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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춘희 Dec 07. 2023

아빠가 책을 안읽었다!

탈퇴를 위한 큰그림인가?



두 번째 가족독서모임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캠핑장 예약을 해두었고, 불멍할 작은 화로랑 구워 먹을 도톰한 마시멜로도 챙겨두었다. 

이제, 책만 읽으면 된다.


이번 독서모임의 테마는 <이슈>다.

<이슈>에 관한 어떤 책도 좋다.

초롱초롱 복학생은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겠다고 했고, 

나머지 가족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기로 정했다.

이제, 책만 읽으면 된다!



대망의 가족독서모임 날이 밝았다.

우리는 캠핑장 대신 동네 카페에 모여 앉았다.

예정했던 날짜에 비가 주룩주룩 내려서 캠핑장 예약을 취소해야 했다. 덩달아 화로랑 마시멜로도 환불했다.

텐트도 없는 헐렁한 캠핑족에게 겨울 캠핑이란 없으니까.

화로야, 마시멜로야, 내년에 만나자 꼭.


캠핑의 꽃인 불멍이 사라졌다.

아, 이번 독서모임은 재미가 없을 것 같....

하지만 밝고 따뜻한 카페에 들어서며, 투명한 유리문으로 분리된 넓은 테이블석에 앉으며 살며시 고개를 흔들었다. 독서모임이 재미가 없을 것 같다고 누가 그래? 이렇게 따뜻하고 예쁜데. 

달콤한 청포도에이드와 쌉쌀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씩 넘겼으니 이제 독서모임을 시작해볼까?





아빠가 책을 안 읽었다


이럴 줄 알았어.

책 읽는 모습을 못보겠더라니.

모임이 금방이라고 경고를 했는데도, 안 읽더라니.


딩가딩가 아빠는 3분의 1 쯤 읽었다고, 실토했다.

아아..! 

실망스러웠지만 이대로 모임을 멈출 순 없다.






이번 가족독서모임의 테마는 <이슈>였다.

가족독서모임의 시그니처인 키워드 3개 뽑기를 하고, 이번에는 20자 소개를 해보았다.


: 초롱초롱 복학생_어린이라는 세계

<어린이가 보는 세상과 세상이 보는 어린이에 대한 책>

: 시큰둥 고딩_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13명을 살해한 아들의 엄마가 과연 아무 것도 몰랐을까라는 의문을 가진 이들에게 전하는 

엄마의 심정>

: 딩가딩가 아빠_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한국 영화 실미도가 생각난다. "비겁한 변명입니다">

: 작가엄마_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학살자를 기른 엄마의 사무치는 반성문>


스무개의 글자로 소개하기엔, 무리였다. 특히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에 대해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고, 서로의 의견이 극단적으로 나뉘었다. 나는 이 도서를 '엄마의 반성문'이라고 해석했지만, 고딩과 아빠는 '엄마의 변명'이라고 판단했다. 아들 딜런이 범죄 현장의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엄마가 아들이 죽기를 바라는 기도를 올렸다는 대목에선, 딩가딩가 아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말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한 아빠에 반해, 나는 어떤 심정으로 그 기도를 올렸을지 이해가 되어 마음이 아팠다. 나는 책을 읽으며 양육자가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고딩 푸린양은 청소년이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독서모임 내내, 우리는 아주 달랐다. 공감하는 정도, 분노 포인트가 매우 달랐다.


과열된 타이밍에 복학생이 어린이라는 세계》의 귀엽고 귀여운 양말 에피소드를 들려주지 않았다면, 집안 싸움이 났을 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실내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양말을 벗는다는 에피소드가 인상 깊었다면서, 초딩 학원에서  알바할 때 이야기를 들려줬다. 꼬맹이들이 집에 갈 시간이 되면, 자꾸만 양말을 찾았다고 한다.

내 양말 어디 갔지? 어딨지?

한참 찾아보면 외투 주머니나 가방 어딘가에 뭉쳐져 있었다며 도대체 꼬맹이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책을 읽으면서 어린이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실내에서 양말을 벗는 어린이의 세계를. ^^




독서질문 명화카드를 만들었어요!




독서하는 모습을 그린 명화를 모아, 독서질문카드를 만들었다. 도톰한 종이에 그림을 출력하고, 뒷면엔 포스트잇에 질문을 써서 붙였다. 한 장씩 뒤집어가며 대답을 하다보면, 책에 대한 생각이 가지런하게 정리된다.


Q. 인상 깊었던 구절

Q. 등장 인물 중 누구에게 가장 공감했나요?

Q.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Q. 이 책을 읽은 후, 꼬리를 이어 감상하면 좋을 책, 영화, 음악을 추천해 보아요.

Q. 원래 즐겨 읽는 분야의 책인가요?

Q. 누구에게 추천하고 싶은가요?

Q. 저자나 편집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Q. 읽기 시작했을 때와 다 읽은 후, 내가 달라진 것이 있나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Q. 한 번 더 읽고 싶은가요?




독후활동_ 지금 나의 이슈는!


이번 독서모임의 테마가 <이슈>이니, 지금 나의 이슈를 그려보는 독후활동을 했다. 그 중 응원하고 싶은 이슈에 색을 칠하고 보니,


복학생_ 워킹홀리데이, 영화, 디지털노마드

고딩_수능, 크리스마스, 축구(설영우 선수)

아빠_ 건강, 다음 독서모임, 울산 현대

엄마_ 건강, 아빠 흡연, 10년차 작가


짝짝짝, 박수치며 서로의 이슈를 응원해 주었다. 내가 가장 응원 받고 싶었던 이슈는 따로 있었는데 뇌구조 그림에서 꼬딱지 크기지만 내 눈엔 강렬한 <버버리 트렌치코트>. 아무도 응원하지 않았음.  




우리 가족의 헐렁한 캠핑은 실패했지만 치열하고 진지한 독서모임은 성공했다. 복학생이, 지난번보다 더 좋았다고 말해주었다. 음, 대학생이 좋았다고 하니, 기분이 모옵시 좋았다.


다음 가족독서모임 테마는 <고전>이다. 제일 얇은 책을 골라볼 참이다. 베란다 한쪽에 캠핑의자를 들여놓고, 독서캠핑코너를 꾸미고 있다. 12월 가족독서모임은, 베란다 독서캠핑장에서! 벌써 기대된다.



P.S

딩가딩가 아빠는 책을 3분의 1 쯤 읽었다고 실토했지만, 가만히 보니 5분의 1 정도였다. 제명이나 강퇴를 위한 큰그림이었다면, 포기하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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