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생기니 내 이름이 아닌 누구 엄마로 불리는 일이 생겼다. 그럴 때면 아직도 날 부르는 게 맞는 건지 멈칫하기 일쑤다. 엄마라는 이름이 아직도 어색한 나다.
“애 외로워. 하나는 더 낳아야지.”
“낳으려면 빨리 낳아. 연년생 얼마나 좋아.”
“처음엔 힘들어도 키우고 나면 좋아할 거야.”
“애 둘은 낳아야 애국하는 거지.”
비혼이라고 말할 땐 “결혼은 해야지.”, 결혼하니 “애는 안 낳니?”, 아기를 낳으니 “얼른 하나 더 낳아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들. 결혼이나 가족계획은 지극히 사적이다 못해 예민한 일이다. 그러나 간섭하듯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 누구도 출산과 육아에 도움을 주지 못할 사람이다.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다. 물론 나도 인생에 가장 좋은 친구이자 선의의 경쟁자가 되어 줄 거란 생각에 잠깐 둘째를 고민한 적도 있다. 심리 발달 단계를 보면 세 살 터울이 가장 좋다고 한다. 첫째 아기가 돌이 지나면 바로 임신을 준비해야 한다. 그제야 엄마는 자신의 시간을 조금 찾고 다시 일도 하고 몸도 회복한 상태인데 말이다. 임신과 출산, 육아 그 지리한 과정을 다 알고 나니 선택은 더 힘들다. 나는 형제를 만들어주고 싶은 이유는 현실적 이유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런데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형제자매가 있는 아이는 더 행복할까.
사실 둘째를 낳고 힘들어하는 모습도 많다. “엄마는 맨날 아기가 먼저야.” “아빠는 맨날 아기만 예뻐해.” 첫째의 질투와 괴롭힘에 힘들고 서로 사랑을 먼저 달라며 떼를 쓰기도 한다. 친구 G는 둘째 아이를 낳고 첫째 아이에게 우울증이 생겨 함께 치료를 받았다. S는 몇 배로 고되진 육아에 십오 년간 해온 일을 그만두었다. 선배 K는 철인 삼종 경기에 출전할 정도로 막강 체력을 지녔는데 둘째 육아를 시작하며 일주일에 한 번은 코피가 난다고 한다. 아이가 하나일 땐 워킹맘이 가능하나 둘이 되는 순간 일을 그만두는 선배, 친구, 후배가 많다. 조부모의 도움과 베이비시터와 어린이집이 함께 잘 굴러가야 유지된다고 한다.
요즘은 형제자매가 있는 아이들보다 외동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런데도 아직 한국 사회는 외동에 대한 편견이 많다. “외동은 이기적이야.” “외동은 우울해.” “외동은 예민해.” “외동은 의존적이야.” 라지만 근거 없는 고정관념일 뿐이다. 실제로 일부 전문가들은 연구를 통해 형제자매의 있고 없음이 성격이나 사회성, 부정적인 심리적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실 외동은 자존감이 높고, 사랑받고, 성취동기가 높기도 하다.
물론 타고 난 개인 기질도 있겠지만 많은 부분 성장 과정에서 형성되는 성격과 성향, 내재화된 습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첫째는 완벽주의적이고 계획적, 둘째는 경쟁적이고 사회성이 좋고, 막내는 의존적이라는 것도 모두 부도 또는 사회가 만든 성격 아닐까. 문제는 부모의 양육 태도와 방식, 사회의 편견과 선입견 때문이다.
나의 아이가 외동아이로 자라도 좋다. 엄마가 아빠의 사랑으로 충분한 아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