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는 독서모임 말미에 정한다. 하고 싶은 주제를 마구 던지고, 그 중 하나로 의견을 모은다.
지난 독서모임에서 등장한 여러 주제 중 '고전'이 뽑히는 순간, 결심했다.
제일 얇은 걸 읽어야겠다!
하지만 실패했다. 딩가딩가 아빠가 귀신 같은 속도로 우리집 고전 책장에서 골라가 버렸다, 제일 얇은 책을.
이런 속도 처음이다.
베란다 캠핑장에 네 권의 책이 놓였다
: 초롱초롱 복학생_ 파리대왕
: 시큰둥 고딩_인간실격
: 딩가딩가 아빠_금오신화
: 작가엄마_멋진 신세계
제목만 들어도 급격하게 흥미가 사라지는 책들이 등장했다. 날아다니는 파리가 아닌 파리대왕, 들어봤지. 금오신화?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그것도 들어봤지, 아마 문제도 풀었을 걸. 고전에 대한 누군가의 정의는 정확했다. 들어봤지만 읽지 않은 책, 그것이 고전이었다. 가족독서모임의 치명적인 단점이 발견되었다. 이번엔 참석 못할 것 같아, 가 안된다. 순순히, 책을 읽어야만 한다.
우리는 결국 다 읽었다. 20자 소개도 깔끔하게 완성했다.
: 초롱초롱 복학생_ 파리대왕
<생존 본능에서 나오는 인간의 본성>
: 시큰둥 고딩_인간실격
<어쩌면 현대인의 자기소개서일지 모른다>
: 딩가딩가 아빠_금오신화
<잃어버린 왕에 대한 그리움만 있는 조선의 첫 소설>
: 작가엄마_멋진 신세계
<완벽한 인간공장의 불량에 관하여>
복학생은,
<파리대왕>을 읽기 전엔 조난당한 소년들의 생존기를 기대했다고 했다. 읽다보니 이 소설은 불을 피우고, 물고기를 잡아 먹는 방법이 아닌 인간의 또 다른 생존 방식인 정치에 관한 이야기라고 평했다.
고딩은,
다른 책에서 <인간실격>을 추천해서 읽게 되었다고 했다. 자기계발서였는데, 왜 이 소설을 추천할까 궁금하던 차에 독서모임 도서여서 열심히 읽었단다. 저자인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이야기가 포함된 이야기를 다 읽고 나니, 표지에 에곤 실레의 자화상이 실린 이유를 알 것 같다고 했다. 푸린양은 이 소설은 현대인의 자기소개서, 라고 소개했다. 궁금해지네.
아빠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읽었다. 단군신화 같은, 신성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아니었다고. 경주에 있는 '금오산'에서 작가 김시습이 쓴 새로운 이야기라는 의미라고 한다. 생육신인 김시습이, 단종을 그리는 마음을 소설로 풀었는데 귀신이 등장한다, 그래서 최초의 조선판타지 소설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렸다고. 최초의 한문소설이라는 점에서 구성이나 전개가 허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멋진 신세계>를 읽었다. 무작정 읽다가, 책 소개글을 다시 찾아 읽었다. 이 소설이 1930년대에 쓴 거라고?
놀라울 정도로, 세련되었다. 지금 우리의 최대 난제인 '출산'을 이렇게 해결했다고? 이건 예언서야, 하면서 읽었다.
독후활동, 표지를 만들어 보아요!
다이소에서 1,000원짜리 캘리그래피 용지를 샀다. A5 크기의 도톰한 종이가 14장이나 들어있다. 표지 만들기에 딱 좋겠다. 색연필이랑 사인펜을 번갈아 쓰면서, 저마다 끙끙거리며 표지를 새로 만들어보았다. 최강자는 이번에도 고딩이었다. 저렇게 그림을 잘 그렸다고? 표지 디자인을 저렇게 잘 했다고? 이 정도라면, 예술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