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와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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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녹아




얼마 전 서점에서 마주한 셀프 계산대 앞에서 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바코드를 스캔하고 카드를 긁는 일련의 과정은 분명 편리했지만, 동시에 어딘가 공허한 기분이 들더군요. 예전이라면 점원과 나누었을 작은 인사나 미소, 그 사소한 교감이 사라진 자리에 차가운 기계음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기계 문명의 절정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탁기와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는 집안일을 대신해 주고, 내비게이션은 길을 안내하며, 은행 업무는 ATM에서, 쇼핑은 온라인에서, 심지어 친구들과의 대화도 스마트폰 메신저 앱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기계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었어요.


분명 이런 변화는 놀라운 발전이죠. 기계들이 반복적이고 단순한 작업을 대신해 주면서 우리는 더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고, 더 효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고, 질병을 진단하는 의료 장비, 위험한 작업을 대신하는 산업용 로봇, 장애인의 이동을 돕는 보조 기구들을 보면 기계가 인간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실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계가 더욱 인간적이 되어가는 동안 인간은 점점 기계적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정해진 업무를 처리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는 삶. 마치 프로그래밍된 것처럼 반복되는 일상. 저 또한 이렇게 일을 시킬 거면 차라리 기계를 쓰지.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감정을 억누르고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모습은 때로 기계보다도 더 기계적으로 보입니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면 상담원의 목소리에서 매뉴얼의 차가움이 느껴집니다. 병원에서 의사는 환자의 얼굴보다 모니터 화면을 더 오래 바라보고, 카페 직원은 미소를 짓지만 그 미소 뒤에 진정성을 찾기 어렵죠.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타인을 하나의 업무 처리 대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개성과 깊이는 사라지고, 빠르고 간편한 것만이 남았어요.


서점의 셀프 계산대 앞에서 느꼈던 그 묘한 감정의 정체는 기계가 발전하면서 우리가 잃어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따뜻함, 비효율적이지만 의미 있는 교감, 완벽하지 않기에 더욱 소중한 관계들.


물론 기계 문명의 발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중요한 것은 균형이겠죠. 기계의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것. 효율성을 추구하면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것.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진정성을 잃지 않는 것. 기계의 정확함과 신속함을 인정하되, 인간의 불완전함과 느림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를 놓치지 않게요.


기계와 인간이 공존하는 이 시대에서, 진정한 발전은 기계가 더 인간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더 인간다워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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