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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어주는 남자 Sep 25. 2015

차별이 없는 사랑...

兼愛(겸애)

날씨가 제법 일교차가 심해졌습니다. 아무래도 가을은 낮보다는 밤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가을이 갖고 있는 매력을 낮에는 아직 맛볼 수가 없네요. 봄과 여름은 뽐내기를 좋아해서 낮부터 오고 가을과 겨울은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밤부터 오는 걸까요? ^^

 

오늘의 주제는 ‘차별이 없는 사랑’,

바로 겸애(兼愛)입니다. 


우리 시대에 겸애를 실천하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가장 최근을 예로 보면 세월호 사건 발생 직후 본인들의 생업을 뒤로 한 채 봉사활동을 하시던 분들을 꼽을 수가 있을 것 같구요, 세계 각지에서 구호활동을 하거나 봉사를 생업으로 하시는 분들을 가장 유사한 의미로 뽑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 이외에도 그 의미를 넓혀보면 실력이 있는 사람들을 지휘를 막론하고 중용하는 현대판 탕평책의 경우도 바로 겸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겸애의 진정한 뜻은 차별에서 먼저 그 의미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나의 희생도 있지만, 차별하지 않음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역사적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겸애의 기원에 대해서 말입니다.



춘추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공자'의 주윤발 (공자 역)




기원전 중국 주나라가 동으로 천도한 후의 동주시대에서는 종주권이 쇠약해짐에 따라 제후들이 세력을 추구함에 있어 거리낌이 없어져서 약육강식이 잇달아 일어나자 중국 천하는 일대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시기를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춘추전국시대라고 합니다. 


춘추전국시대는 선진시대(先秦時代)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기원전 221년, 역시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진시황의 진나라에 의한 중국 통일 이전의 시기를 뜻합니다. 이 시대는 중국사상의 개화결실의 시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사상가들을 제자(諸子)라 하며 그 학파들을 백가(百家)라고 합니다. 그 유명한 제자백가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제자백가 또는 현상적 표현인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고도 하는데요, 이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여러 사상가들과 그 학파들을 말합니다. 춘추전국시대는 사회 · 경제 · 정치상의 일대 변혁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씨족제적인 사회의 해체기이며, 주나라의 봉건 제도와 그에 따르는 질서가 붕괴되는 시기이며, 또한, 경제적 · 군사적 실력주의의 대두기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주 왕조의 권위의 실추에 따르는 제후의 독립과 대립 항쟁의 시대라고 할 수 있겠죠.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중국의 사상계는 최초로 활발해진 것입니다.



사서오경(예기와 춘추를 제외하면 사서삼경)




여기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좀 더 파고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춘추전국시대는 실상은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뉘게 됩니다. 춘추시대는 기원전 770년부터 403년까지 약 368년간의 시대로 춘추 전국 시대의 전반기에 해당됩니다. 이 이름의 유래는 공자의 저서인 ‘춘추(春秋)’에서 유래했습니다. 춘추라고 하면 이 역시 너무도 유명한 ‘사서오경‘에서 바로 오경 중 하나입니다. 전국시대는 기원전 402년부터 221년 까지 약 182년의 시간을 뜻하고 이 시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전국책(戰國策)에서 유래합니다. 

이 시대에 접어들면, 존왕양이의 대의명분은 사라지고,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오로지 사력을 다한 생존의 싸움만 남게 됩니다. 


다시 제자백가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공자는 유교의 기초를 이룩한 사상가입니다. 바로 인간이 갖고 있는 후천설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예(禮)의 문화를 이룩함으로써 춘추 시대의 유일한 슈퍼스타가 됩니다.



공자




반면 전국시대는 묵가, 유가, 도가, 법가 등이 우위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국 시대의 전반기는 묵적(墨翟)에 의해 이룩된 묵가사상이, 중반기는 맹자의 유가사상 그리고 장자의 도가사상이 그 위력을 발휘합니다. 이중 실천 가능성이(이론적으로) 가장 높은 유가사상은 순자를 통해서 후기에도 그 위력을 발휘합니다. 후기의 또 한명의 스타는 바로 법가사상의 한비자입니다. 우리가 중국사상가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 무렵에 정말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진·한 제국의 성립기에는 법가의 사상이 중용되었습니다. 진시황이 꼭 필요한 인재로 꼽았던 사람, 바로 법가의 한비자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성악설의 주인공, 바로 순자의 제자이기도 합니다. 한비자에 대해서는 조만간 다시 글로 다룰 예정이므로 이쯤에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제왕학의 한비자




이 시기의 대표적인 제자백가 10개의 학파를 일컬어서 구류십가(九流十家)라고 합니다. 

