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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g May 16. 2023

[호찌민 한 달 살기]알콩 달콩 메콩강투어

살다보면

호치민 한 달 살기 E BOOK 보러가기



그래도 베트남에 왔는데, 무언가 "베트남"적인 투어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메콩강투어"를 가기로 했다. 호찌민을 검색하면 항상 나오던 그 장면, 꾸정.. 아니 메콩강 위에서 배를 타고 베트남전통모자를 쓴 모습. 베트남에 왔으니 엄마아빠에게도 그런 장면 하나 남겨줘야지-

아이들과 함께 갈까 했지만 전체적인 일정을 보니, 차량->차량->배, 배, 배, 배 ->차량 이동이었다. 아무래도 이동의 피곤이 투어의 즐거움보다 클듯하여, 아이들은 학교를 보낸 사이에 당일 투어로 다녀오게 되었다. 10대와 70대를 동시에 모시는 건(?) 자신이 없었기도 하고ㅎ


아이들 등교를 시키자마자, 1군에 있는 여행사 집합소로 갔다. 우리가 아침 교통체증 때문에 조금 늦어지는 바람에 몇 번이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래도 10분 넘게 너그러이 기다려주었다. 마지막엔 3분만 더 기다려준다 했는데, 마지막 1분 전 가까스로 도착.


투어 가이드는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였다. 이제 이런 남자들을 보면 가장의 얼굴이 보인다. 이 사람은 메콩강을 몇 번이나 가봤을까. 악센트가 동남아이긴했지만 그의 영어는 세련되고 완벽했다. 일을 하다 늘었을까, 아님 어디선가 배웠을까. 나는 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것 같다.
분명 심한 동남아식 악센트인데 내 귀에 쏙쏙 박히는 걸 보면 나는 동남아식 영어에 더친숙한가 보다. 가는데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는데 쉬지 않고(나중에는 좀 쉬었으면 싶을 정도로 ) 호찌민의 역사와 여러 가지 호찌민 관련한 정보들을 알려주는데 꽤나 유용했다. 사실 나는 자유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어디 가서 투어프로그램을 다니는걸 별로 선호하지 않는데, 확실히 가이드와 투어를 하면 알게 모르게 느는 잡지식이 많아지는 건 좋은 것 같다. 오늘도 호찌민의 최악의 수질을 극복하기 위해 현지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물을 정화하기 위해 어떤 화학 처리를 했는지 별걸 다 알게 되었다.


그러다 투어의 꽃, 휴게소에 들렀는데 엄마아빠 달달한 커피를 사다 주려고 카페에 가서 "쓰어다"를 주문했다. 내가 "쓰어다"를 발음하니 잘 못 알아들어서 "쓰어다~~ 쓰어다??" 두 번쯤 발음하게 할 때 눈치챘어야 했거늘... 막상 나온 음료는 "쓰어다"가 아닌 "쏘다" 였다.. ㅋㅋㅋㅋㅋ

내가 영어로 "카페 쓰어다 시켰는데?? "하고 되물으니 동공이 흔들리는 아르바이트생이 급기야 매니저를 데려왔고, 그제야 상황파악 완료된 아르바이트생들끼리 여기저기 빵빵 터졌다. 뭐 대충 쓰어다인데 쏘다로 들었대.. 뭐 그런 대화였겠지.  소다와 쓰어다를 헷갈린 아르바이트생이 놀림거리가 되는걸 실시간으로 지켜봐야 했다. 미안하다 자식아.


동남아에서는 현지어도 영어도 아닌, 동남아식 영어를 해야 함을 한 번 더 느끼며 다시금 차에 탔다. 고급지게 이제부터는 한숨 푹 자라고 영어로 얘기해 주는 가이드가 어찌나 반갑던지. 마음이 편해져서 한숨졸고 나니 어느덧 어딘가에 내려졌다.

사실 투어에 메콩강만 있는 건 알았지, 뭐 딱히 중간에 어딜 들리는지 자세히 보지도 않았다. 사진으로 미리 보고 공부해 봐야 감흥만 떨어지지 않겠는가. 내려보니 거기가 사원이었을 뿐이다.

