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시 Oct 30. 2022

실패를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못해도

글쓰기 - 나만의 무늬를 만드는 실패

휴대폰만 챙겨 나와 하염없이 걷는다. 목적 없이 공원을 걷기도 하고, 걷던 길 말고 다른 길을 일부러 찾기도 한다. 집 근처에 이런 게 있었나, 조금 놀라며 건물을 살피고 길 구석구석에 핀 꽃을 구경하기도 한다. 당장 눈에 들어오는 것들에 정신이 팔리다 보면 감정이 가라앉는 것 같다. 그렇게 한두 시간 걷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산책은 공모전에 떨어졌다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내가 하는 일이다. 연락을 받았다는 말은 적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공모전에 당선된 사람만 연락을 받을 수 있으니까. 나는 어떤 연락도 받지 못해 초조한 기분에 휩싸인 채, 혹시나 하는 희망을 안고 홈페이지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낙선했다는 소식을 일부러 찾아 듣고 우울해하는 사람이다.


실패에 지나치게 낙담하는 스스로가 창피할 때도 있다. 실패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건 그만큼 기대했다는 뜻이니까. 내가 낙선 소식에 실망하고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이번엔 정말 될 줄 알았는데 생각하며 화낼 자격이 있을 정도의 글을 썼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실망의 충격은 금세 나를 향한 냉소로 바뀐다.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고 나면 처음엔 벅찬 마음만 든다. 소설에 투자한 지난한 시간도 떠오르고, 어떤 식으로든 끝까지 가봤다는 데서 보람도 느낀다. 부푼 마음은 곧 꺼진다. 며칠 지나고 다시 읽은 소설은 좋게 말해도… 처참한 수준이다. 어떻게 써도 이보다는 잘 쓸 것 같은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뭔가 될 것도 같은데, 마감일이 가까워졌으니 허겁지겁 제출하고 본다. 그리고는 발표일만 기다린다. 이번엔 정말로 뭔가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몰라….


기대는 매번 나를 무너뜨린다. 이번엔 잘 될 줄 알았는데, 하는 마음과 이번에도 이렇게 될 줄 알았어, 하는 마음이 동시에 든다. 나는 나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기대 없이 해야 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걸까. 이도 저도 아닌 채로, 어쩌면 그 모든 게 나의 일부인 채로 매일의 일을 이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실패 이전에도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나일뿐이지만 마음으로는 지울 수 없는 생채기가 난 듯한 기분이 든다.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큰지, 아무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짐작할 수 없는.


그대로 우울의 구렁텅이에 오래 빠져 있을 수도 있다. 실패했다는 좋은 핑계도 있다. 난 안 되나 봐, 구제불능인가 봐, 뭘 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내 삶을 겨우 중간으로 끌어올리는 데도 힘이 필요하다. 실패한 다음 날이니까 더 맛있는 걸 먹고 바빠서 내팽개쳐뒀던 방을 뒤집듯이 청소한다. 그렇게 해야 할 일을 한다. 목표가 목적은 아니라고, 성공도 실패도 걸어가는 길의 한 점이라고 생각하며.


좋은 성과를 얻은 뒤에도 노력은 필요하다. 그 결과를 우연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실패한 뒤의 일도 비슷해야만 한다. 언젠가 다가올 좋은 일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기다린 사람처럼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서.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에는 제주도 바다를 아름답게 유영하는 돌고래를 관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많게는 수십 마리의 돌고래가 한꺼번에 출몰하면 연구자들은 차를 타고 그들의 행로를 쫓는다. 돌고래가 물밖으로 나오는 순간을 카메라로 촬영하고 사진을 확인하며 어떤 개체가 무리에 합류했는지를 조사한다.


내 눈엔 다 똑같이 생긴 돌고래를 어떻게 구분할까? 관찰자들은 돌고래의 등 지느러미에 주목한다. 수면 위로 자주 보이는 부분이 등 지느러미인 것도 있지만, 돌고래는 경쟁과 협력 관계를 거치며 성장하는 동안 이런저런 상처를 얻는다.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지느러미 모양에 더해 해가 지남에 따라 차곡차곡 쌓이는 상처는 돌고래를 세상에 유일한 존재들로 만든다. 돌고래를 오래 관찰하면 할수록 기록도 쌓이고, 돌고래가 자연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어떤 상처와 실패도 나를 고유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면, 그 실패를 가만히 안아주고 싶어 진다. 성공한 나만 나인 게 아니라, 실패한 나도 나니까.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고 하면 나는 성공만 하는 사람보다는, 실패를 겪으며 더 강해지고 나다워지는 사람이고 싶다. 크고 작은 실패가 나의 고유한 무늬를 만들고, 그 실패를 껴안음으로써 더 나다운 이야기를 가진다고 믿으면서.

이전 05화 나는 얼마나 더 잘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