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g Feb 24. 2023

[호찌민 한 달 살기] 썰매대신 오토바이를

Summer Christmas

아이들과 처음으로 이곳에서 보내는 주말이자 크리스마스다.

이미 산타가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계신 우리 동심 없는 아이들은 진즉 본인들이 가지고 싶은 선물을 쿠팡링크까지 주면서 브리핑을 해주었고 ,덕분에 이브에는  서프라이즈가 아닌 몰에 가서 협의와 논의를 통해 본인들의 선물들을 직접샀다.그 어떤 별다른 감정적, 과정적 허례허식 없는 선물전달식을 아이들도 좋아했다. '산타가 여기는 더워서 못 오니까, 엄마가 사주는 걸로 알께' 이렇게 여유 있는 농까지 부리는 녀석들.


그래도 첫 주말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지 싶어, 며칠 전 첫째와 약속한 오토바이 투어를 해보기로 했다. 사실 호찌민에서 제일 흔한 게 오토바이인데 굳이 여행상품을 예약해서 탈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는데 (이것은 마치 서울 지하철을 투어프로그램을 예약해서 타고다니는 느낌) 아이들에게 그랩오토바이를 태워서 그저 한두 바퀴 돌아보는 걸로는 충분한 경험이 되진 않을 거 같고, 투어프로그램을 하면 여기저기 구경도 다닐 수 있으니, 안전보증차원에서나 여러모로 투어프로그램을 예약하는게 나을것같아서 오토바이투어를 예약했다.


예약했던 사이트:

https://www.klook.com/ko/activity/2003-saigon-motorbike-adventures-ho-chi-minh-city/?spm=Experience_SubVertical.Activity_LIST&clickId=1ae6d86d05


주중에 회사일이 너무 바쁘기도 했을테고 이도시에서 지긋지긋하게 오토바이를 탔을 동생에게는 우리끼리 다녀오겠으니 너는 안 가도 괜찮다 했지만, 아무래도 우리셋만 보내기엔 안심이 안되었는지 따라나서 주었다. 사실 안전하지 않은 것에 늘 걱정이 많은 남편의 성격을 아는 남동생이 아무래도 매형의 걱정을 좀 덜어주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그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4인가족처럼 보이는 1세대 남매와 2세대 남매, 두 흔한 남매가 같이 오토바이 투어에 올랐다.

이 프로그램이 전부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를 투어 시켜줄 드라이버들은 모두 대학생이었다. 일단 기본적으로는 영어가 되었고(메인 가이드의 영어는 훌륭했다) 아무래도 젊다 보니 여러모로 마음이 편했다.9살인 딸내미를 어떻게 태울지 좀 걱정이었는데, 유일한 여자였던 메인가이드가 앞에 태워주기로 해서 한시름 맘이 놓였다.나머지는 각자의 체구에 맞게 각각 드라이버를 매칭했다. 남동생이 키가 180에 한 등치 하는데, 타면서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예전에 오토바이를 타는데 여러 번 휘청했다며 ㅎㅎㅎㅎ


오토바이 투어프로그램은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같이 구경 다니는 거다.투어코스가 우리가 흔히 보는 여행책이나 블로그에서  명소라고 소개되어있는 곳은 아니어서 차라리 좋았다. 오토바이다 보니 모든 목적지 골목골목까지 끼고 들어가서 바로앞에 주차하고 후다닥 보고 나오는 기동성도 좋았다. 어디 버스 대절해서 우르를 내리고 한참 걸어가는 투어프로그램에서는 절대 못느끼지.

중간중간 내려서 영어로 관광지 소개도 해주고, 쌀국숫집도 가고 카페도 가서 커피도 마시는 코스가 포함되어 있어서 짧게 여행 오는 사람들에게는 알찬 코스일 것 같다. 나도 나름 시내를 몇 번 나와보긴 했지만 구석구석은 못 가봤던 터라 이 코스가 나름 나의 여행코스의 디테일을 충족해 주었다.( 하물며 남동생조차 처음 와본 곳이 몇 군데 있었다고..)