어느 동남아 투어가 그러하듯, 투어의 구성은 백반정식 구성 같았다. 메인하나 있고 곁다리반찬 같은 코스가 중간중간 섞여있는 모양. 이 투어도 진짜 메콩강을 보기 위해선 돌다리 두들기듯 지나쳐야 하는 투어가 많았다.
사원에 관심이 없는 우리는, 근처의 꽃구경을 하며 사복사복 걸었고, 넉살 좋게 낮잠 자는 동자스님 동상을 구경하며 1차 투어 스폿 클리어. 여행자 아니고 관광객스럽게 사진이나 대충 몇 장 찍으면 된다.


차를 타고 한참을  이동하니 어느 선착장이었다. 다음은 지속적으로 배를 타고 이동한다고 한다. 가이드가 빅보트, 스몰보트 뭐 여러 번 갈아탄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많이 갈아타는 건 줄은 몰랐네.


첫 코스는 배를 타고 들어가 어느 벌꿀 양봉장에서 하는 레스토랑을 거쳐 꿀차 한잔씩 얻어먹고, 꿀영업을 당하는 코스이다 ㅎㅎ 꿀의 퀄리티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는데, 자꾸 한국말로 언니 이거 좋아요, 마싯써요. 영업하는 눈빛에도 열정이 없다. 서로가 의무방어전 같은데 그 와중에 우리 어머니 그저 외국에서 뭐 사는 재미에 빠져, 자꾸 꿀을 사고 싶다는 뉘앙스를 내게 보이신다. 음음. 아니요. 엄마. 이거 쿠팡으로 사면 훨씬 더 좋은 거 싸게 살 수 있어. 팔을 끌어 잡고 간신히 말려왔다.


두 번째는 어느 꽃 정원 카페 같은 곳에서 내어주는 과일과 차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자꾸 어디선가 언니들이 와서 노래를 한곡조씩 뽑고 간다. 10대부터 50대까지, 여성의 노화의 시대별 변천사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 그 특유의 베트남 콧소리와 전통의상까지 어우져서 이색적이긴 했으나, 나는 앉아서 과일을 먹으며 나보다 이쁘고 젊은애가 코앞에서 기계처럼 부르는 노래를 듣는 게 영 마음이 편치 않더라. 고작해야 고등학교나 갓 졸업했을 것 같은데. 좀 더 다른 환경에 태어났다면 다른 곳에서 노래 부르고 있지 않을까. 하, 나의 잡념은 끝이 없다. 끝나면 기다렸단 듯이 팁박스를 가져가는 이 매정한 관광투어가 좀 얄미워지려고 한다. 좀 더 나이스한 관광상품을 만들 순 없을까?  점점 이 투어 코스에 지쳐갈 무렵 드디어 그제야 기다렸던 메콩강보트가 나왔다.

사진에서 보던 그 흙탕물 위 보트에서 노 젓는 여인네들. 이 한 장면을 보겠다고, 이 장면을 만들어주겠다고 여기까지 왔으니 노 젓고 앞으로 나가는 뷰 따윈 욕심내지 않고 (사실 욕심나지 않고) 엄마아빠 사진을 열심히 찍어두었다. 나중에 호찌민 재미없었다고 그르지 말아, 누가 어디 다녀왔냐 물으면 메콩강! 다녀왔다 해야 혀! 하면서.


사실 별거 없네 싶으면서도, 호찌민 도심 속에서 혹은 코리아타운에서만 보내던 느낌과 이렇게 대자연에서 만나는 베트남은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낙후된 한도시의 뒷면 같기도 하면서 오래된 전통적인 모습 같기도 한 느낌. 아마 메콩강을 들리지 않고 갔다면 나는 호찌민의 너무 화려한 모습만 보고 갔을지도 몰랐겠단 생각도 든다. 누군가는 땀을 흘리며 노를 젓고, 그 보트에 딴 관광객은 권태롭게 담배를 태우는 이런 장면들. 역사와 규모의 설명을 논하지만, 그냥 한낮 체험의 이름이 되어버린 메콩강.


