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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Dear. blank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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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May 16. 2024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고 싶어질 때

Dear. (        )     


 잘 지냈어? 요즘 날씨를 도무지 예측할 수 없지? 낮에는 꼭 한여름 같다가도 저녁에는 바람이 아직 너무 차더라. 이런 날씨에 감기 잘 걸리잖아. 옷 잘 챙겨 입고 다녀. 너는 요즘 쉴 때 뭐 해? 나는 요즘 옛날 드라마를 몰아보고 있어.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예전부터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미뤘던 드라마들이 있는데 요즘 갑자기 딱 생각이 났어. 최근에는 ‘도시 남녀의 사랑법’이라는 드라마를 봤어. 사랑과 관련된 내용인데 나는 어쩐지 여주인공이 자신을 찾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더 마음에 와닿더라고.  

    

 살다 보면 그럴 때 있잖아. 내 의견이나 마음 같은 건 뒷전으로 미뤄두고 눈앞에 닥친 상황만 해치우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갈 때 말이야.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겠지. 살아남아야 하니까. 하루를 무사히 마치고 싶으니까 그런 방법을 선택하게 된 거지. 그런데 그러다 보니까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는지, 내 마음은 어떤지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더라. 나를 잃어버리니까 길도 잃어버리고 그때부터 점점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      


 그럴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고 싶어 지더라. 나의 성격이나, 성향도 반대고 옷 스타일이나 말투까지 다 나와 반대인 사람으로 말이야. 주변에 그런 사람 있잖아. 통통 튀면서 자유로운데 사랑까지 받는 사람. 그런 사람을 동경하면서 흉내 내보는 거지. 일부러 그렇게 살아보는 것도 잠깐 도움은 될 것 같았어. 그동안 억눌렸던 행동이나 감정을 마음껏 표출하게 될 테니까. 그런데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그 모습을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흉내 내는 삶이 나를 찾는 데 도움 줄 수 있을까?     


 드라마 속 여주인공인 ‘은오’도 1년 동안 완전히 다른 사람인 ‘선아’로 살아. 자기가 가지지 못했던 활기차고, 자신감 넘치고, 자유로운 그런 모습으로 살다가 결국은 현실로 돌아오게 돼. 은오에게 그 과정이 완전히 행복했는지는 모르겠어. 낮에는 웃다가도 밤이면 몰래 우는 시간이 많았을 것도 같아. 그곳에서 은오는 완전히 자신을 찾았다기보다는 예전의 바보 같았던 모습을 조금은 버리기 위해 애썼으니 말이야.     

 

 우리는 왜 그렇게 온전히 나로 살지 못하고 발버둥 치는 걸까. 실수하고, 답답하고, 상처받은 모습에서 벗어나려 하고, 그 모습은 내가 아니라고 부정하잖아. 내가 나를 너무 쉽게 부정해 버리니까, 점점 더 작아지는 건 아닐까? 사실 그 모든 모습이 남들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비칠지도 모르는데.


 내가 남을 흉내 내지 않고, 적당히 포장하지 않고 나로 살기 위해서는 나를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도망치는 건 방법이 아닌 것 같아. 그 순간마다 나를 더 들여다보는 연습을 해보자. 부딪혀보면 알겠지. ‘어떤 때 나는 이런 모습이고, 이게 부족하구나. 나는 이런 상황을 즐거워하는구나, 나는 이런 걸 잘하는구나’ 하고 말이야. 나도 천천히 연습해 볼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도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  

    

오늘도 잘 살아내느라 고생했어. 너 그리고 나. 우리 오늘도 잘 해냈어. 민낯의 너로, 하루를 잘 마무리하길 바라.      


따뜻한 미소를 담아, J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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