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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가 Oct 03. 2024

예술은 모험을 만나

마이크롭 앤 가솔린

마이크롭 앤 가솔린 / 소년, 다니엘

예술은 모험을 만나 출발

★★★★☆




다니엘(앙주 다르장)의 손에는 물감이, 테오(테오필 바케)의 손에는 가솔린이 묻어있다. 나는 뭐든 연필로 하는 소년이었다. 쓰는 것도 칠하는 것도 그리는 것도 심지어 궁금한 것도 연필로 써서 물어보고는 했다. 그래서 내 손에는 항상 연필심 가루가 묻어있었다. 그런 내 손을 본 아이들은 때가 꼈다며 놀려댔다.


"지숙이 손에 때 꼈대요."


별명은 지숙이. 사근사근한 내 성격이 소녀스럽다고 지어준 별명이다. 솔직히 인정한다. 누가 뭐라던 나는 소녀 같은 내 성격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마이크롭을 닮았다.




마이크롭은 다니엘의 별명이다. 마이크롭처럼 작다는 이유로 같은 반 아이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내가 작든 크든 아이들은 나를 마이크롭이라고 놀릴걸."


어린 시절의 별명이란 이다지도 유치하고 단순했다. 연필 대신 축구공을 가지고 놀았어도 아이들은 나를 끝까지 지숙이라 놀렸을 거다. 단순하면 무식하다더니 별명은 한 번 정해지면 끝이다.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가 없으니 학교생활 내내 따라붙었다. 하긴. 나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정말 소녀 같았다. 지금이야 나이를 많이 먹어 얼굴이 상했지만 그땐 나름 소녀의 얼굴이 비치던 소년이었다. 영화 [마이크롭 앤 가솔린]에서 다니엘은 단짝 테오의 여자친구로 오해받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심지어 아저씨가 엉덩이를 만지고 도망쳤다고도 한다. 좀 달라도 나 역시 그런 오해를 산 적이 있다. 버스 기사님이 여학생이냐 물어본 적도 있고 화장실에서는 나를 보고 흠칫 놀라던 남학생들도 수두룩했다. 하루는 같은 반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다 잠든 적이 있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에게 친구가 슬쩍 입을 맞추더라. 어릴 적 호기심에 무턱대고 저지른 행동이었을 테지만 어딘가 부끄러워 계속 잠든 척했다. 우리는 아직 연애 경험이 전무한 소년들이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소녀 같은 소년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나도 다니엘처럼 누군가를 이끌기보다 누군가에게 이끌리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테오 같은 소년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테오의 별명은 가솔린이다. 손이 기름 범벅이라 가솔린이다. (역시나 작명이 유치하다.) 테오에게는 절대 진리가 여럿 있다. 예를 들면 어릴 때 잘 나가면 어른 돼서 망가진다, 고통은 아름답지 않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약간 비정상이다. 이런 것들 말이다. 그래서 테오의 말에는 줏대가 있다. 테오는 그 줏대를 다니엘에게 선물한다. 텅 빈 전시회로 인해 다니엘이 실망하지 않게 테오 혼자서 수많은 관객이 되어주는 장면이 있다. 부모님도 형도 뮤즈가 되어준 로라도 오지 않았지만 테오로 인해 다니엘의 전시회는 관객으로 붐비게 된다. 형체 없는 관객들을 하나하나 마임으로 상대하는 테오를 보면서 다니엘은 웃음을 되찾고 자신의 착장물에 줏대를 세우게 된다. 몇 번을 돌려봐도 기분 좋아지는 장면이다.


"난 줏대가 없어."

"장난해? 너 완전 줏대 있어. 너의 전시회를 봐."

"아무도 안 왔는데 그게 뭐."

"그러니까. 너는 시대를 앞서가고 있는 거야."