그렇게 생각보다 짧은 메콩강 보트투어가 끝나면 그 섬안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제공한다. 우리는 그날 같은 투어에 참여한 영어를 쓰는 동양인 가족들과 조인해서 같이 식사를 했는데 미국에 사는 베트남가족 같기도 하고 그중에 홍콩 쪽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그중에 미국인(백인) 남편으로 추정되는 한 남자가 있었는데, 처음부터 시종일관 어찌나 지루하단 표정인지, 게다가 음식도 맘에 들지 않는지.. 뾰로통한 표정으로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핸드폰만 보는데.. 우리 어디 워터파크 가면 항상 영혼 없이 쫓아다니는 아버님들 생각이 나더라. 아, ㅎㅎ 이런 건 세계공용이구나. 처가댁 가족여행. 남자들의 노잼구간ㅋ


다행히 난 음식이 맛있었고, 맥주 두 잔 시켜 먹으니 울 아빠도 안 좋을 리 없었다. 배부르게 베트남 전통음식 먹고 가든 레스토랑 안에서 1시간 정도 휴식을 취했다. 안에 자전거도 있고 해먹도 있고 있어서 각자의 취향대로 잠시 떨어져 자유시간을 갖기로 했다.

아빠는 해먹에서 낮잠 한숨 때리고, 나는 당장이라도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구식 자전거를 타고 크게 한 바퀴 돌면서 인스타용 영상하나를 후다닥 찍고 ㅎ 아이고, 힘들다 하고 해먹에 누웠더니 이미 한 시간이 훌쩍이었다.


그렇게 메콩강 투어의 여정은 다 끝이 나고 왔던 구간으로 다시 뚝뚝이와 스몰보트, 빅보트를 타고 육지로 이동한다. 아따마 배 원 없이 탄다. 빅보트 타는 구간에서는 코코넛한통을 주시길래 강구경하며 코코넛도 한모금마시는데. 한강 지나며 스벅 마시는 건 갱장히 도시적이고 세련된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통통배 타며 습기에 꼬불거리는 앞머리를 만지작 거리는 꾀죄죄한 나는.. 이제 이곳이 더 어울리는 것만 같아..


늦은 오후가 되어가니 호찌민의 트래픽 잼은 더 심해져 집에 오는 길은 조금 더 길어졌고, 덕분에 버스에서 한숨 푹 잤다. 아침 8시 반부터 오후 5시 반까지, 이동수단만 한 10번은 바꿔 탄 꽤나 긴 투어였다. 그래도 운전해 주는 사람, 가이드해 주는 사람 따로 있어서 나는 그냥 엄마아빠 통역과 간단한 인솔정도만 해주면 되니 투어프로그램 진짜 편하네. 내가 혼자 이 코스로 두 분을 모시려고 했다면, 음. 아찔하다. 심지어 인당 3만 원도 안 하는 금액에 이렇게 하루종일 돌아다니고 먹고 하는 이 가성비까지 훌륭해.

(근데 이 2만 원 남짓한 금액으로, 어떻게 이 많은 과정에 인볼부된 모든 업체들과 정산을 할까..)


돌아와서 눈이 퀭해진 엄마아빠를 보니 너무 이동만 많고, 기대보다 조금 못 미쳤나? 막상 메콩강은 너무 짧지 않았나 살짝 아쉬움맘이 들려는 찰나였는데, 아빠가 씩 웃으며- 그런다.


"그래도 잉 나가 살다봉게 메콩강도 다 와본다잉~~"


하루치 피곤이 다 녹는 기분이었다. 하루 내내 별다른 반응 없이 잘 쫓아만 다니던 아빠가 피곤하고 재미없나? 싶었는데 그래도 좋았단다.


그치 아빠? 좀 늦깎이 여행자이긴 하지만, 이렇게 안와본곳 와보고 얼마나 좋아?

방구석에 맨날 내셔널지오그래피로만 보던 세상이랑 와서 실제로 보는 거는 다르제? 고거 보여줄라고 나가 오늘 여까지 왔당게-


가족 단톡방에 오늘 찍은 여러 사진들을 보낸다. 막상 사진으로 보내니 우리 꽤나 그럴듯한 베트남여행을 하고 있는 그림이다. 돌이켜보면 결혼 후에 엄마아빠만 모시고 셋만 어딜 간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셋만 있는 사진을 보니 기분이 오묘하고 그런다.

어릴 적 어딘가 놀이동산이나 졸업식에서나 찍을법한 그런 쓰리샷.
오늘만큼은 내가 준서연서 엄마 아니고, 엄마아빠 딸 같네.


내 비록, 그리 애교 많은 딸은 아니지만, 사실은 지금도 조금 쑥스럽지만 오늘 우리가 다녀온 곳의 이름을 이렇게 불러보는 건 어때?


알콩, 달콩, 메콩강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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