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가족이 되기로 했냐고요?
부서 직원들이랑 함께 점심을 먹었다. 담백한 포케를 오물거리며 유쾌한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우리집 가족독서모임 이야기가 나왔다. 가족독서모임을 하고 있어요, 라고 하면 으레 묻는다.
"가족들이 책을 좋아하나봐요."
"책이요? 아, 뭐,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요."
대답이 시원찮은 모양인지 질문이 되돌아온다.
"지금부터 책 읽는 가족이 되자, 그래서 하는 거예요?"
책 읽는 가족이 되자, 이것 참 좋은 이유네! 그치만 내가 가족들이랑 독서모임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나는 대답했다.
"아이들이랑 이야기 하고 싶어서, 독서모임을 해요."
주말 딱 한 끼라도,
50대 엄마와 50대 아빠, 대학생 아들, 고등학생 딸. 넷이 함께 집에 머무는 시간은 길지 않다. 어쩌다 겹치는 그 시간마저도 저마다 좋아하는 공간에 콕 박혀서 조용히 분주했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 일주일, 우리가 같이 밥을 먹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어.'
그래서 선포했다!
"주말 한 끼는 무조건 다같이 밥을 먹는다!"
이렇게 쓰고 보니, 우리 집의 권력자인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선포가 아니라 요청이었다, 협조를 부탁합니다요. ^^
어쩔 수 없이 놓치는 때도 있었지만, '주말 딱 한 끼' 같이 먹기는 그럭저럭 이어갔다. 빠짐없이, 촘촘히가 아니라 그럭저럭. 한 주를 건너뛰기도 하고, 두 주를 빼먹기도 하면서 그럭저럭. 그럭저럭 이어간 '주말 딱 한 끼'는 쬐끔씩 더 느슨해졌다. 이러다 흐지부지되겠어!
가족독서모임을 해 볼까? 좋아하는 곳에서, 맛있는 거 먹으며!!
나의 포인트는 '가족독서모임'이었지만 가족들의 포인트는 '맛있는'이었다. 뭐래도 상관없다, 시간이 모아지기만 한다면. '주말 딱 한 끼'대신 '매달 딱 한 권만'이 되었다.
'주말 딱 한 끼'는, 사실 밥이 목적이 아니었다. '매달 딱 한 권만'도 책이 이유가 아니었다.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그 책을 왜 읽게 되었는지, 베스트셀러가 될 만한 이유를 찾아냈는지, 미라클모닝에 도전할 것인지... 독서 그 다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듣고 싶었다. 책을 빙자한, 아이들의 생각을. 책을 빙자한, 가족의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다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라고 물으면, 별 생각 없는데 라고 대답했다. 지금 이슈가 되는 이 사건 알고 있어? 라며 눈을 맞추면, 그거 인터넷에서 봤어, 하고는 바람소리를 내며 방을 들어갔다. 그랬는데!
가족독서모임이라는 타이틀이 붙고, 독서 주제가 정해지자 가족들은 목격한 적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문화에 대한 책을 읽은 후, 복학생 아들은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들고서 삶의 다양성을 언급하며 눈을 반짝였다. 이슈에 대한 책을 읽은 후, 고딩 딸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와 오은영의 금쪽이 프로그램을 명쾌하게 연결지었다. 고전에 대한 책을 읽은 후, 아빠는 <금오신화>에 대한 커다란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렇게 연결짓는다고? 고딩이 이렇게 수준높은 단어를 구사한다고? 깜짝 놀랐고, 특히 감동적이었다. 우리 고딩의 단어 수준은, 부끄러울 때가 몹시 많...았으니까.
한 달에 90분, 가족의 시간을 만들려고
독서모임을 하는 90분 동안, 요즘 대학생의 시각과 지금 고딩의 의견이 옛날 사람인 엄마 아빠의 가치관과 마구 섞여들었다. 아, 그렇구나,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때도 있었지만, 난 반대요! 하며 끝날 때도 있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탁 트인 캠핑장이니까, 예쁜 카페이니까, 아늑한 우리집 베란다 캠핑장이니까. 치즈가 쭈우우욱 늘어나는 피자를 먹어서, 어쩐지 오스트리아 삘이 나는 아인슈패너를 마셔서, 인스타에서 핫한 도넛을 오물거려서, 우리의 독서모임은 재밌고 맛있었다. 서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졌다.
'주말 딱 한 끼'가 밥이 목적이 아니었던 것처럼 가족독서모임도 '책을 읽자'가 목적이 아니었다. 눈 맞춰 이야기 하고, 귀 열어 듣고 싶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가족이랑 독서모임을 왜 하냐고요, 굳이?
아이들이랑 이야기하고 싶어서요, 꽤 진지하고 많이 재미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