사실 우리는 "오토바이"를 타보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길 위에서가 더 재미있었다. 생전 태어나 오토바이라는 걸 첨 타보는 아이들 표정을 뒤에서 관전하는 건 위험부담을 감당한 엄마만이 얻는 베네핏이었다 . 둘째 딸은 약간은 무섭다면서도계속 놀이기구 탈 때의 흥분된 신난 표정을 하는 게 사이드미러로 시시각각 보였고, 첫째는 이쯤이야, 하는 표정이지만 입꼬리가 올라간달까. 여하튼 나는 다 안다. 너 지금 신난 거.

애들이 신나는게 계속 보고싶어서, 가이드에게 일부러 애들 뒤에 가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물론 나도 신이 좀 나기도 했다. 속도 내는 거 누구보다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사실 이곳의 오토바이는 기껏해야 20-30km/h 의 속도로 달리고 있어서 호찌민의 일상적인 얼굴을 스치듯이 지켜볼 수 있었고, 아이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때로는 뒤통수를, 때로는 나란히, 때로는 앞장서서 달리는 느린 달리기 같은 기분도 좋았다.


몇 군데의 관광지와 꽃시장등을 내려주며 설명을 자세히 해주었는데, 사실 우리는 그냥 빨리 또 오토바이가 타고 싶어서 후다닥 가자고 되려 막 마무리 짓기도 했다.


오토바이를 제법 타니 목이 좀 탈 때쯤(라임좋았다), 그들이 이끄는 카페로 갔다. 며칠 전 갔던 전통 베트남식 카페랑 분위기가 비슷했는데 이곳은 특이하게도 지하 벙커가 있는 카페였다. 나중에 우연히 벙커가 발견되어 카페가 된 썰도 듣고, 아이들과 지하벙커도 들어가 보고 했다. 기생충 영화에 나오는 그 지하가 딱 이런 느낌이겠다 싶었다. 이 세상만사에 감흥이 별로 없는 1세대 남매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꽤나 신기해했다. 하긴 너희는 이런 거 첨보겠구나. 어쩌다보니 베트남전쟁이야기부터 벙커가 발달할 수 밖에없던 이유까지.. 내친김에 벙커에서 베트남전쟁역사공부까지 이루어졌다. 설민석아저씨가 안부러웠던 순간.


좁은 벙커에서 나와 잠시 가이드들과 같이 티타임을 가졌다. 내가 자연스럽게 쓰어다를 시키자, 엄지척을 해주었다.  카페의 묘미는 수다 아니겠는가, 자연스레 서로의 소개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 친구들은 호찌민의 대학교에 다닌다고 한다. 학교도 다 다르고 전공도 다 달랐는데 모르긴 몰라도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같았다. 적어도 내가 대학생일때보다 더 영어도 잘하고, 열심히 산다^^^^;;

그날이 크리스마스였는데도 이렇게 아르바이트하는 이 학생들이 가이드가 아니라, 막 젊은 청년처럼 느껴지고 기특한건 내가 늙어가고있어서 그런거겠지. 하핫.

대화에 못끼는 첫째 아들이 가지고온 큐브를 시도 때도 맞추고 있었는데 , 어쩌다보니 대화가 거기로 흘렀다.마침 가이드 중에 큐브를 할 줄 안다는 친구가 있어서 그렇게 갑자기 치뤄진 국가대항배틀전.. 베트남 대학생 vs 한국 초등학생.

애초에 아들기살리기 같은 어른들의 짜고친 고스톱같았지만, 어쨌든 결과는 우리 아들의 승-

베트남에서 심지어 대학생을 이겼겠다. 모두가 대단하다 해주니, 아들이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감추지 못한다.


이때쯤 되니 카페에서 노곤하게 수다 떠는 게 더 편하고 재밌어지고 있었다. 이미 오토바이는 2시간 정도 탄상태라서 애들도 자꾸 또 오토바이타야하냐고 묻는것이 은근 싫증난듯 했고, 매연 때문인지 계속 피부도 간지럽고 목도 따끔거리는 것 같았다. 애초에 오토바이가 재밌을리 없는 남동생과 잠시 작전회의를 한 후, 나머지일정에서 쌀국수 먹는 건 생략하기로 했다. 어차피 매일 먹는 쌀국수이기도 했고, 저녁엔 이자카야를 부수러 가야 하므로, 배를 남겨두자는 대단치 않은 전략.