1. 유가(儒家) - 공자 · 맹자 · 순자

2. 도가(道家) - 노자 · 열자 · 장자

3. 음양가(陰陽家) - 추연 · 추석

4. 법가(法家) - 관중 · 상앙 · 신불해 · 한비자

5. 명가(名家) - 등석 · 혜시 · 공손룡

6. 묵가(墨家) - 묵자 · 별묵

7. 종횡가(縱橫家) - 귀곡자 · 소진 · 장의

8. 잡가(雜家) - 여불위 · 유안

9. 농가(農家) - 허행

10. 소설가(小說家) - 육자 · 청사자 

이 중 10번 소설가의 경우만 ‘류‘에 속하지 못해서 이를 제외한 나머지를 ’구류(九流)‘라고 일컬으며, 이를 포함한 것을 ’십가(十家)‘라고 합니다.

그 뒤에는 대표적인 사상가들을 열거한 것인데 아는 이름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한비자의 스승 '순자'




중국이라는 나라는 우리나라로 얘기하면 조선 후기 무렵부터 근대화 과정과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험난함이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이야기꺼리가 많은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시황이 벌였던 분서갱유. 다들 한 번씩 들어보셨을 텐데요. 간단히 짚어드리면 

분서갱유 (焚書坑儒),

불사를 분, 글&책 서, 빠질 갱, 선비 유

즉, ‘책을 불사르고 선비를 구덩이에 빠트린다.‘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진시황




진시황은 춘추, 전국 500년간의 암투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군현제를 실시, 중국 최초의 중앙정부 통치제도를 시행한 인물로 분명히 획기적인 업적을 이룩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과거의 제도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로 인한 반발과 비판은 피해갈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열국이 전쟁을 하던 시기인 전국시대에는 각 국이 다투어서 학자들을 우대해서 국력의 증강을 꾀 하였지만, 시황제에 의해서 통일이 된 이후 이 학자들은 버려진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들의 불만이 당연히 거세질 수밖에 없을 때 진시황의 재상으로 있던 ‘이사(李斯)’ 라는 인물이 황제에게 고하기를 시경, 서경, 백가서를 모두 빼앗고 소각하며, 이 제목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처형을 시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진시황은 이를 시행하였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분서(焚書)입니다. 

그 이듬해에는 갱유(坑儒)라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학자들 460명을 산 채로 구덩이에 묻어서 죽인 사건으로 사실 이 일의 진원은 불로장생을 꿈꾸는 진시황이 우대하던 신선술의 방사들이 그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시황릉병마용갱




글을 적다보니 정말 많이 의도에서 벗어났네요.

다시 바른 길을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자기와 남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자신과 같이 사랑한다면 이 세상에 다툼은 없어지고 인간은 평화로운 생활을 누릴 수가 있어 이는 세상의 큰 이로움이다.’

바로 묵자(墨子)의 교설(敎說)입니다.


이 시기 유교의 맹자는 진심의 상편에서 ‘묵자는 겸애를 머리 꼭대기에서 발뒤꿈치가지 닳더라도 천하에 이득이 된다면 이를 행한다.’ 라고 치켜세웠다가 후에는 아비를 업신여기고 군왕을 업신여기는 사상이라고 공격하게 됩니다. 이는 유교는 실생활에서의 예를 중시하기에 윗사람을 공경하고 자기의 부모를 공경하고 재상을 공경하는 것인데 반해 묵자의 교리는 만민이 평등하다는 취지를 공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영웅'




하지만 이는 묵자의 사상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잘못이라기보다 묵가의 겸애가 현실성이 결여된 공허한 이상애(理想愛)로 봤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더욱 가깝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묵자 사상의 원류인 묵적(墨翟)은 묵자의 '겸애'는 '차별이 없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기독교의 박애의 의미와는 다릅니다. 겸애는 사상적으로 정치적 질서와 위계적 구조는 건드리지 않습니다. 남의 부모를 나의 부모처럼 여기고, 남의 집안을 나의 집안처럼 여기고, 남의 도읍을 나의 도읍처럼 여기고, 남의 국가를 나의 국가처럼 여기는 것으로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으며, 이는 나와 나 외의 것의 차별을 없애자는 의미이기 때문에 사회적 차별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 사상의 원류 중 가장 많은 비교의 대상은 단연 유교와 묵자입니다.

