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 여행해도 충분히 즐거운 여행자였다. 한때 여행 작가를 꿈꾸었고 혼자 하는 여행을 즐기는 여행자였다. 그러나 그와 함께 한 첫 여행 이후로 나의 혼자 하는 여행은 멈추었다.
우리의 첫 여행은 제주였다. 나도 그도 첫 제주행이었다. 제주행 비행기 표를 끊고 차량을 빌리고 숙소를 예약했다. 둘이 머리를 맞대고 며칠간 매일 제주 지도를 폈다. 지도에 가고 싶은 장소를 표시했다. 완벽한 첫 여행을 위해 시간과 장소, 티켓 가격, 특이사항을 엑셀표로 정리해가며 열심히도 계획했다. 하지만 우리의 첫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뜨거운 제주 날씨에 당황했고, 갑작스레 폭우가 이틀이나 이어졌다. 그러나 제주는 우리에게 충분히 아름다웠다. 바다도 숲도 오름도 돌담도 그 무엇도. 여행은 역시 사람이었을까. 그렇게 우리에게 제주는 설레는 곳이 되었고, 매년 여름과 겨울이면 제주로 떠났다. 그 제주 여행 이후로 모든 여행이 그와 함께였다.
그리고 이제 둘만의 여행도 멈췄다. 용기 있는 여행자는 아니었지만, 계절마다 어디든 떠나고 싶어 했던 여행자였기에 어쩌면 떠날 수 없는 삶이 되었다는 생각에 웅크러졌다. 누가 강요하지 않았어도 나의 마음은 이미 납작하게 접혔다.
넓은 세상에서 묶인 채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떠났던 첫 여행을 생각한다. 돌이켜보니 대부분 나의 여행은 현재의 삶에서 달아나는 여행이었다. 풀 수 없는 숙제를 잠시 잊기 위해 떠났다. 여행에서 돌아와도 결코 리셋 할 수 없는 게 삶이다. 가끔은 달아나도 괜찮다는 말에 애써 핑계를 만들며 가방을 쌌다. 그래도 그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조금은 더 안녕하다. 그걸로 이제까지의 여행은 충분하지 않은가. 어떤 여행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끝마쳐지나 보다.
이제 새로운 여행을 계획해 본다. 앞으로 수년간의 모든 여행은 셋일 것이다. 벌써 내 마음은 그곳에 가 있다. 그와 아기와 손을 맞잡은 채로. 새로운 여행은 이전과는 다른 여행이다. 달아나는 여행이 아니다. 먼저 한걸음 내 딘 여행일 것이다. 우린 아기가 조금 크면 매년 한 도시에서 길면 한 달, 짧게는 보름간 셋이 살아보기로 했다. 여행하듯 살아가듯. 어느 낯선 도시에서의 삶은 우리에게 또 다른 무언가를 가져다줄 것이다. 추억일지도 시간일지도 사랑일지도 모를 무언가를. 아마 우리의 첫 번째 도시는 제주일 테다. 함께 하는 여행이 시작된 곳, 제주. 그곳에서 또다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다.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이자 작가인 자크 살로메는 “나는 오늘을 살았고, 오늘을 좋아했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 오늘을 산다. 그리고 오늘이 가장 좋다. 과거에서 달아나고 미래를 미뤄두는 여행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새로운 여행 말이다.
혼자 떠나는 누군가보다 내가 더 행복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보다 나는 더 그곳에서 안녕할 것이다. 나의 안녕을 진심으로 바라는 내 손을 잡은 이들이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