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어른이란 뭘까
요즘은 책이나 영화를 볼 때 사전정보 없이 보는 것이 좋다. 뭐에 관한 내용인지 누가 나오는지 감독이나 작가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않고 그저 누군가의 '좋다'는 한마디만 믿고 일단 본다. 내용을 몰라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따라가며 재밌게 본 적도 있고 나랑 안 맞아서 재생 버튼을 누른 지 10분 만에 접은 적도 있다. 빌렸던 책의 목차만 보고 덮은 적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작품이 나랑 안 맞는다고 단언하지 않는다. 단지 시기가 맞지 않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 책이 그랬다. 독서커뮤니티에서 추천하는 책으로 몇 번 언급되어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다. 스페인에 있는 '순례자의 길'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 붉은 벽돌로 뒤덮인 표지와 그 위 한가득 채우고 있는 책 제목은 책방에서 볼 때마다 시선을 사로잡았다. 책을 집어 몇 번이고 뒤적여 봤지만 이상하게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아마 그때는 이 책을 위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었나 보다. 그러다 다시금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책 뒤표지에 적힌 "수림아,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아니?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라는 문장에 꽂혔고 그 밖에 적힌 어떤 활자도 읽지 않은 채 품에 안고 집으로 왔다.
내 나이 삼십 대 중반. 이제 어느 무리에 속해도 내가 막내인 경우는 거의 없다. 최근 시에서 주관하는 문화센터 수업에 갔는데 대부분 우리 엄마아빠 나이대였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서도 막내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내가 어리숙하고 모자란데 그런 티를 내기엔 뻘쭘한 때가 됐다. 당연히 나이가 많다고 해서 뭐든 능숙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때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살아온 세월에 대한 깨달음, 지혜를 기대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이쯤 되면 뭐라도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자꾸 되돌아가는 자신이 한심하고,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괴로운 나날을 지내고 있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 '어른'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
책 제목에서 밝혔듯이, '순례'라는 건물주의 이름을 딴 빌라를 배경으로 일이 전개된다. '순례'는 세신사 일로 부지런히 돈을 벌어 건물을 샀고 주변 시세와 상관없이 본인이 생각한 적정 수준의 월세만을 받는다. 요행으로 번 돈도 그런 마음도 싫어한다. 자연히 주위에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곳의 평화로움을 깨는 가족들이 입주하게 되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바통터치하듯 줄을 이어 등장해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책 마지막 페이지에 와있다. 가족 시트콤 한 편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다는 점.
이 책에 등장하는 빌런 가족은 요즘 시대상 그 자체다. 내가 다닌 학교, 내가 사는 집이 나를 대변한다고 생각하고 본인들의 기준에 따라 사람들을 줄 세운다. 겉보기에 그들은 꽤 근사하다. 부부는 흔히 말하는 명문대를 나왔고 이름 있는 아파트에 살며 고등학생인 첫째 딸도 성적이 우수하다. 열심히 노력해서 성취한 결과는 칭찬받을만하지만, 본인들과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을 마치 공부를 못해서, 돈이 없어서 그랬다는 식의 획일적 사고를 한다. 그들에겐 미용일도 택배일도 '못 배워서'하는 것이며 '돈이 없어' 빌라에 사는 것이다. 대뜸 학번을 물어보는 게 실례가 될 수 있다는 걸 모른다. 지식은 있을지언정 교양은 없는 사람들의 전형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집의 막내딸은 예외다. 사연이 있어 어릴 때부터 순례주택에서 자랐고 성적보다 중요한 가치들을 배웠다. 선생님은 그걸 '생활지능이 높다'고 평가했는데 내 마음에 쏙 드는 표현이다. 안 그래도 요즘 생활유지에 들어가는 모든 시간과 노력에 괜스레 허탈함을 느끼고 있었다. 제때 빨래하고 청소하고 집이 집다운 역할을 할 수 있게, 그 안에서 안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경제적으로도 능력적으로도 무용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거의 책 초반에 나오는 표현인데 여기서부터 이미 마음이 빼앗겨 막내딸인 수림에 동화되어 몰입이 됐다.
막내딸은 가족의 일원이지만 동떨어져 살았기에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만들면서, 가족이기 때문에 그 부끄러움을 제 몫처럼 느끼게 만든다는 점에서 특별함이 생긴다. 수림은 자신의 가족을 '1군'이라 부르고 순례에게 본인은 '최측근'이라 불리는데, 호칭에서 심리적 거리감이 드러난다. 1군들은 순례주택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을 번번이 깨고 빚이 늘어가는데도 본인들 생각만 하는데, 그걸 막내딸의 눈에서 바라보니 더 한심하고 갑갑하게 느껴졌다. 마치 전부 남의 일인 양손 놓고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그 화살이 나에게 와서 닿았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저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주인공 수림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시간강사로 일하는 401호는 강의가 없을 때 택배기사로 일한다. 꿈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먹여 살리기 위해. 반면에 겉으로 보는 난 그 나이 먹고도 아직 하고 싶은 일 운운하며 나를 먹여 살리는 일에도 소홀하다. 누구나 각자의 사정이란 건 있는 거니까 여기서 내 사정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변명이 되진 않을 거다. 이런 내가 과연 1군들을 뭐라고 할 자격이 있을까. 그제서야 내가 얼마나 비겁한지 제대로 마주했다. 사실 그래서 수림이네 가족들이 변하길 누구보다 바랬던 사람이 나였다. 그렇게 되면 너무나 뻔한 결말이 되겠다는 걸 알면서도. 내 기대와 다른 결말에 조금 아쉬웠지만 이 또한 수긍이 갔다.
읽는 시간은 잠깐이었는데 긴 여운이 남았다. 나이는 먹고 있는데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추천한다. 어느 면에선 괜찮은 어른이 된 나를, 어느 면에선 아직도 어린애 같은 나를 발견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