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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제라블 Aug 04. 2022

함께하고 싶지만 결혼하고 싶지 않아

나에게 결혼이란 뭘까?

결혼 혹은 결혼식이라는 말에 알러지라도 있는 것일까요? 저는 가까운 이들에게 스스로 “저, 결혼해요”라는 말을 해야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오랫동안 여러 가지 고민을 거듭해왔습니다. 그런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흡사 심각한 거짓말을 하는 사람처럼 긴장되고 당혹스러운 기분이 듭니다. 누군가 “결혼 축하해요!”라고 말을 건네는 것은 더욱 낭패스럽습니다. 다소 낯간지럽고, 불편한 느낌이 들어 마땅히 대꾸할 말을 찾기 어렵기도 하고요. 어쩐지 선의를 가진 그 축하의 말에, 자꾸 아니라고 반박을 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니, 참으로 이상하죠?

어머 결혼하는구나 축하해! 이런 말을 들을 때 제 머릿속이 바로 이렇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부동산 중개인, 은행 대출 상담사, 친밀도가 0에 가까운 상사—에게는 몇 가지 분명한 목적 때문에 결혼을 이야기하고 축하를 받는 것이 크게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특히 저와 가까운 사람과 관련된, 저의 기분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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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결혼은 구시대적인 관습에 불과해! 난 이런 관습을 깨부수겠어!”라는 식의 사회반항적인 그런 이유는 아닙니다. 저는 철저하게 규율과 규칙을 따르는 것이 편안한, 소위 모범생으로 자라왔기 때문에 애초에 그럴만한 패기나 에너지가 없습니다. 지금도 대기업에 있는걸요?

말은 잘듣는데 청개구리같이 굴어...(응?)



나에게 결혼의 함의


며칠에 걸친 깊은 고민 끝에 저는 이 관계를 결혼 혹은 결혼식이라는 용어로 부르고 싶지 않은 몇 가지 이유를 찾아냈습니다.



통상적으로 한국사회에서 결혼이 가지는 의미를 부여받고 싶지 않다. 결혼은 둘 사이의 결합이 아니라 집안 간의 결합이라고 하고 보통은 그게 맞겠지만 나는 더 이상 가족관계를 늘리고 싶은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 부담스럽다.


소위 집안 간의 결합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의견보다는 어른들의 뜻이나 원하는 바가 중요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주체성과 의지가 상실되는 경우가 많다.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건 그렇다 쳐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는데, 그러고 싶지 않다.


상황이나 남들이 부추기는 갈등을 우리 관계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 통상적인 의미의 결혼은 가족관계 속에서 진행되기에 불필요한 갈등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고 느낀다. 살다가 불가피하게 등장하는 갈등의 요소라면 모를까, 굳이 적극적으로 그런 갈등을 저희의 관계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


우리의 관계가 결혼이라는 이벤트로 아주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또한 실제로 변하지 않을 텐데, 사람들에게 거짓된 기대를 주는 것이 싫다.



제가 하고 싶은 건 하나뿐입니다. 같이 살 집이 있고, 그 집에 들어가서 사는 것뿐이에요. 다른 무엇에 대한 어떤 바람도 없습니다. 결혼을 한다고 해서 헤어질 사람들이 헤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헤어지지 않을 사람들이 헤어지지도 않을 겁니다. 저는 제 마음에도, 우리 사이의 신뢰에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습니다. 그것이 결혼이나 결혼식을 통해 바뀌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 말이죠. 그래서 더더욱 제게는, 결혼이 필요가 없습니다.


밀레니얼들의 결혼에 대한 관점. 이게 무려 2014년의 기사입니다. 저희도 밀레니얼이니까 아마도 이 중 하나쯤의 견해에 해당할까요? https://time.com/302460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범생의 운명


제가 하고 싶은 건 결혼이 아니라 그냥 같이 살고 싶은 것뿐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저라는 개인은 21세기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 맥락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대단한 혁명가나 반항아가 아니기 때문에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기로 했습니다. 굳이 모나게, 별나게 튀는 삶을 살며 주목을 받는 게 취향도 아니고요. 다만, 가까운 분들께서는 이런 제 마음을 이해해주시기를 바랄 뿐이지요.


다행히 양가 부모님들은 크게 반대하시거나 언짢아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시국도 그렇고, 그냥 작게 결혼식을 진행하자는 저희의 의견에 따라주셨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다른 무엇도 없이 양가 부모님과 직계가족만 모시고 총 10명 정도가 소소하게 호텔에서 식사자리를 갖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어쩌다 흐르고 흘러 이렇게 되었지만요.

우린 그걸... 결혼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어쨌든 그래서 통상과는 다른 의미로, 다른 흐름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남들이 결혼이라고 부르지만 저는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은 바로 그 무언가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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