테오는 영화 곳곳에서 응원도구를 바꿔가며 다니엘을 응원한다. 그 도구가 줏대이기도 영감이기도 자신감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어쩌면 나도 다니엘처럼 좋은 친구를 몰라봐준 건 아닐까란 생각에 스스로를 꾸짖게 된다. 그때 난 스스로를 꾸짖을 때 이런 표현을 썼더랬다. 해삼. 말미잘. 멍게. 낙지. 문어. 오징어.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쓰고 보니 유치하네.) 뒤늦게나마 친구의 진면모를 알아본 다니엘이 테오를 찾아 숲을 떠도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비슷한 또래였을 때의 내가 스친다.




장르가 소년인 영화는 꿈이 그들만의 특권이라는 듯 뭐든 멋져 보이는 구석이 있다. 둘은 집처럼 만든 자동차를 타고서 환상의 나라로 떠난다. 소년들은 몽상가이며 어른들은 치졸한 악당들이자 방해꾼이다. 자식들과 멀어진 치과의사는 둘을 집에 가두려다 실패하고 갱단 럭비부는 둘을 괴롭히려다 도리어 골탕을 먹는다. 어떤 장면에서 다니엘은 머리를 자르려고 성인 마사지숍에 들어가게 되면서 난처한 상황을 겪기도 한다. 어른들의 세상에 무단침입한 아이들의 장면이 터무니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정말이지 천진난만해서 뭐라 할 수 없다. 망상보다는 몽상에 가까워 참 싱그럽기까지 하다.    


"넌 대책 없이 낭만적이고, 난 기름때 성애자고."


그때 우린 그랬었나. 나는 그랬던 것 같다. 대책 없이 낭만적이었다. 그 낭만의 증거가 중학교 시절 일기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민망하지만 편지처럼 쓴 일기 한 페이지를 남겨보자면,


가끔 생각해. 나는 줄공책. 너는 연습장

한 편의 영화를 보며 줄줄이 생각을 펼치던 나는 줄공책

한 폭의 그림을 보며 무심코 상상에 잠기던 너는 연습장

그래서

나에게 필요한 건 너의 여백이고

너에게 필요한 건 나의 문장이 아닐까


지금 읽기에는 부끄러워 손발 오므리듯 일기장도 구겨버리고 싶다. 그래도 낭만스러운 소년의 증거로 남겨두기로 했다. 연습장 친구는 잘 살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러고 보면 내가 영화 [마이크롭 앤 가솔린]을 즐겨보는 이유는 아기자기한 장면과 천진난만한 소년 때문이기보다 친구라는 관계 때문이다. 다니엘은 그림을 그린다. 예술가의 감각으로 사랑을 겪고 감성으로 성장한다. 테오는 기계를 다룬다. 모험가의 상상으로 세상을 겪고 도전으로 행동한다. 둘은 이렇게나 다르다. 다니엘과 테오는 닮은 구석이 없지만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단짝이다. 세상은 홀로 서있기에 너무나 크지만 둘이라면 반이 줄어든단다. 그러니 다니엘과 테오의 세상은 함께이기에 무섭지 않다.




가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다니엘에게 엄마는 말한다.

"우리 아들 많이 컸구나."

그러자 다니엘이 답한다.

"아뇨. 세상이 줄어든 거예요."


다니엘의 예술은 테오의 모험을 만나 출발했다. 그래서인가 보다. 마이크롭은 영화 안에 남고 가솔린은 세상 밖으로 떠난다. 역시 (영화 속) 예술가와 (세상 밖) 모험가다.


영화 끝에 다니엘의 뮤즈 로라는 점점 멀어지는 다니엘의 뒷모습을 보며 속삭인다. 셋만 셀 테니까 뒤돌아. 하나. 둘. 셋. 일곱까지만 센다. 넷. 다섯. 여섯. 일곱... 무한대. 다니엘은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결코 돌아보지 않는 다니엘에게는 어느덧 테오가 물들어있었다. 사랑도 우정도 자라면 자랄수록 나를 견고하게 빚어주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니엘의 성장은 로라를 향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테오를 향한 우정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친구 같은 연인보다 연인 같은 친구를 원하나 보다고. 마이크롭과 가솔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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