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리링. 전화벨이 울렸다. 기다렸지만 예상치 못한 전화였다. 이 전화벨로 아기의 첫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백일이 지나면 베이비시터를 쓰거나 영아 전담 가정 어린이집에 아기를 맡길 참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를 뒤덮은 바이러스와 최악의 저출산율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드는 베이비시터 찾기는 어려웠으며, 어린이집 입소 대기 번호는 순서가 언제 올지 모를 두 자리에 줄 섰다.
나의 아기는 전화벨이 울린 후 한 달 뒤, 어린이집에 등원했다. 아기는 9개월 반이 지나 10개월을 앞두고 있었다. 사실 3월이 되면 자유의 몸이 될 거라 내심 기대했던 나의 기대는 호탕하게 무너졌다. 등원 1주 차에는 엄마와 선생님과 함께 30분 어린이집에 머물렀다. 2주 차는 1시간에서 1시간 반, 3주 차에는 2시간 반에서 3시간, 그렇게 천천히 적응 시간을 두었다. 어른도 이직하거나 새로운 장소에 가면 적응 시간이 필요한데 이 작은 아기는 더 시간이 필요했다.
돌도 안 된 아기를 맡기고 자유를 누린다며 타박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이니까 어쩔 수 없다. 물론 처음으로 엄마와 아빠가 아닌 누군가의 손에 안긴 아기가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다. 걱정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혹시나 하는 상상도 하게 된다. 티브이에서는 매일 아동학대 뉴스가 나오고, 그중 어린이집과 유치원 선생님의 아동학대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니까. 하지만 몇 명의 사람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까지 의심할 수는 없다.
처음 엄마와 떨어져 혼자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날, 나의 걱정스러운 눈길에 “엄마, 이따 봐.” 시크하게 돌아서는 아기의 모습에 웃음이 삐져나왔다. 어린이집에서 가장 막내였지만 가장 잘 먹고 씩씩했다. 더군다나 아기는 나에게 안겨 어린이집을 먼저 나올 땐 “왜 나 먼저 가지?”라는 눈빛을 발사했다. 친절하게 다양한 놀잇감으로 놀아주는 선생님과 자신보다 조금 큰 친구들이 좋았던가.
어떻게 한 살도 되지 않은 아기를 남의 손에 맡기냐고 물을지 모른다. 아기를 유아차에 태우고 어린이집 가방을 들고 가다 보면 “엄마가 일하나 보네.” “이렇게 아기도 어린이집에 가요?” “할머니가 아기를 못 봐주나 봐요.”라는 질문을 듣는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사람들은 아기와 있는 여자에게 궁금한 것이 참 많다. “알빠 아니잖아요.”라고 대답하고 싶은 충동을 찾고 애써 웃는 가면을 쓴다.
어느 티브이 예능 프로그램을 보니 3년은 엄마 손에 아이가 커야 한다며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부부가 나왔다. 아니 아내는 어린이집에 보내길 원하고 있었으나 남편이 반대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주 양육자로 보이는 아내가 남편 눈치를 보며 어린이집을 보내지 못하다니. 모든 육아는 주 양육자의 의견과 상황이 중요하다. 누군가는 출산휴가를 3개월밖에 쓰지 못하고, 누군가는 주변에서 양육을 도와줄 사람이 없고, 또 누군가는 베이비시터를 쓸 상황이 안된다.
난 나의 일상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아기와 함께 하는 시간을 더 소중히 보내기 위해 나로 있는 시간도 필요했다. 아기는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나를 잊고만 살 수는 없는 일. 이제 커피를 내리고, 노트북을 켠다. 물론 모든 게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다만 난 여기서 나답게 살기로 했다.
다행히 잘 울지 않는 나의 아기는 눈물을 한 번도 보이지 않고 적응 기간을 마쳐가고 있다. 이젠 뒤돌아 나가는 나에게 “안녕~.” 손을 흔든다. 엄마 아빠가 아닌 다른 사람 품에 안겨 웃는 아기에 조금은 질투가 나는 건 왜일까.
아가야, 너의 첫 사회생활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