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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Dear. blank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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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Mar 27. 2024

너의 그리움이 나를 부를 때

Daer. (       )     



 그런 적 있어? 정말 읽고 싶은 책이 있어서 샀는데 막상 읽으려고 하니까 손이 안 가는 거야. 그러다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우연히 그 책을 집어 들었는데 그게 그렇게 마음에 와닿고, 울컥하고 너무 좋은 거지. 마치 지금을 위해서 그 책을 아껴둔 기분이거나 ‘아, 이 책이 나를 불렀구나.’라고 느낀 적 말이야. 나는 생각보다 그런 경험이 많아.     



 네 편지도 그래. 지난가을에 받았으니 한 계절이 훌쩍 지나고, 해도 바뀌도록 잊고 있었어. 그런데 어제 문득 그 편지를 찾고 싶은 거야. 분명 서랍에 넣어두었는데 한참을 찾아도 없어서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몰라. 결국 책 사이에서 네 편지를 찾아서 읽게 되었어. 왜 하필 지금이었을까 네 편지가 생각난 게.      



 너는 가을을 그리움의 계절이라고 말했더라. 그런데 사실 언제나 그리움의 계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이 봄이 내게는 그리움의 계절인 것처럼. 가을의 너와, 봄의 나. 그리고 그 사이의 겨울과 네 편지. 이 모든 단어들이 왜 나를 이토록 그리움 속으로 빠뜨리는지 모르겠다. 너는 지금 어떤 시절을, 어떤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니? 그 문턱을 이미 잘 넘겼으려나.     



 그리움은 참 잔인한 것 같아. 형태도 없으면서 오감으로 찾아오잖아. 그러니까, 지나간 모든 과거는 언제, 어떤 감각으로 우리에게 그리움으로 찾아올지 모르는 거야. 지금을 그리워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 아마 손끝이 저릿하지 않을까? 지금의 나는 이국의 낯섦이 너무 그리워. 기억도 감각도 희미하지만, 호주의 태양도, 삿포로의 라벤더밭도, 사이판의 태평양도 다 그리워. 읽지 못하는 표지판과 처음 들어보는 음악 그리고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언어 속에서 나는 분명 웃고 있었으니까. 당장에 걱정할 건 어떤 음식을 주문할지, 다음 코스로는 무엇을 타고 갈지 같은 사소한 것이었으니까. 당장의 행복만을 위해 결정하고, 움직이던 그때의 낯설었던 모든 순간이 너무 간절해. 언젠가 또 떠날 날이 있겠지.     



 이렇게 자주 뒤돌아보면 그 길을 따라가게 될지도 모르지. 사람들은 ‘뒤돌아보면서 걷지 마라, 넘어진다.’라는 말 자주 하잖아? 그런데 나는 가끔은 뒤도 돌아보면서 걷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야 내가 가고 있는 이 방향이 잘 맞는지도 확인할 수 있고, 또 넘어져서 방향이 틀어진 길이 내 길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리움과는 멀어질 수 없는 사람인 것 같다.      



 어쨌든 이 편지도 아주 적절한 순간에 너에게 펼쳐지기를 바라. 그리고 그때, 나로 인해 너의 괴로움이, 그리움이 조금이라도 해소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나처럼.      


    

고맙고 그리운 마음을 담아, J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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