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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일영 May 03. 2017

퇴사합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던 회사를 떠나게 됐습니다. 이렇게 좋은 회사, 이렇게 좋은 동료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랑했던, 회사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누구보다 제가 먼저 많이 속상합니다. 사랑하는 동료들, 사랑하는 책에 완전히 작별을 고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를 통해 만난 인연들 모두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다른 모습으로 다시 만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금이나 나중이나 저는 여전히 모자라고 미운 모습일 테지만요. 그럼에도 사랑하고 사랑받으리라 믿고 기대합니다. 


정말 즐거웠습니다.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던 경험과 잡지사에서 잡지를 만드는 경험은 비슷하기도 또 다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무엇보다 동료들과 함께 책을 만든다는 것이 신선하고 즐거운,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또 디자이너분들과의 대화를 통해 작품에 담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오래도록 가치 있는 경험으로 남을 것입니다. 정말 즐거웠고 그만큼, 동료들과 디자이너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최고의 건축전문기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대학에서 전공한 분야는 아니지만, 원래 관심 있었던 분야도 아니지만, 최고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즐겁게 공부하고 열심히 배우고 온 힘을 다해 노력했습니다. 많이 아쉽고 속상합니다. 하지만 최고의 건축전문기자가 되겠다는 꿈까지 그만둔 것은 아닙니다. 다른 방식, 다른 길로 꾸준히 걷겠습니다. 천재가 아니라 천천히 오래 걷는 수밖에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조금 느릴지 몰라도 한 걸음씩 꾸준히 걷겠습니다. 


건축전문기자, 공간전문기자라는 타이틀이 저는 늘 송구스러웠습니다. 제 자격을 늘 의심하고 고민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부끄러운 마음을 저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과 경험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갈구했고, 아직 갈망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부끄럽고 두렵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갈증의 근원은 가시지 않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입니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콘텐츠, 만족스러운 기사를 만들지 못하는 저 자신에게 늘 화가 났습니다. 


기자라는 직함을 달고 살며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좋은 에디터 보다는 좋은 기자가 되고 싶었기에 고민이 더 깊었습니다. 욕심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회사를 떠나 새로운 길을 가보려 합니다. 재미있는 콘텐츠와 저널리즘, 비즈니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걸어보겠습니다. 어쩌면 미증유의 길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모험을 떠난다'고 생각하고 무거워진 엉덩이를 일으켜 걸어보겠습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이제 기자 직함이 새겨진 명함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뵈었던 유명한 분들이 이제 안 만나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은 불쌍한 녀석 하나 돕는다 생각하시고 연락을 받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조만간 다른 길 위에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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