그래서 마지막 코스인 수상시장(이라 부르고, 그냥 어느 시골 부두가 느낌.) 까지만 구경하고 투어를 그만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갑작스런 여행중지통보에 뭔가 맘에 안 드는 게 있느냐고 가이드가 걱정스럽게 묻길래 대답했다.
" It is Christmas! :). 너희도 조기 퇴근하면 좋잖아! "하고 농담을 던지고는,
우리는 아이들에게 오토바이를 태워주는 게 목적이었는데, 충분히 태운 것 같고 저녁약속도 있어.사실 우리  매일 쌀국수를 먹고 있어서ㅋㅋ 그건 스킵해도 될 거라고 잘 설명해 주었다.이래도 되나싶어 고민하던 가이드가 회사에서 여행경비로 받아온 것 같은 현금뭉치에서 쌀국수값을 빼주려고 했지만, 사양했다.
"메리크리스마스! 그걸로 너희 커피라도 마셔!!"


별건아니었지만, 친구들이 조기퇴근해서 남은돈으로 커피라도 한잔할 모습을 상상하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손님도 있어야, 재미지 친구들아!


그렇게 단축된 오토바이 여행을 다 마치고서야,남편에게 아이들의 오토바이 사진을 카톡으로 보냈다. 아이들과 오토바이 투어를 감행했다고 하면 혼날 거 같아, 오기전까지도 아무런 이야기를 안했고, 이미 아무 사고 없이 재밌게 타고 지금은 저녁 먹으러 간다고 먼저 솔직하게 선수를 쳤다. 다행히 남편이 잔소리를 참는 듯(나중엔 결국 오토바이금지령을 받았다), 저녁 잘 먹으라고 답장을 해주었기에 오토바이타면서 은근히 무거웠던 마음이 편해졌다. 자, 이제 맘편히 가자. 저녁먹으러!


그랩을 타고서 우리 넷다 "몇 시간 만에 타보는 차가 이토록 쾌적하고 편안하다니. ㅎㅎ " 잠시 감탄한다. 에어컨바람과 편한 승차감에 역시 차가 최고구나 하면서도 어쩐지 아이들의 대화는 "나 베트남에서 오토바이 타본 썰 푼다" 느낌이었다. 처음 타봤던 오토바이의 승차감, 속도, 아슬아슬하게 옆 오토바이와 부딪힐듯하면서도 묘하게 물 흐르듯 지나가는 운전실력, 가이드언니에게 러브다이브 춤 가르쳐주었던 이야기.


적어도 이제는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보며 그저 호치민의 이국적인 풍경, 혹은 타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나도 타봤던 스토리가 있는 "타보았던" 오토바이로 시선이 바뀌겠지? 처음 오는 사람들은 질려하는 오토바이라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좋은 경험이 되었으니 적어도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오토바이가 겁나고, 위험한 것이 아니라 재밌는 이야깃거리로 일상에 가까이 두고 지내게 될 것 같아 참 다행이다 싶다.

사실 호찌민에 오면 제일 먼저 적응해야 할게 오토바이인데, 우린 첫번째 관문을 재밌게 프리패스했단다.


때마침 마치 카메라맨처럼 열심히  찍던 동생이 보내준 동영상에는 우리 셋이 나란히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인스타에 올릴 겸 크리스마스 캐럴을 입혀서 편집해 보니 제법 그럴싸하다.

https://www.instagram.com/reel/CmmRSo4BVJY/?igshid=YmMyMTA2M2Y=


그날 딸의 일기장에

오늘 처음해본일: 오토바이 탄일,

가장 재미있었던일: 오토바이 탄일

이라고 적혀있었다. 크리스마스였는데 말이지.


썰매는 못 타도, 오토바이는 실컷 탔던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였길.


메리크리스마스!


이전 20화 [호찌민 한 달 살기] 중간점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