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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시 Oct 20. 2021

책날개까지 먹어치우기

세상에 없는 이들을 더 많이 사랑한다. 좋아하는 작가가 몇 명이나 살아있는지 세기를 그만두었지만 처음 보는 작가의 책을 만날 땐 책날개를 펼쳐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작가가 살아 있는지를 먼저 확인한다. 책날개가 없는 책을 만나면 읽을거리가 하나 줄었다는 생각에 시무룩해진다. 


<<명랑한 은둔자>>를 읽을 때도 책날개부터 찾았다. 손깍지를 낀 채 한쪽을 바라보는 작가의 사진과 그의 이력이 책날개를 채우고 있다. 읽다 보면 글자 바깥의 이야기가 서서히 드러난다. 적힌 어투로 보아 작가가 직접 소개글을 쓴 것 같지 않다. “이른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두 번째 문단 마지막 줄을 읽었다. 고백하기도 전에 차인 기분. 살아 있지만 책을 아주 천천히 내는 작가의 차기작을 기다리는 것과, 세상에 없는 작가의 출간작을 다 읽어버리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괴로울까. 



전자를 생각하면 소설가 테드 창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한국에 출간된 테드 창의 작품집은 두 권뿐이고, 그마저도 두 책 사이엔 약 15년이라는 긴 간극이 있다. 살면서 테드 창의 신간을 몇 권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설마 그다음 책도 15년 뒤에 나오는 건 아니겠지. 오래 걸리더라도 꾸준히 써주기만 한다면야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오래 살아야지, 오래 살아서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 쓰루타니 가오리의 만화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가 생각난다. 


유키 할머니는 우연히 BL 만화를 접하면서 고등학생 우라라와 친구가 된다. 재밌게 읽은 만화책의 뒷면을 확인하고 책이 1년 반 간격으로 나온다는 걸 알아챈 할머니는 자신의 남은 생을 헤아려본다. 앞으로 10년쯤 더, 85세까지 산다고 가정한 할머니가 만날 수 있는 신간은 여섯 권 정도. 할머니는 먼저 세상을 뜬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90세까지 살아보겠다고 말한다.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 좋아하는 책의 완결을 보기 위해 오래 살겠다고 결심하는 할머니. 만화 축제에서 만난 작가에게 “일 년 반에 한 권보다 조금 더 빨리 그려”줄 수 있냐고 부탁하는 할머니. 테드 창의 소설이 정말로 15년 간격으로 나온다면, 나는 60년 정도 더 살고 싶다고 진지하게 마음먹게 될지도 모른다. 60년에 네 권은 여전히 터무니없이 적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다 곧 생각의 오류를 깨닫는다. 나이는 나만 먹는 게 아니라 작가도 먹는다. 내가 90살이 되면 테드 창은… 110살이 넘는다.)



세상에 없는 작가는 더 떠올리기 쉽다. 한동안 레이먼드 카버에 빠져 그의 소설집을 다 찾아 읽고 그걸로도 모자라 책날개 바깥의 이야기를 찾아다녔다. 카버는 가난과 알코올 중독으로 오래 고생하다 39세에 알코올 치료 모임에 나간 이후로 평생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술을 끊고 난 그의 ‘평생’은 10년쯤 된다. 교수가 되고, 오랜 연인과 결혼을 하고, 소설집이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던, 아마도 가장 편안하고 행복했을 시기. 카버는 50세에 폐암으로 사망한다. 


김소진의 전집을 모으는 동안에도 슬펐다. <김소진 문학전집>은 총 여섯 권이다. 열 권, 스무 권이 나왔어도 기쁘게 사모았을 텐데. 고등학생 때 그의 단편 <자전거 도둑>을 처음 읽었고, 대학생일 때 전집을 모두 읽었다. 그는 서른넷에 세상을 떴다. 나는 곧 멈춘 그의 나이가 된다. 운이 좋으면 계속 살아남아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나이를 넘어설 것이다.



나에겐 갑작스러운 작가의 죽음이지만 책날개에 적히지 않은 그들의 삶이 어땠는지는 영영 알 수 없다. 책을 내지 않는 작가들이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책이 나오지 않는 동안에도 그들은 각자 자리를 지키며 쓰고 있을 것이다. '한때 유명했던 퇴물 작가'로 남는 듯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장편소설 <<마지막 거물의 사랑>>을 쓰고 있었던 피츠제럴드처럼 모든 작가에게는 완성하지 못한 작품이,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글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들은 작가이기 전에 쓰는 사람이니까.


예전엔 작가가 ‘되고’ 싶었다. 내 이름이 적힌 책이 한 권만 나와도 달라질 거라고 믿었다. 요즘은 작가로 ‘사는’ 일을 생각한다.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해내는, 끝이 어딘지 모르기 때문에 더 아득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을 상상한다. 성공한 작가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은 끝까지 쓴 작가다. 나는 오래 살고 싶다.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기 위해서. 읽는 사람으로, 또 쓰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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