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 소년, 해리
알로호모라
★★★★★
"열려라. 참깨"
요즘 로또를 확인하며 내가 하는 말.
"닫혔다. 참깨"
낙첨됐다는 걸 확인하며 내가 하는 말.
되는 일이 없는 요즘에는 매번 로또를 사지 말자면서도 일말의 희망에 들어차 집 앞에서 되지도 않을 로또를 사고 또 사고. 돈 들어올 일은 없고 돈 나갈 일만 있으니 이제 돈 버는 법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복권에 기댄 일주일을 보낸다. 뭐든 하면 된다던 20대도 지나버렸고 꾸역꾸역 버티면 된다던 30대도 끝자락이다. 막막하다.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는 바보 같은 질문에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다 했지만 요즘은 10대로 돌아가고 싶다.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교복을 입고 등교를 하던 그 시절이 어쩌면 가장 걱정 없을 시기였으니까.
대신 10대로 돌아가게 할 마법이 있다면, 그렇다면 그와 동시에 호그와트에 입학시켜 달라고. 매번 그렇게 빌었던 것 같다. 금세기 최고의 마법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읽고서부터 나의 소원은 호그와트 입학이 되었다. 하루아침에 마법학교에 입학하고 부모님이 남겨준 어마어마한 유산을 상속받고. 그렇다면 나도 해리처럼 계단 밑 벽장에서 10살까진 불만 없이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그럼. 그게 뭐 대수라고. 영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돌려보고 돌려볼 때마다 마법을 배우는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를 보며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그래서 어쩌다 보니 나도 주문은 헤르미온느만큼 많이 아는 우등생이 되어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부터는 로또를 사면 '열려라 참깨' 말고 우리 모두 '알로호모라'를 외쳐보도록 하자. 알로호모라!
"주문책 7과에 나와."
제발 내 인생길이 열리라는 의미에서 다시 한번 외쳐본다. 알로호모라!
뭐든 재능이 뛰어난 해리는 비행 수업에서 빗자루 타는 법도 하루아침에 섭렵해 퀴디치 수색꾼이 된다. 어디서 물려받은 재능인가 했더니 부전자전이더라. 이게 바로 유전자의 힘인가. (똑똑한 헤르미온느는 어쩜 이것도 알고 있었담.) 뭐든 술술 잘 풀리는 이 첫 시리즈가 유독 좋은 건 해리가 정말 행복해 보이는 순간이 영화 내내 가득하기 때문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오프닝 변화만 보더라도 느낄 수 있다. 점점 어두워지는 마법 세계관은 볼드모트가 등장하면서부터 어둠으로 물든다. 하지만 가족 영화의 대가라 할 수 있는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이 연출한 초창기 두 편의 시리즈는 해리의 학교생활이 주된 이야기라 볼 때마다 부럽기 그지없다. 계단 밑 벽장으로 호그와트 입학 통지서를 받는 그 순간부터 해리는 나의 부러움이 되었다. 마법 모자를 쓰고 기숙사 배정을 받는 순간에는 성격상 있지도 않은 질투마저 생기더라. 그렇게 해리는 나에게 부러움이자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그나저나 나는 왜 해리포터 스튜디오 갔을 때 입학통지서를 사 오지 않았는가.)
따지고 보면 난 특출 난 것 하나 없이 조금은 착하단 이유로 후플푸프에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정작 내가 가장 가고 싶은 기숙사는 래번클로이면서도. 어쩌면 나도 해리처럼 빌지 않았을까. 후플푸프 말고 래번클로로 보내달라면서 말이다. 제 스스로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능력이자 엄청난 복이다. 호그와트의 기숙사를 수도권 대학으로 생각해 보자. 해리는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갈 수 있던 능력자다. 어둠의 마왕 볼드모트의 재능과 우등생 부모의 유전자를 부여받은 인물이니 능력과 복 모두를 지닌 인재이며 행운아다. 서울대를 갔든 연세대를 갔든 고려대를 갔든 어디든 갔을 거다. 난 공부도 그다지 잘하지 못했고 글 쓰는 재주도 그리 뛰어나지 못했으며 돈도 별로 없어서 대학을 포기했다. 물론 어영부영 입학은 했지만 졸업은 하지 못했다. 호그와트라면. 어떡해서든 졸업은 하지 않았을까. 하긴. 모를 일이다. 호그와트 교재비가 어마어마하게 비싼 걸 보면 (영화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퍼시가 언급한다.) 학비도 꽤나 비쌀 테다. 헤르미온느 부모님도 치과 의사잖아. 그러니 학비 안 밀리고 떵떵거리면서 학교에 잘 다녔겠지. 론도 잘 보면 가난하지 않다. 아버지 아서는 마법부에 다니는 공무원이며 어머니 몰리도 명문가 집안 출신이다. 게다가 식구가 그렇게나 많은데 모두 무탈하게 호그와트에 입학하지 않았나. 쌍둥이로 태어난 프레드와 조지는 훗날 자수성가하여 집안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나저나 위즐리 형제의 장난감 가게는 대출 없이 장사를 시작한 걸까. 새삼 궁금하다.
