면,
뭐든 자연스러운 게 좋다.
차를 나무나 바위처럼 생각한다.
때마다 비와 바람이 먼지를 씻고
햇볕이 잘 말려준다.
억지로 독한 세재를 먹이고
무시무시한 기계에 집어넣는 건
자연스럽지 못한... 그만하겠다.
ㅡ눈 와?
ㅡ무슨 소리야? 날씨가 이렇게 맑은...
유리에 뿌옇고 오래된 먼지가 가득했다.
안전을 위협한다면 더 미룰 수 없는 일이다.
가족을 태우는데 더더욱.
큰맘 먹고 자동세차를 하러 갔다.
자동세차가 무슨 큰 맘씩이나 먹어야 가능한가 하면
운전병 출신... 차를 나무처럼...
나름 크게 결심한 것이라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래도 물기 제거는 열심히 했다.
영하의 날씨에 땀이 날 정도로, 정말 열심히 닦았다.
어?
뒷 문 쪽에 찍힌 자국이 두어 개 보였다.
얼룩인가 하고 힘을 주어 문질러 봤지만
손끝에도 음각의 입체감이 느껴지는 그것은
분명한 흠집이었다.
언제 생긴 지도 알 수 없다.
그동안 먼지인 척 뻔뻔스럽게 자리하고 있던 녀석들이
세차를 하는 바람에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ㅡ세차 괜히 했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몇 걸음만 떨어져 보면 흠집 따위 보이지 않는다.
포비*가 이런 색이었구나. (*뽀로로 친구 북극곰 포비를 닮아서)
말갛고 고운 차를 보니 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좀 더 아껴줘야겠다 생각이 들었지만
자연스러운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덧붙이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었다.
ㅡ
이틀 만에 폭설이 내려
포비는 전보다 더 엉망이 되었다.
그 조그만 흠집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세차하기 잘했다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체 왜 이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