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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시 Oct 30. 2022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도착한다

달리기 - 나를 바꾸는 기나긴 여정


달리기의 좋은 점 하나. 대단한 준비물 없이도 마음만 먹으면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운동복도 러닝화도 있으면 좋지만 새 러닝화를 기다리는 동안 가만히 있으면 결국 안 하게 될 걸 알기에, 목 늘어난 티셔츠에 편한 운동화를 챙겨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이폰에 런데이 앱도 깔았다. 달리기 초보에게 도움이 될 만한 앱을 검색했을 때 사람들이 많이 추천해주던 앱이었다. 


런데이 앱에는 8주 동안 이어 하는 ‘30분 달리기 도전’ 코스가 있다. 1주 차 첫 코스를 시작하면 처음엔 1분씩 다섯 번 달리고 주차가 올라갈수록 달리는 시간이 늘어난다. 한 주에 세 번씩 연습하면 걷는 시간 없이 30분을 달리는 8주 차 마지막 코스를 만날 수 있다. 나의 첫 번째 달리기 목표는 쉬지 않고 30분 달리기였다. 8주짜리 코스였지만 실제로 내가 8주 차 코스에 성공하기까지는 서너 달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고비는 6~7주 차였다. 6~7주 차가 되면 달리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 한 번에 10분씩 달릴 준비를 한다. 그럴 때면 무릎을 비롯한 몸의 여러 부분이 돌아가면서 아팠다. 일이 바빠서 한동안 달리지 못하기도 했다. 비가 와서 한두 번 건너뛰고 난 다음엔 맑은 날에도 달리는 게 귀찮아졌다. 운동 습관은 매번 허무하게 무너졌다.



지겨울 만큼 6주 차, 7주 차 코스를 반복했다. 마침내 8주 차 마지막 달리기 코스를 수행해야 하는 날을 맞이했을 때도 기대보다는 의구감이 들었다. 스스로를 억눌러야 한다고, 내심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듯도 하다. 실패해도 실망하지 말자, 무리하면 다치니까 서두르지 말자. 느려도 괜찮다, 걷는 것보다만 빠르면 된다….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드물게라도 실천하면서 빈도를 조금씩 높여갈 수 있다면 언젠가는 닿을 거라고 믿으면서. 그만뒀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것마저 못하면 나라는 사람의 믿음을 완전히 잃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걷지 않고 달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투명해졌다, 고 말하는 게 어울릴 정도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발을 디딜 때마다 숨을 뱉고, 다시 숨을 쉬고. 아무 생각하지 않은 채 달렸다. 내 몸에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달리기 기능이 어느 순간 자동 모드로 켜진 것 같았다. 다리가 아프지 않았다. 휴대폰에서 30분 달리기 성공을 알리는 메시지가 울렸다. 나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조금 더 달렸다. 더 달릴 수 있다고 믿으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의 불안은 나를 늘 긴장하게 만든다. 잘할 수 있을까,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익숙해질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두려움 앞에서 뒤돌지 않고 눈 꼭 감고 뛰어내린 건 새로운 세상에서 만날 게 분명한 다채로움 때문이었다. 두려움이 주는 믿음이 있었다. 그곳에서 만날 무언가가 나를 영원히 달라지게 만들 거라는, 두려움을 두려울 만큼 견뎌내면 설렘과 기쁨으로 변할 거라는.



달리기를 끝낸 뒤 천천히 걸으면서 운동을 마무리했다. 내 몸은 30분 전과 변한 게 없을 텐데, 나는 내 어딘가가 변한 것 같다고 느꼈다. 심장이 이렇게 빨리 뛴 적이 있었던가? 땀을 이렇게 많이 흘린 적이 있었던가? 내 몸을 몸으로 감각한 적이 있었던가? 나의 몸, 이라고 말하며 나를 가리킨 적이 있었던가?


나는 내내 몸과 마음을 별개의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강력한 의지를 가진 정신이 몸을 이끌고 있고, 글을 쓰는 데 중요한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내 몸과 정신은 딱 붙어서 떼어낼 수 없는 것이며 나는 오로지 내 몸 안에서만 살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니 몸의 반응 하나하나가 새롭고 의미 있게 느껴졌다. 


몸을 ‘영혼의 우주복’이라고 언급한 인터뷰를 오래 기억하고 있다. 우주를 여행하려면 우주복이 필요하듯, 지구에서 잘 살기 위해선 내 몸을 잘 돌보아야 한다. 바닥이 보이는 의지를 쥐어짜서 몸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몸과 영혼의 균형을 적절하게 맞추는 식으로. 그렇게 된다면 억지로 잡아끌지 않아도 몸은 자연스럽게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8주짜리 운동 코스를 끝내는 데 그의 두 배에 가까운 시간을 쏟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30분 달리기라는 커다란 목표를 이룬 나를 만날 수 있었다. 8주 코스는 끝났지만 나의 달리기 여정은 이제 막 한 챕터가 끝났을 뿐이다. 내 몸은 이제야 달릴 준비를 마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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