왜 이렇게 돈 걱정에 휩쓸리게 됐을까. 그저 호그와트에 입학하고 싶다던 나의 소원은 언제부턴가 입학금은, 교재비는, 기숙사비는, 등등. 그저 돈이 전부인 세상에서 내가 살 길은 오직 돈뿐이라는 듯 돈이 없는 나를 탓하게 됐다. 하긴. TV 드라마 [안나]에서도 그런 대사가 나오잖아.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게 있다면 혹시 돈이 부족하진 않았나 생각해 보라고. 물론 파란만장한 해리의 인생이 돈으로 풀린 것만은 아닐 테다. 해리는 뭐든 제 스스로 선택하는 아이였으니 볼드모트의 후예를 자처하지도 않았을 테고 자신 안에 살아남은 볼드모트의 영혼 조각도 몰아내고 온전한 자신으로 다시 태어났겠지. 해리는 정말 대단하고 자존감이 높은 아이다.
그런 모험을 모두 감당하긴 정말 힘든 일이겠다. 그래도 난 여전히 영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보며 현실에서 도망쳐 호그와트에 들어선다. 해리와 함께 웃으면서 위기도 극복하고 소원의 거울 앞에 앉아 하늘로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고 제 양옆을 지켜주는 친구 론과 헤르미온느를 만난다.
"너도 이전의 많은 사람들처럼 이 거울에서 기쁨을 얻는구나."
그래. 어쩌면 영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지금 나에게 소원의 거울일지도 모르겠다. 항상 영화 앞에 앉아 현실을 외면한 채 주저앉아만 있으니까.
"꿈에 사로잡혀 살다가 진짜 삶을 놓쳐선 안돼."
그런데 덤블도어 교수님. 지금 저에게는 이 꿈이 가장 필요합니다. 다시 진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금 이 꿈이 가장 필요합니다. 해리가 거울 속에서 본 엄마의 얼굴을 나는 잊을 수가 없거든요. 지금은 엄마 얼굴을 겨우 그려내며 하루를 견디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해리에게 며칠의 시간을 더 주세요. 거울 속 엄마의 얼굴을 더욱 또렷하게 새길 수 있게요. 학교가 끝나고 극장에서 처음 본 이 거울 장면은 가장 지루한 장면이었는데 지금 난 그 장면을 보며 울먹인다. 고아인 해리의 얼굴이 어느새 내게도 새겨져 있어 그런가 보다.
로또, 그리고 해리.
요즘 내 일주일을 채우는 것들.
막막해서 살기 싫다면서 여전히 나는 일말의 희망을 부여잡고 있다. 오늘도 여전히 영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보면서 내일은 일 가기 전에 로또를 하나 사보자며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고쳐보자. 내일은 뭐든 써보자고. 어떡해서든 써보자고. 론 말처럼 마법의 약 기말고사나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마법사의 돌을 지키는 게 급선무였던 해리처럼 나도 이제 내 글을 쓰는 게 급선무라 생각하자. 돈이나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래도 돈 걱정은 끝나지 않지.) 그러니까 다시 한번 외쳐본다. 알로호모라! (펠릭스 펠릭시스가 있다면 참 좋으련만.)
P.S /
클라이맥스에 헤르미온느가 약병 고르는 장면을 삭제한 건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