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지러움 때문에 계속 항히스타민을 먹다가는 약을 평생 먹어야 할 수 도 있습니다."
피부 발진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약을 타오던 내게 피부과 의사가 한 말이었다.
그전까지는 나의 증상과 약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 휴직을 하기도 전이었고 기침이든 무슨 증상이든 약을 먹고 치료만 받으면 금방 낫겠지 하고 후유증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코로나 후유증은 코로나가 걸린 5-6주 이후에 발현되었고, 나는 그로부터 한 달 뒤쯤부터 병가를 썼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내 몸에 생긴 증상이 꽤나 심각한 것임을 깨달았다.
코로나 후유증 센터라는 2차 병원에 가보았다.
당시 후유증 센터가 우후죽순으로 생기기 시작할 때라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나마 믿을만한 집에서 꽤나 먼 곳까지 방문했다.
그곳에서 내 질병에 결론이 나기를 바랐지만,
들을 수 있던 말은 엑스레이 사진 상으로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정상 소견이라는 말 뿐이었다.
당시 내 증상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특히 냄새를 잘 못 맡기 시작하자, 일상생활에 혼란이 느껴졌다.
방금 세탁을 마친 섬유유연제가 냄새가 가득해야 할 빨래에선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도 아무런 냄새가 없었다.
다만, 신경은 아직 살아있었는지 강한 냄새를 맡았을 때 느낄 수 있는 코를 찌르는 고통이 남아있었다.
아예 냄새가 안 맡아지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탄내가 맡아졌다.
그게 코로나 후유증 때문에 생긴 이취인 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없는 방이나 집에서 나는 탄내의 근원을 찾기 위해 킁킁거리며 온 집을 뒤졌다.
결국 코로나 후유증센터에서 치료가 실패로 끝났다. 코로나 후유증은 여전했을 뿐 아니라, 내 고통이 외면받는 것 같아 몸과 마음이 동시에 황폐해지고 있었다.
더 이상 양의학으로 치료가 어렵다는 판단에 집 근처 한의원을 갔다.
한의사 선생님은 매우 친절했다. 코로나 후유증에 엄청난 공감을 해주었고, 안부를 물어주었다. 그 결과로 약 두 달 치를 지어주었다.
약값은 꽤나 비쌌지만 만족스러웠다.
한약을 마시고 나서 후유증이 치료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한 것은 당연한다.
그러나 그와 상관없이 한의원에서는 일반병원에서 느끼지 못했던 코로나 후유증에 대한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몸의 질병은 마음의 질병으로 이어졌다.
의사도 모르겠다는 나의 병세에 안 그래도 아픈 몸에 혼란스러움이 가중되었다.
아무도 끝을 알 수 없는 병을 갖게 되었다는 혼란은 내 몸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평소에 보던 프로그램을 보아도, 말이 빠르게 느껴져서 하는 수 없이 일시정지버튼을 눌렀다.
그 이후에 보는 영상은 그저 빈 집의 소음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대학병원에서 코로나 후유증 진단을 받고, 휴직을 시작했을 땐
매일매일 내 몸에 생기는 이상증상을 열심히 적어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다이어리에 하루에 한 일 대신, 증세를 적기 시작했다.
오전 10시 복통, 11시 어지러움, 12시 발진
오후 2시 두통, 오후 4시 식은땀, 오후 7시 오심
증상을 받아들이는 것 만으로 내 하루가 가득 찼다.
아직도 증상을 적던 내가 더 이상 쓰기를 포기했던 날이 생각난다.
갑자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증상이 나타났다.
밤에 헛구역질을 심하게 해서 잠을 자다가도 한밤중에 깨기 시작한 것이다.
몸이 간지럽거나, 복통이 생기거나, 어지럽거나 하면 나는 고통을 피해 잠 속으로 도피하곤 했다.
하지만, 결국 헛구역질로 인해 잠을 자는 것도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다는 깨달음에 하루 만에 내 의지는 무기력해져 버렸다.
그래서 한동안 열심히 증상으로 채워졌던 일기장은 그날 이후로 멈추었다.
다시 일기장에 그 어떤 글자든 다시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 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