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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시 Oct 30. 2022

나는 얼마나 더 잘할 수 있을까

달리기 - 언젠가는 마라톤에도

30분 달리기를 성공한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기록은 여전히 초심자에 가깝다. 몇 달 동안 준비해서 10km 달리기에 바로 도전해 성공하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여전히 5~6km 언저리에서 배회한다. 조금 더 노력하면 될까? 내가 나의 마지노선을 너무 낮게 잡아 둔 것 아닐까? 고민이 들 때도 있지만 6km를 뛰면 몸이 그만하라는 반응을 보낸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숨을 몰아쉬기가 힘들다. 그럴 땐 오늘의 최선을 다했구나, 생각하며 달리는 대신 천천히 걷는다.


조금 더 악물고 달릴 수 있는 일을 포기한 채 안전한 길만 걷고 있지는 않은지, 나의 한계를 낮게 정해두고 이 정도면 되었다고 스스로를 끌어다 앉히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땐 하고 있는 모든 일이 다 마음에 안 든다. 나는 겨우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일까?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 일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한계가 겨우 여기일까? 30분 달리기에 성공했다고 좋아하던 게 어제 일 같은데. 그 성공의 순간은 이미 작년으로 넘어갔고, 오늘의 나는 작년의 나를 데려와 비교하면서 거기서 크게 변하지 못했다고 낙담한다.


30분 달리기에 성공한다 한들 매번 그렇게 달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운이 좋게 몇 번 더 달릴 순 있지만 매번 30분을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엔 또다시 지난한 시간이 필요하다. 컨디션이 좋아 시간 단축에 성공했다고 기뻐할 틈도 없이, 그다음 날엔 20분 달리기도 힘들어서 꾸역꾸역 달리다 걷다를 반복하며 시간만 겨우 채운다. 조금 나아졌다 싶으면 기록은 여지없이 떨어진다. 


나는 여기까지 일까, 그런 생각이 들면 뭘 더 할 기분도 들지 않는다. 그럴 때에도 기록이 필요하다. 대충 눈으로 쓱 훑어보고 발전이 전혀 없었다며 일을 그만두는 게 아니라 꼼꼼하게 내 삶과 기록을 매만지며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결정하기 위해서.



2021년의 내가 30분 달리기에 성공한 것도 맞고 2022년의 내가 여전히 30분밖에 못 달리는 것도 맞다. 그렇다 해서 작년의 나와 달라진 게 없다고 낙담할 이유가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많은 이야기가 보인다. 매번 30분 달리기를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올해의 나는 작년의 나보다 더 자주 또 오래 달리고 있다. 달리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서 최대 45분까지 달려본 적도 있다. 작년엔 엄두도 내지 못했던 기록이다.


달리기 페이스에도 변화가 생겼다. 작년의 내 달리기 페이스는 8~9분대였다. 짝꿍은 “나 빨리 걷는 속도랑 비슷하다”고 말하며 나를 놀렸다. 짜증 났지만 사실이라 달리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가끔 짝꿍과 같이 운동하러 나가면 매번 짝꿍이 나를 제치며 달려 나갔다. 같은 시간을 운동해도 짝꿍과 내가 공원을 한 바퀴 돈 횟수에서 많은 차이가 났다. 짝꿍보다 빨리 달릴 순 없어도 짝꿍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올해의 나는 작년의 나보다는 조금 빨라졌다. 기복은 있지만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날에는 7분 초반대를 유지하며 30분 동안 달릴 수 있다. 여전히 짝꿍의 등만 보며 달려야 하지만 예전만큼 자주 따라 잡히지는 않는다. 나는 여전히 느리지만, 어느 순간의 나보다는 확실히 빨라졌다. 기록한 덕분에 나의 변화와 성장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공부는 삶의 해상도를 올리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아는 게 많으면 같은 이야기도 더 풍부하게 받아들이며 이해할 수 있고, 선명한 해상도를 즐기는 일을 통해 다시 공부로의 탐구를 이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기록도 삶의 해상도를 올리는 한 방법 아닐까. 나를 두루뭉술하게 판단하며 실망하는 대신, 내가 적은 기록을 바탕으로 미묘한 성장을 탐구하도록 돕고 다른 사람이 아닌 과거의 나와 비교하며 달라짐을 발견하게 만드는 좋은 방법.


흔히 사람은 계단형으로 성장한다고 한다. 나에게 성장은 계단형이 아니라 암벽형이나 지그재그형 같다. 가끔 성장은 정체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래로 추락한다. 할 만큼 했다 싶은 데도 중간 수준을 유지하기는커녕 더 엉망이 된다. 겨우 다 올라갔다 싶은 암벽에서 발 하나 잘못 디딘 죄로 저 한참 아래로 데구르르 굴러가듯이.


그럴 땐 나의 실패를 확대 해석하지 않으려고 한다. 한번 실수하고 한번 못했다고 나라는 사람의 능력을 매도하지 않으려 애쓴다. 언제나 잘할 수 없지만 여기에서 포기해버리면 언제까지나 못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실수로 도미노 패 몇 개를 쓰러뜨렸다고 분에 겨워 모든 걸 망쳐버리면 도미노를 완성할 날은 오지 않는다. 실패한 거기, 그 중간에서라도 다시 시작하면 처음 하는 것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시작조차 하지 않은 수준보다는 멀리 왔다는 믿음이 있기에 다시 등반을 시작한다. 그런 믿음 아래서 나는 더 빨리 일어날 수 있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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