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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Dear. blank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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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May 09. 2024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행복을 바란다는 건 어쩌면,

Dear. (       )     


 너는 편지를 자주 쓰니? 나는 요즘 편지를 계속 쓰고 있잖아. 그래서 그런지 다른 사람의 편지도 궁금해지더라. 그렇게 찾다 보니까 익명의 편지들을 볼 수 있었어. 혼자 여행 온 사람의 일기 같은 편지도 있고, 그리운 누군가에게 쓴 편지도 있고, 더 나은 나를 위해 쓴 편지, 위로받고 싶은 마음으로 쓴 편지 등 정말 다양하더라. 그런데 그 편지들을 읽으면서 왜인지 행복한 사람보다는 힘들고, 불행한 사람이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지.. 마음이 먹먹해졌어.     


 아무래도 행복한 시간보다는 답답하고, 힘들 때 뭔가를 쓰고 싶어지는 건 백번 공감되는 일인 것 같아. 그 시간을 뭔가로도 채우고 싶어 지잖아. 흰 종이로 시작한 하소연이 어느새 두 장, 세 장이 될 때가 있고, 눈물로 글자가 번지기도 하고, 차마 다 쓰지 못하고 엉엉 울어버릴 때도 있지. 그러다 보면 또 속이 후련해지기도 하고, 때론 더 먹먹해지기도 하겠지.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본 적 있어? 그 편지가 누구에게 닿을지도 모르는 채로 편지를 쓰는 거지. 그리고 나도 이름 모를 이의 편지를 읽을 수 있고. 제주에 그걸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더라고. 푸른 잎과 하얗게 꽃이 핀 귤밭을 바라보면서 나도 가만히 편지를 썼어. 처음에는 어떻게 적어야 할지 모르겠더라. 편지라는 게 보통 안부로 시작하는 거잖아?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안부를 묻는다는 게 어딘가 낯설더라고. 그래서 그냥 내 이야기를 썼어. 제주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올 때의 마음, 제주에 오기 전의 마음 같은 것들 말이야. 내 이야기를 쓴다는 게 망설여지거나 어렵지는 않았어. 어차피 이 편지를 받는 사람을 나를 모를 테니까.      


 그리고 문득, 내 편지를 받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별거 아닌 내 이야기로 위로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 하지만 당신은 어떤지, 지금 힘들지는 않은지, 제주에 오기까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물어 봐주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아주 작은 위로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뭐든 관심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잖아. 사랑이든, 위로든, 뭐든 말이야.      


 내가 쓴 편지를 두고, 누군가가 쓴 편지를 하나 골라서 나왔어. 그 편지봉투를 열기 전까지 새삼 긴장되고, 설레더라. 그렇게 조심스럽게 그 편지를 열었더니, 참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더라고. 방황에서 벗어나면 또 다른 시련이 있고, 용기 내 다른 길을 선택하면 원래 있던 자리가 그립고, 남들보다 늘 나는 작은 사람인 그런 시절이 누군가에게나 있잖아. 그 사람도 그런 시절을 아프게 보내고 있는 것 같았어. 그렇게 당신은 힘들면서 편지의 끝에는 나의 행복을 빌어주더라. 생각해 보니 내 편지도 그랬어. 끝에는 결국 당신의 행복을 빌어줬지. 그 순간 내 편지가 꼭 당신에게 닿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우리가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행복을 바라는 건 어쩌면, 그 행복이 돌고 돌아 나에게 오길 간절히 원하는 게 아닐까? 당장 나도 행복해지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되니까. 당신이라도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참 무거운 행복이지만 당신이 빌어준 행복이 나를 거쳐, 또 다른 이를 거쳐, 반드시 그 사람에게 닿았으면 좋겠어. 내가 누군가에게 빌어준 행복도 꼭 나에게 돌아오길 바라니까. 그럼, 오늘도 행복해지자 우리.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J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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