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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Dear. blank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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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May 01. 2024

수요일, 휴일 그리고 근로자

Dear. (      )     


 나는 늘 일요일 밤이면 생각했어. ‘아, 오늘이 토요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주말이 3일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부분의 직장인이라면 아마 내 기분을 이해하지 않을까 싶어. 그러니까 오늘같이 평일에 쉬는 날이 생기면 그게 얼마나 큰 쉼표가 되는지 몰라. 게다가 평일의 허리를 꺾는 수요일이라니. 사소하지만 큰 행복을 느끼는 종일이야.      


 지금 회사에서 일한 지도 벌써 4년 차야.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어. 1년 차까지는 정신없이 배우고, 적응하던 시기였던 거 같아. 그리고 연차가 쌓이면서 업무도 많아지고, 실수도 많아지고, 마음이 상하는 일들도 많았어, 마의 3년 차라고 하잖아. 작년에는 모든 일이 버겁고 출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턱턱 막히더라니까. 그래도 나만 그런 거 아니니까, 이 정도면 견딜 만한 건데 나만 정신을 잘 잡고, 마인드를 곧게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잘 버틴 거지. 그래, 버틴 거지.      


 나는 이런 위기를 맞을 때마다 아빠가 떠올라. 아직도 현장에서 일하는 아빠를 생각하면 내가 지금 하는 일을 쉽게 손 놓을 수가 없는 거지. 평생을 그렇게 일하는 거, 쉽지 않은 거잖아. 밤낮없이 출근하고, 남들 쉴 때 못 쉬고, 짜증 나는 일도 참아야 하고, 나보다 더 힘든 일이 많을 텐데도 여태 일하는 아빠니까. 나는 그래도 취미도 즐기고, 여행도 가고,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고 하지만 아빠는 이제 그마저도 하지 않더라. 그저 즐기는 거라고는 술뿐인데, 그게 습관인지, 중독인지, 취미인지, 노는 건지, 약인지 나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 그런 아빠가 답답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이해도 되면서, 걱정되는 게 딸의 입장인 거 같아.   

   

 나는 몇 살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이렇게 나이 들어서도 방황할 줄 알았으면 20대 때 다양한 경험을 해볼걸 그랬어. 많은 경험을 할수록 삶의 방향성이 넓어진다는 걸 이제는 알아. 그런데 지금 뭔가 새롭게 도전하기에는 더 많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거 너도 알지? 그래서 이렇게 시간만 축내고 있는 것 같아. 아, 겨우 4년 차 근로자의 푸념이 너무 길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틈틈이 스스로를 챙기자. 그게 쉬우면서도 제일 어렵다는 거 잘 알아. 그렇지만, 남들 사는 것처럼 흘러가듯이 살다가도 지친 나를 알아봐 주고, 다친 마음 보듬어주자고. 나보다 나를 더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리고 혹시 용기가 조금이라도 생겼다면 그걸 알아봐 주는 사람이 나여야지 또 새로운 시작할 수 있을 거잖아. 가끔은 고요 속으로 들어가서 나의 소리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아, 벌써 저녁이 가까워져 온다. 그거 알아? 목, 금만 일하면 주말이야. 오늘이 평일의 허리를 꺾는 수요일이라 다행이다. 남은 귀한 저녁, 너를 위해 쓰길 바라. 남은 평일도 힘내자 우리.      


모든 근로자를 응원하며, J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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