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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in Dec 01. 2018

경계의 시인, 박인환의 시세계

박인환 시인

1. 서론 - 박인환 시의 재해석

 한국 현대시에서 박인환은 전후 현대시의 주요한 인물 중 하나다. 동시대의 김수영이 ‘온몸의 시론’으로, 김춘수가 ‘무의미 시론’으로 평가받는 것에 비하면, 박인환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게 되었다. 보통 박인환에 대해 부정적 현실에 대한 실천이 결여된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고, 퇴행적이면서 나아가 도피적이기까지 하다는 평가를 내리곤 한다(김은철, 2006).

 박인환 작품 해설에 있어서 우리는 새로운 관점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로서 시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학적 질문에서 우리는 칸트의 ‘무관심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무당파성 위에서 대상의 존재와 무관하게 느끼는 주관적 쾌를 느끼는 것을 ‘아름다움’이라 하고, 이 아름다움을 매개하는 주체가 곧 예술이고 시이다. 시라는 것은 현실 상황을 극복하여 치유하는 힘을 주기도 하지만, 현실의 취약함(vulnerability)을 있는 그대로 바로 바라보는 공간을 허락하기도 한다.

 한국전쟁을 전후로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전개한 박인환에게 현실은 좌절과 허무 그 자체였다. 서구문명, 자본주의 그리고 전쟁을 겪는 지식인이 직면하게 되는 것은 ‘세계관의 균열’이 우선일 것이다. 균열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누군가는 참여적 태도로, 누군가는 평론가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쉽게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인환은 균열지점에서 나타나는 현상들, 감정들을 쉽게 지나치지 않는 섬세함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세계관의 균열이 일어나는 시공간은 소위 ‘경계’라고 말한다. 박인환은 경계의 시를 썼고, 그는 현대시에서는 경계인, 소위 아웃사이더였다. 그런 의미에서 박인환의 시의 분석에서 ‘균열지점’ 그리고 ‘경계’를 잘 포착해야한다. 이하에서는 경계의 시로서 박인환 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문명의 경계


"

나의 시간에 스코올과 같은 슬픔이 있다

붉은 지붕 밑으로 향수가 광선을 따라가고

한없이 아름다운 계절이

운하의 물결에 씻겨 갔다


아무말도 하지 말고

지나간 날의 동화를 운율에 맞춰

거리에 화액을 뿌리자

따뜻한 풀잎은 젊은 너의 탄력같이

밤을 지구 밖으로 끌고 간다


지금 그곳에는 코코아의 시장이 있고

과실처럼 기억만을 아는 너의 음향이 들린다

소년들은 뒷골목을 지나 교회에 몸을 감춘다

아세틸렌 냄새는 내가 가는 곳마다

음영같이 따른다


거리는 매일 맥박을 닮아 갔다

베링 해안 같은 나의 마을이

떨어지는 꽃을 그리워 한다

황혼처럼 장식한 여인들은 언덕을 지나

바다로 가는 거리를 순백한 식장으로 만든다


전정의 수목같은 나의 가슴은

베고니아를 끼어안고 기류 속을 나온다

망원경으로 보던 천만의 미소를 회색 외투에

싸아

얼은 크리스마스의 밤길로 걸어 보내자

-「거리」전문

"



 이 시에서 쓰이는 시어들은 외국어가 주를 이룬다. 스코올, 코코아, 아세틸렌, 베링, 베고니아, 크리스마스 등의 단어는 외국어이다. 1946년에 이 단어들은 시인에게 ‘생경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생경함의 홍수에는 혼란스러운 슬픔이 떠오른다. 시인은 황혼, 회색외투, 낙화, 향수, 동화 등의 시어를 사용함으로써 지나간 무엇에 대한 감상에 젖기도 한다. 반면에, ‘크리스마스의 밤길로 걸어 보낸자’는 표현을 씀으로서 감상에만 젖지 않는 시인의 몸부림이 드러나 있기도 하다.


"

동양의 오케스트라

가메란의 반주악이 들려온다

오 약소민족

우리와 같은 식민지의 인도네시아


삼백년 동안 너의 자원은

구미 자본주의 국가에 빼앗기고

반면 비참한 희생을 받지 않으면

구라파의 반이나 되는 넓은 땅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가메란은 미칠 듯이 울었다


(중략)


참혹한 옛날이 지나면

피 흘린 자바섬에는

붉은 칸나 꽃이 피리니

죽음의 보람은 남해의 태양처럼

조선에 사는 우리에게도 빛이려니

해류가 부딪치는 모든 육지에선

거룩한 인도네시아 인민의 내일을 축복하리라


사랑하는 인도네시아 인민이여

고대 문화의 대유적 보로 로도울의 밤

평화를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가메란에 맞추어 스림피로

새로운 나라를 맞이하여라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

"


 박인환의 시 중에서 독특한 작품으로 알려진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이다. 이 시에 대해서 평론가와 연구자들은 박인환의 현실참여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김은영, 2000). 다만 이 시는 인도네시아를 통해 우리의 민족현실을 노래한다기보다, 박인환의 공통된 시세계인 ‘경계’라는 관점에서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와 조선 모두 식민시대를 겪었고, 일본제국과 서구열강에 의해 자본주의가 이식된 경계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박인환이 지닌 세계관의 균열은 20세기 식민지에서 세계의 제국주의 현상을 바라보는 지식인의 고뇌였다.

