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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Dear. blank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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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Apr 24. 2024

퀘렌시아를 찾아서

Dear. (        ) 


퀘렌시아라는 말 들어본 적 있어? 퀘렌시아는 스페인어야. 스페인에서 투우 경기를 할 때, 투우사와의 격렬한 싸움 중에 소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을 퀘렌시아라고 했대. 소의 피난처, 휴식처인거지. 소의 퀘렌시아처럼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퀘렌시아가 필요하다는 것을 책에서 본 적이 있어. 나는 지금 퀘렌시아가 절실해. 


 너는 어느 때 가장 안정감을 느끼고, 또 행복해? 나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있는 게 어색하기도 하면서 마음이 편하기도 하더라고. 그래서 자주 떠났어. 거창한 계획이 없어도 떠난다는 것 자체가 나를 숨 쉬게 하더라. 사람이 숨은 쉬고 살아야 하는데 뭘 그렇게 참고 살았는지. 작은 먼지들이 쌓여서 내 숨을 조이고 있었던 것 같아. 실체가 없으니 하소연할 곳도 없고 얼마나 답답한지 너도 알지? 


 그래서 5월엔 떠나기로 했어. 이것도 참 갑작스러운 결정이었어. 그냥 문득 '떠나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몸에서 머리로 신호를 줬는지, 뭔가 버튼이 눌러진 건지 모르겠어. 어쨌든 그날 항공권이며 숙소며, 일정이며 다 결정했지 뭐야.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어. 혼자서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시간도 철저하게 계획해 보는 것 말이야. 너무 행복하더라. 나의 퀘렌시아를 준비하는 게. 


  오늘은 퀘렌시아로 떠나기 10일 전이야. 이렇게 매일 시간을 셈하는 게 왜 이렇게 설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또 모르지. 그곳에서 어떤 일을 마주할지, 어떤 변수가 있을지. 온전히 즐겁지 않을 수 도있고, 외로울 수도 있겠지. 그래도 그곳에서는 나 스스로 거짓 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 고요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적당한 소음 속에 섞여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말이야. 거짓 없이 순수한 감정들을 많이 느끼고 왔으면 좋겠어. 지금의 나는 너무 익숙해져 버린 일상에서 조금 떨어져 볼 필요가 있어. 


 너의 퀘렌시아는 무엇인지 궁금해. 너무 멀지 않은 곳에 있을 수도 있을 것도 같아. 일정을 모두 끝내고 마시는 맥주 한 잔이 될 수도 있고, 좋아하는 드라마를 몰아보는 시간이 될 수 도 있고, 강변을 산책하는 것이 될 수도 있어. 네가 마음 편히 숨 쉬고, 안락을 느끼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퀘렌시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너를 숨 쉬게 하는 퀘렌시아가 가까이, 많았으면 좋겠다. 괜찮은 방식을 찾으면 나한테도 꼭 알려줘! 


 

5월의 퀘렌시아를 기다리며, J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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