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Dear. blank 12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은 Mar 27. 2024

너의 그리움이 나를 부를 때

Daer. (       )     



 그런 적 있어? 정말 읽고 싶은 책이 있어서 샀는데 막상 읽으려고 하니까 손이 안 가는 거야. 그러다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우연히 그 책을 집어 들었는데 그게 그렇게 마음에 와닿고, 울컥하고 너무 좋은 거지. 마치 지금을 위해서 그 책을 아껴둔 기분이거나 ‘아, 이 책이 나를 불렀구나.’라고 느낀 적 말이야. 나는 생각보다 그런 경험이 많아.     



 네 편지도 그래. 지난가을에 받았으니 한 계절이 훌쩍 지나고, 해도 바뀌도록 잊고 있었어. 그런데 어제 문득 그 편지를 찾고 싶은 거야. 분명 서랍에 넣어두었는데 한참을 찾아도 없어서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몰라. 결국 책 사이에서 네 편지를 찾아서 읽게 되었어. 왜 하필 지금이었을까 네 편지가 생각난 게.      



 너는 가을을 그리움의 계절이라고 말했더라. 그런데 사실 언제나 그리움의 계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이 봄이 내게는 그리움의 계절인 것처럼. 가을의 너와, 봄의 나. 그리고 그 사이의 겨울과 네 편지. 이 모든 단어들이 왜 나를 이토록 그리움 속으로 빠뜨리는지 모르겠다. 너는 지금 어떤 시절을, 어떤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니? 그 문턱을 이미 잘 넘겼으려나.     



 그리움은 참 잔인한 것 같아. 형태도 없으면서 오감으로 찾아오잖아. 그러니까, 지나간 모든 과거는 언제, 어떤 감각으로 우리에게 그리움으로 찾아올지 모르는 거야. 지금을 그리워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 아마 손끝이 저릿하지 않을까? 지금의 나는 이국의 낯섦이 너무 그리워. 기억도 감각도 희미하지만, 호주의 태양도, 삿포로의 라벤더밭도, 사이판의 태평양도 다 그리워. 읽지 못하는 표지판과 처음 들어보는 음악 그리고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언어 속에서 나는 분명 웃고 있었으니까. 당장에 걱정할 건 어떤 음식을 주문할지, 다음 코스로는 무엇을 타고 갈지 같은 사소한 것이었으니까. 당장의 행복만을 위해 결정하고, 움직이던 그때의 낯설었던 모든 순간이 너무 간절해. 언젠가 또 떠날 날이 있겠지.     



 이렇게 자주 뒤돌아보면 그 길을 따라가게 될지도 모르지. 사람들은 ‘뒤돌아보면서 걷지 마라, 넘어진다.’라는 말 자주 하잖아? 그런데 나는 가끔은 뒤도 돌아보면서 걷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야 내가 가고 있는 이 방향이 잘 맞는지도 확인할 수 있고, 또 넘어져서 방향이 틀어진 길이 내 길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리움과는 멀어질 수 없는 사람인 것 같다.      



 어쨌든 이 편지도 아주 적절한 순간에 너에게 펼쳐지기를 바라. 그리고 그때, 나로 인해 너의 괴로움이, 그리움이 조금이라도 해소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나처럼.      


    

고맙고 그리운 마음을 담아, J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