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본인은 츄파춥스를 끝까지 녹여 먹는다기에 너무 신기해서 다른 모든 수업 때마다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대략 1/3 정도가 사탕이나 카라멜을 끝까지 녹여 먹는다고 답했다. 충격이었다! 사탕이란 자고로 와자작 부셔 먹는 거 아니었나. 카라멜은 질겅질겅 씹어서 삼키는 거 아니었나. 혼란스러웠다.
그 충격과 혼란이 나에게 새로운 의문점을 던져주었다. 생각해보니 사탕을 부셔서 삼켜버리는 게 이상한 것이다. 애초에 사탕을 왜 먹는가. 달콤한 맛을 즐기기 위해서다. 배부르고 싶어 먹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사탕을 최대한 입 안에 남겨서 달콤함을 끝까지 맛보는 게 바람직한 거 아닌가. 그런데 왜 나는 사탕을 입에 넣자마자 바사삭 깨부셔서 삼키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드는 걸까. 사탕뿐만 아니라 초콜릿이나 케익 같은 달콤한 음식을 먹을 때 나는 입 안에서 맛을 오래 느끼기보단 후딱 삼키고 싶어진다. 왜일까.
그러다 문득 제로 콜라 같은 제로 식품이나 대체당이 다이어트에 효과가 없는 이유를 분석한 연구가 생각났다. 그 이유는, 혀는 속일 수 있어도 장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거다. 혀에는 미뢰가 있어 미각을 작동시키는데, 장에도 후각수용체가 있어 장에 들어온 음식물의 정체와 상태를 탐지한다. 당이 떨어지거나 배고플 때 대체당을 먹으면 혀에서는 우선 달콤하기 때문에 에너지를 섭취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지만, 조만간 음식물이 장으로 넘어가 실은 칼로리가 없는 빈껍데기라는 걸 감지한 순간부터 우리 몸은 다시 음식을 섭취하길 원하도록 조종한다.
그렇다면 달콤한 음식을 빨리 삼키고 싶은 욕망은, 생물학적 본능 아닐까. 빨리 흡수해서 쓸 수 있는 에너지원을 달라는 장의 간절한 외침 같은 거 아닐까. 달콤함을 즐기고 싶다는 욕구는 그에 대한 표면적인 작용 혹은 부산물 같은 건지도 모른다. 근원적인 욕구는 달콤함을 느끼고픈 혀가 아니라 에너지원을 흡수하고픈 장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참지 못하고 사탕을 깨물어 먹는 사람들이 더 본능에 충실한 동물인 걸까. 누가 이런 연구를 해서 발표하면 재밌을 것 같다. 사탕을 깨물어 먹는 집단과 녹여 먹는 집단을 비교해 봤더니? '마시멜로 이야기' 같은 허술한 선동보다 더 반응이 좋지 않을까.
(위 글은 제 책 [문해력을 문해하다]의 일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