 ‘인도네시아 인민의 내일을 축복’하는 것은 동시에 조선의 축복을 바라는 것인데, 조선의 축복은 곧 자기자신의 축복을 의미한다. 더구나 ‘고대 문화의 대유적 보로 로도울의 밤’에 ‘새로운 나라를 맞이’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세계관의 균열이 발생하기 전과 후의 세계에서 균열의 봉합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박인환에게 시는 변증법적 노정에서 아우프헤벤(aufheben) 자체다.


3. 삶과 죽음의 경계

 박인환은 전쟁 당시 경향신문에서 종군기자 생활을 하였다. 전쟁의 한 복판에 있었으며, 전쟁의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삶이었다. 허나 박인환에게 기사와 다른 장르의 글인 ‘시’ 또한 글쓰기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박인환에게 시쓰기란 무엇인가. 박인환은 본인의 체험을 시로 쓸 때에, 체험 중에서 ‘무엇을 시로 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만 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곧 박인환의 시론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어린 딸에게’라는 시다.


"

기총과 포성의 요란함을 받아가면서

너는 세상에 태어났다 주검의 세계로

그리하여 너는 잘 울지도 못하고

힘없이 자란다.


엄마는 너를 껴안고 삼 개월 간에

일곱 번이나 이사를 했다.


서울에 피의 비와

눈 바람이 섞여 추위가 닥쳐오던 날

너는 입은 옷도 없이 벌거숭이로

貨車 위 별을 헤아리면서 남으로 왔다.


나의 어린 딸이여 고통스러워도 애소도 없이

그대로 젖만 먹고 웃으며 자라는 너는

무엇을 그리 우느냐.


너의 호수처럼 푸른 눈

지금 멀리 적을 격멸하러 바늘처럼 가느다란

기계는 간다. 그러나 그림자는 없다.


엄마는 전쟁이 끝나면 너를 호강시킨다 하나

언제 전쟁이 끝날 것이며

나의 어린 딸이여 너는 언제까지나

행복할 것인가.


전쟁이 끝나면 너는 더욱 자라고

우리들이 서울에 남은 집에 돌아갈 적에

너는 네가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그런 계집애.


나의 어린 딸이여

너의 고향과 너의 나라가 어디 있느냐

그때까지 너에게 알려줄 사람이

살아 있을 것인가.

-「어린 딸에게」

"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는 딸에게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시는 시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드러내는 공간이다. 생사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딸에게 던지는 이 시는 방황이라는 ‘경계’지점으로 인도한다. 태어난 곳이 ‘주검의 세계’이며, ‘젖만 먹고 웃으며 자라는 너’는 ‘언제까지나 행복할’ 수만은 없다. 더구나 안정이 없는 전쟁상태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편 정체성을 이루는 ‘고향’과 ‘나라’를 알려줄 이가 살아있을지 조차도 불분명하다. 딸은 정체성의 균열과 혼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박인환 스스로가 경계인으로, 균열지점에서 고민했듯, 그의 딸도 경계에 서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문제인식’이 필요하다. 어떤 경우에는 문제인식만으로 해결이 되는 경우가 있다. 박인환에게 균열의 봉합은 ‘경계’ 그 자체를 노래하기다. 그래서 박인환의 시를 ‘실존주의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4. 결론 - 박인환이라는 미시사


 박인환 시세계는 소극적, 퇴행적 그리고 도피적이라는 이유로 한국현대시 변방에 있었다. 구체적 사실성은 갖고 있으나 개인적 차원의 감성에만 몰두하여 ‘역사적 본질’ 내지 문학적 성취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김은철, 2006). 개인적 차원이라고 역사가 아닌 것은 아니다. 박인환 시는, 개인 삶에 집중함으로써 역사라는 얼굴을 대면하는 ‘미시사(microhistory)’의 텍스트이기도 하다.

 경계에서 고뇌하는 지식인의 내면 갈등을 들여다보는 작품들이면서, 동시에 박인환은 본인이 겪는 균열을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하는 synthesis로서의 역할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박인환 시에 대한 텍스트 이해를 현상학적으로 시도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김수영 시론에 비해 수동적으로 보이는 박인환의 시세계를 폄하할 것이 아니라, 박인환 시세계가 구축하려고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데에서 다양한 관점을 획득할 수 있다.



참고문헌

김은철, 박인환 시의 현실과 시적 대응, 한민족어문학 제47집, 2006.

김은영, 「1950년대 모더니즘 시 연구」, 창원대 박사학위논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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