공자의 인(仁)과 묵자의 겸애(兼愛), 큰 차이는 위의 이야기들을 토대로 현실성과 비현실성을 꼽을 수가 있으며, 두 사상 모두 ‘아가페‘라기 보단 ’에로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적 사랑의 관점인 아가페를 간단히 짚어본다면 예수는 원수라도 사랑하라고 권하는데 이것은 상대방이 그 누구이던 오직 그 대상의 본질인 각인의 자기 사랑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해 준다는 보편 절대적인 사랑을 뜻하는 것입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공자를 비조로 하는 유가는 인을 가장 중시하면서도 자기 스스로를 중심으로 하여 인을 곧 효(孝)이며 제(悌),가족적 결합을 시작으로 친족애, 민족애 등으로 점점 범위를 확대하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맹자




반면 문자의 겸애는 보편적인 에로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와 타인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사랑하는 것. 

관념적인 측면에서는 분명 공자의 인 보다는 묵자의 겸애가 더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비현실적인 이유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실천하기가 힘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번 생각을 해볼까요?

인간이라는 존재, 과연 어떤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말로만 평등을 외칠 뿐, 그걸 실천하는 것은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인간이 갖고 있는 정서와는 현실적으로 거리가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반면 공자의 효제는 우리의 생각과 아주 가깝습니다. 우리가 실제 어려워하는 것들을 다루었고 그것이 사회를 이루는 근간이라고 말합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이것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유교 사상 아래 자라왔기 때문입니다.



장자




전국시대 가장 유력했던 사상이었던 묵가의 철학은 맹자와 끊임없이 설전을 벌였습니다. 유가가 묵가를 공격했던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그대로라 할 수 있으며, 묵가의 유가에 대한 공격은 이와 같습니다. 허울뿐인 사랑을 강조할 뿐이며, 그 사랑의 완성이 기본적으로 자기희생과 이타적 행위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이 의미를 현실적으로 들여다보면 지금 우리의 사랑과 비슷하게도 느껴집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들.


암튼, 이렇게 묵가의 지속적인 유가에 대한 공격이 오히려 묵가에게는 양날의 검이 되어 되돌아가게 됩니다. 진나라 이후 한나라의 무제가 모든 제자백가를 물리치고 유학만을 숭상한다는 전언 이후, 중국의 역사는 유학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자연스레 묵가의 사상과 실천은 그 빛을 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자




논어를 읽으신 분들은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논어의 그 구절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공통적인 부분이 있는데, 혹시 다들 눈치 채셨는지요?

바로 이유가 없습니다. ‘이렇게 해라, 이것이 옳다, 이것은 그르다.’ 라는 가르침은 있지만 그것에 대한 이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다른 역사적 사료들을 찾아봐도 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반면 묵가는 그런 동양사상의 틀을 바꿔버렸습니다. 바로 이유와 근거를 같이 언급함으로써 그 의의를 더욱 견고히 다지는 사상이었습니다. 그 시절 맹자, 순자, 한비자 같은 사상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묵가의 철학이 유력한 사상이라고 칭했던 이유들 역시 이에 바탕을 두고 있을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묵적




이런 묵가의 사상,

그 당시 이미 시대를 초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천 년 이상을 앞선 사상이면서 동시에 민중을 생각하던 천민 사상가이자 실천가.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들 중에서도 이런 묵가를 접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흔히들 서양철학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합니다. 실제 책을 보게 되면 그 연유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함축적 의미가 아닌 모든 내용들이 열거되기 때문에 논리적 전개가 필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동양철학은 한 편의 시를 보는 것과 흡사합니다. 현대의 우리가 보게 되면 결국 주석이 필요해져서 그게 그거라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서양철학에 비해서 직관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편견을 깨는 사상이 묵가의 사상입니다. 꼭 한번 접해보시길 바라면서 일반적으로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 중 가장 읽기 편한 묵가의 책을 아래 이미지로 삽입합니다.




길다 라고 하면 긴 글이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너무나 함축적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어서 혹여 내용이 잘 전달되었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봅니다. 누구는 관심 없을 수도, 누구는 그 반대가 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건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만약 누군가는 이미 묵자를 알고 있다고 한다면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고 스스로 곤궁에 처할 수도 있는, 

 그런 준비가 되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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