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 정유정
끔찍했다. 한 남성이 코와 입에서 덩어리진 피를 흘리며 죽어있고, 집 안에 갖혀있던 늑대개가 도망치는 첫 장면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책은 치사율이 거의 100%에 달하는,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빨간 눈 괴질'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화양'이라는 서울 근교의 도시 전체가 공포에 휩싸이며 시작된다. 결국 정부는 도시 전체를 폐쇄하고, 군인들을 동원하여 화양 시민들의 다른 도시 진입 뿐만 아니라 도시 내에 이동까지 통제한다. 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이 하루 아침에 파괴된 것이다.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미디어의 엄청난 파급력을 보여준다. 빨간 눈 괴질이 '인수공통전염병', 즉 동물과 사람 서로가 서로에게 옮을 수 있고 옮길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오자마자 도시 모든 개들의 살처분이 시작된다. 도로에는 시민들이 버린 개들이 넘쳐나고, 그런 개들을 사람이 죽이고 급기야는 개가 사람을 물어 죽이기까지 하는 믿을 수 없는 광경들이 벌어진다. 빨간 눈 괴질을 해결할 수 있는 정부의 제대로된 대책과 기본적인 의료 지원도 받지 못하는 시민들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계속 죽어가고, 한 도시 안에 완전히 갖혀버린 사람들은 강도, 폭력, 강간을 서슴치 않고 저지른다. 400페이지가 훨씬 넘는 이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비극적이고 참혹한 풍경을 묘사한다. 인간이 죽음의 공포와 극한의 상황 앞에서 얼마나 야만스러워질 수 있는지, 서로를 어떻게 파괴시킬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 모든 고통, 증오와 죽음 앞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살기 위해 다같이 모여 집회를 열고, '살고 싶다'고 한 목소리를 낸다. 재형과 윤주처럼 첫 만남부터 서로를 적대시 했던 두 남여가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가 개에 물려, 말 그대로 개죽음을 당한 상황에서도 기준은 소방대원으로서의 자신의 책임을 다한다. 끝을 알 수 없는 비극 앞에서 자신의 폭력성을 더하는 동해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 끝까지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정유정 작가는 결국 그것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 생존을 향한 열망' 같은 것을 말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결국 우리는 그렇게 견디고 이겨내고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기어이 그래야만 한다고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너무나 비극적이고 불행한 이야기라서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이 실은 이런 일이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을거라고 단정지을 수 없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소설 속 불행한 이야기가 지난 해 온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메르스' 사태나, 국민과 유가족들에게 평생의 슬픔과 아픔을 남긴 '세월호' 사건과 결코 무관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정부의 안일한 대응과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는 감추기식 해결.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관계자들의 무책임함. 이 책에서 보여지는 모습들이 바로 우리 대한민국의 현주소인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에 대한 갈망과 비극을 뛰어넘는 사랑 같은 것들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책을 읽고 침통한 기분이 드는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저 이토록 큰 비극이 현실에서는 더이상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그때 살려고 애쓰는 것 말고 무엇이 가능했겠느냐고. 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성이었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성. 그가 쉬차를 버리지 않았다면 쉬차가 그를 버렸을 터였다. 그것이 삶이 가진 폭력성이자 슬픔이었다. 자신을, 타인을, 다른 생명체를 사랑하고 연민하는 건 그 서글픈 본성 때문일지도 몰랐다. 서로 보듬으면 덜 쓸쓸할 것 같아서. 보듬고 있는 동안만큼은 너를 버리지도 해치지도 않으리란 자기기만이 가능하니까. : P 346
대원들 대부분이 기준처럼 혼자가 됐거나 돼가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소방차를 타는 건 도망치기 위함일 거라고. 기준은 생각했다. 현재에 이르게 만든 모든 것들에 대한 분노로부터, 매일 매 순간 밀려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사랑는 이를 잃은 슬픔과 홀로 남았다는 외로움으로부터, 다시는 일상을 되찾을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으로부터. 저 많은 사람들이 이 광장에 모여 앉아 울분을 토하고, 박수를 치고, 내일을 희망하며 삶을 확인하듯. : P 410
사람들은 남자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광장엔 숨소리 하나 울리지 않았다.
"나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살고 싶지 않습니까."
누군가 "나도 살고싶다."고 외쳤다. 그것이 선창이 됐다.
사람들은 주먹을 흔들며 '떼창'으로 "살고 싶다."고 외쳤다.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일어나 가슴을 치며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자도 있었다. : P 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