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 )
예전에 유서를 쓴 적이 있어. 진짜 유서가 아니라, ‘만약’이라는 가정을 담은 글이었지. 너도 알잖아. 내가 상상 같은 거 잘 못하는 거. 그때도 사실 그렇게 유서를 쓰기가 어렵더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유서는 어떻게 쓰는 건지, 어떤 말을 남겨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안 오는 거야. 당장 내가 내일 죽는다는 가정도 와닿지 않고. 그러다가 뻔한 감상에 빠진 글을 썼었지. 나의 마지막에 이런 내용으로 유서를 쓴다는 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쓰는 동안 인생이 조금은 정리되는 느낌이었어.
그냥 내가 죽었을 때 어떤 사람이 슬퍼할지 생각을 했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나를 오래 그리워해 줄지 그런 생각 말이야. 그렇게 한 명, 두 명 써 내려가면서 고맙고 미안하다 그런 말들을 적은 것 같은데 지금 와서 보면 너무 웃기지.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SNS에 누가 올리지 않으면 절대 모를 사람들까지 유서에 쓴다는 것 말이야.
예전에는 깊고 좁은 인간관계가 좋다고 생각했어. 사실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했는지도 몰라. 하하 호호 웃는 저 무리의 관계는 분명 얕고, 금방 깨질 거라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저 관계 속에 진짜 마음이라는 게 있을 리는 없다고. 어쩌면 내가 주류가 아닌 비주류에 속한다는 것을 나만의 방법으로 외면한 것 같아. 아니다, 받아들인 건가? 어쨌든 모든 상황에서 나는 그저 눈에 띄지 않는 주변 인물이었을 뿐이었다는 거야.
그런 내가 어떻게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친구를 사귀게 되었는지는 몰라. 어떤 우연의 기회가 있었겠지. 그 소중한 관계를 위해서 꽤 많은 노력을 했던 것 같아. 서툴렀지만 나름대로 표현하려고 애썼지. 그때도 이런 식의 편지를 많이 썼던 기억이 난다. 어렴풋한 시절이지만 분명 순수했던 때였어. 별것도 아닌 일에 웃고,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나눈 것처럼 친밀했으니까. 그랬던 관계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 쉽게 받아들이진 못했던 것 같아.
한때의 친밀감에 집착하며 뜸해지는 관계에 매달리기도 했어. 가지 말라고 소리치고 붙잡던 날들에 목이 아니라 마음이 아팠었지.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은 관계를 맺을 걸 하며 후회도 많이 했던 것 같아. 그래도 이제는 시간에 희석될 관계에 연연하던 때는 지났어. 사람과의 연이라는 건 애쓴다고 다 되는 건 아니더라고.
어쩌다 이런 얘기를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네 곁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궁금했나 봐. 한때 나는 지나치게 인연에 집착하던 때가 있었는데 누구나 그럴 수는 있으니까. 혹시 네가 저 멀리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혼자 소리치고 있지는 않은가 싶어서 이 얘기가 생각난 것 같아. 뭐가 어쨌든 너무 애쓰지는 말자, 우리. 결국 시간에 희석될 관계는 붙잡아지지 않으니까. 요즘 봄바람이 거세더라. 감기 조심하고 또 편지할게.
나른한 마음으로 J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