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 )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지고 있는 요즘이야. 길가는 물론이고 저 멀리 산까지 짙은 녹음으로 물들고 있어. 각기 다른 푸른빛이 어우러지는 걸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찬란해져. 지금은 발걸음을 자꾸 멈추게 하는 계절이야. 나는 그런 느긋한 사월이 좋아.
올해 사월은 더 의미 있는 것 같아. 여동생이 곧 결혼하거든. 한참 동안 실감 안 나더니 이제는 좀 나는 것 같아. 어릴 때는 여동생이랑 엄청 싸웠다? 사소했지. 내 옷 입는다고 싸우고, 숨소리 크다고 싸우고, 조금 건드린다고 싸우고. 둘 다 예민한 성격인데 좁은 방에서 늘 같이 지내야 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
어릴 때는 내 방이 없다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고 불만이기도 했는데 이제는 다 추억이야. 어린 시절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동생이랑 나란히 누워서 쓸데없는 상상했던 순간이야. 바닥에 누워서 ‘우리 이런 상상해보자’라고 말한 후 둘만의 주문을 외우고 두 눈을 꼬옥 감았었지. 동생은 자기가 원하는 상상을 넘어서 원하는 꿈까지 꾸던데 사실 나는 그냥 캄캄한 상상을 하다 잠들이 일쑤였어. 감았던 눈을 뜨고 힐끗 동생을 보기도 했지. 참 구김 없던 시절이다. 그치?
어른이 되어서 우리는 참 유대감이 깊다고 생각했어. 한 방에서도 서로 다른 상상을 했던 자매였지만 여전히 우리는 같은 방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 어렸던 그 시절에는 몰랐지만, 성인이 된 이후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라고 느꼈어. 서로 고민도 나누고, 서로의 연인도 소개해주고, 여행도 같이 가고, 같이 글도 쓰고,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고 그렇게. 그런 동생이 이제 자기 가족을 꾸린다고 하니까 조금 섭섭하기도 하면서, 대견하기도 하면서 마음이 복잡해.
다른 건 모르겠고, 동생이 너무 철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실 우리 동생은 나보다 더 진작 철들었던 것 같아. 둘째들이 그렇다잖아. 우리 동생도 가운데 치여서 많이 양보하고, 이해하고, 눈치 보고, 제자리를 찾느라 빨리 철들었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보다 더 철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릴 때 못 부린 투정도 부리고, 울기도 하고, 지금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허물없이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
동생 결혼식에서 축사를 하기로 했는데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야. 긴장되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할 것 같아. 그리고 특별한 축사를 준비하고 싶었는데 그런저런 축사가 될 것 같아서 조금 속상하기도 하고. 한정된 시간이 있으니, 못다 한 말은 편지로 전달하는 게 좋겠지?
나에게 올해 사월은 뭐랄까, (이 대목에서 왜 마음이 먹먹해질까) 한 시절과 이별하고, 또 다른 시절을 받아들이는 계절 같아. 뭐든 떠나보내는 마음은 쉽지 않지만, 마음속 한편에는 사라지지 않는 방이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할래. 그 속에서는 티 없이 웃는 얼굴만 남아 있을 거야 분명.
너의 사월은 어때?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겠지, 뭐. 그래도 너의 일상이 최대한 구김 없는 날이길 바라.
찬란한 계절에서 J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