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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선아 Nov 05. 2020

내가 엄마가 되다니

책방 마지막 출근 일이었다. 출산일이 2주 정도 남은 날이다. 2주간 못다 한 출산 준비를 하고 휴식을 취할 참이었다. 책방을 마감하고 아크앤북 잠실점에 들러 책과 굿즈를 입점했다. 캄캄한 밤 집에 돌아와 드라마 한 편과 넷플릭스를 보다 1시가 넘어 잠이 들었다. 다음날 늦게까지 늦잠을 잘 생각이었다.


그러나 새벽 3시 10분. 눈이 번쩍 떠졌다. 느낌이 이상했다. 급히 화장실에 갔다가 신랑을 깨웠다. 그리고 분만실에 전화를 걸었다.


“피가 나오고 양수가 흐르는 것 같아요.”

“얼마큼이요? 손바닥만큼 나왔어요?”

“네. 두 번이요. 그런데 진통은 별로 없어요.”

“진통이 없을 수도 있어요. 한 번 더 그러면 바로 병원으로 오세요.”


전화 끊기가 무섭게 양수가 확 흘렀다. 아무래도 화장실에 갔을 때 펑 소리가 양막이 터지는 소리였나 보다. 다시 전화할 필요도 없이 짐을 챙겼다. 다행히 며칠 전 정기검진을 받은 날 출산 가방을 싸둔 터였다. 핸드폰 충전기와 노트북, 지갑을 급하게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어떤 산모는 아기 낳기 전에 소고기를 구워 먹고, 국밥을 먹는다고 했다. 든든하게 먹어둬야 힘을 쓸 수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아직도 입덧에 제대로 먹지 못하는 터지만 차에서 먹을 참으로 우유와 토마토, 빵을 가방에 구겨 넣었다. 


“오늘 낳는 거야?”

“오늘이 아니라 지금 낳으러 가는 거야.”


그는 아기가 바로 나온다고 예상하지 못했다. 예정일이 2주나 남았고 난 그때까지 평온해 보였으니까. 


새벽 4시 45분. 병원에 도착했다. 주차하고 차에 내리기 무섭게 양다리 사이로 양수가 흘러내렸다. 진통도 조금씩 심해졌다. 분만실에 도착하자 이젠 더 서 있기 힘들 정도의 고통이 찾아왔다.


새벽 5시 10분. 분만실에 입원했다. 진통이 오는 배를 부여잡고 구부정한 자세로 옷을 갈아입고 분만실 침대에 누웠다. 몸이 아픔과 두려움으로 각목이 되었다. 그는 나보다 더 단단히 얼어있었다. 아파하는 내 모습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했다. 혈압과 피검사, 약물 검사 등 간단한 검사를 하고 제모와 관장을 했다. 이미 몸을 가눌 수 없는 고통에 수치심 따윈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코로나19 검사를 했다. 분만실에서 내내 마스크도 써야 한다고 했다. 검사를 하는 동안 진통은 점점 더 심해졌다. 어떤 자세를 취해도 고통은 가시질 않았다. 다리는 전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주체할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너무 아프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오빠가 해줄 게 하나도 없어.”


출산은 오롯이 여자의 몫이다. 같이 고통을 나눌 수도 무엇을 도와줄 수도 없다. 그도 아빠가 된다는 기쁨보다 눈앞의 나의 고통이 두려웠을 것이다.


진통이 올 때마다 의료진 두세 명과 함께 힘을 주었다. 


“무릎 사이에 팔을 끼고 다리를 잡아당기세요. 다리를 더 벌리고요. 항문을 열듯이 힘을 주세요.”

“아악, 악, 아아악.” 

“아프다고 악 악 소리 내면 아기가 숨을 못 쉬어요. 아파도 심호흡을 해주세요.”


아기가 숨을 못 쉰다니, 아기가 걱정되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있는 힘껏 코로 숨을 마시고 입으로 뱉으려고 했다. 그러나 “아악” 가쁜 소리만 나왔다.


아침 6시 50분. 모든 검사가 끝나고 무통 주사를 시술했다. 


“시술하는 동안 진통이 다섯 번쯤 지나갈 거예요.”

“다섯 번이요?”

“절대 움직이시면 안 돼요. 다칠 수 있어요.”

“저 움직이지 않을 자신이 없어요. 너무 아파요.”


주사바늘을 척추에 꽂는 동안 침대 시트를 부여잡고 “제발.”만 되뇌었다. 


“등에 시원하게 한 줄기 흐르는 게 느껴지세요? 입에서 약 냄새 안 나시죠?”

“네.”

“십 분에서 십오 분쯤 후부터 약효가 있을 거예요.”


아침 7시. 무통주사의 효과로 고통의 80%는 사라졌다. 아, 이제야 살 것 같았다. 잠시지만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진통이 올 때마다 힘을 주세요. 남편분이 10까지 카운트 세주시고요.”


그러나 서서히 진통은 다시 강해졌고 강해질 때마다 이젠 모든 의료진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주치의 선생님을 본 순간 분만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제 아기를 만날 시간이 된 것인가.


“자, 이제 아기가 나올 수 있게 엉덩이를 밀 거예요. 좀 아플 수 있어요.”

“잘하고 있어요. 조금만 더 해봐요.”


간호사 한 명이 온몸의 힘을 실어 내 배를 명치 쪽에서 아래로 밀었다. 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아픔에 당황했고, 생각보다 큰 고통에 또 다시 당황했다. 그렇게 몇 번의 반복 끝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젠 엄마가 힘을 줘야 해요.”

“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정말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온 힘을 냈다. 작은 정적이 흐르고.


“아기가 로켓처럼 나왔네.”


주치의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아앙 아앙.”


다리 사이로 뿌옇게 아기가 보였다. 


“2020년 5월 17일 8시 33분입니다.”


오 마이 갓, 내가 엄마가 되었다. 아니, 이제 엄마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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