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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Mar 19. 2019

행원리에서 비자림까지,  하루 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

무작정 도보여행, 25킬로미터를 걸으며 만난 사람들.

아침이다. 나의 로망을 실천할 시간. 평상에 앉아 아침을 만끽하는 일이다. 들뜬 마음에 몸을 부리나케 일으켜 뒷마당 평상에 앉았다. 사과 한 개와 우유 말은 시리얼과 함께. 바람이 불고 새가 지저귄다. 옆집의 당근밭은 오늘도 초록초록하다. 어제와 다른 듯 같은 제주도였다. 해야 할 일이라곤 나와 대화하는 일뿐이다.






#비자림 찾아 삼만리


책 한 권, 스마트폰, 선글라스 그리고 카메라. 떠날 채비를 마치고 문을 나섰다. 서울에서 본 하늘과 같은데 웬일인지, 제주도의 하늘은 남다르다. 눈에 걸리는 높은 건물들이 없어서일까. <행원리>는 월정리와 한동리 사이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사람이 편리해지고자 지명을 나눠놓았지만, 풍경 속엔 경계가 없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초록과 파랑 빛의 향연이다.


저멀리 보이는 바다.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하다


속도에 따라 볼 수 있는 것들은 정해져 있다. 속도가 빠른 걸 탈수록 같은 시간 내 많은 것을 볼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깊이는 얕을지도 모른다. 자전거, 스쿠터 혹은 그보다 빠른 버스나 차.


자동차 -   -   -   -   -   -   -

도보    ㅡㅡㅡㅡㅡㅡㅡㅡ


눈을 감고 여행이 끝난 후 그간의 시간을 떠올려본다. 몸이 힘든 여행일수록 기억에 남는 것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 그래서 오늘도, 도보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한 달 후,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듬성듬성 박힌 기억이 아니라 곧은 선들로 이어진 그림일 거라 기대해본다.


관광지가 유명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역사적으로 유명해서, 뛰어난 자연경관 때문에, 하다못해 드라마/영화 촬영지였기 때문에. 다들 하나같이 명분이 있다. 지금 걷는 이 길에는 어떤 명분이 있을까? 한 걸음 앞으로 옮길 때마다, 길목을 바꿀 때마다 느낀다. 빛나는 명분은 없지만 세상엔 더 빛나는 여행지가 많다는 것을. 이곳이 어디냐 묻는다면, '비자림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밖에 말 못 한다. 그럼 어떠한가. 이름 모를 길목에서 반짝반짝 빛이 난다. 한편에 개나리가 노오랗게 피었다.




#할머니와 정류장 인터뷰


굽이굽이 작은 고개를 넘고 꽃길을 지난다. 해는 뜨겁고 바람은 차가웠다. 겨울의 흔적이 남아있는 3월이다. 걷다 걷다 잠시 정류장에 앉았다. 10분에 차 한 대 지나갈까 말까 한 조용한 마을. 얼마나 앉아 쉴지는 모른다. 내키는 만큼 앉아있기로 하자. 혼자 하는 여행의 장점은 바로 이런 점이다. 자유롭다. 내 속이 옆사람으로 인해 시끄럽지 않은 것. 오로지 나만 바라보면 된다. 바람이 볕에 붉게 오른 얼굴을 식혀준다. 한결 좋다.


다리가 불편하신 할머니께서 멀리서 걸어오신다. 곱게 입으신 걸 보니 먼길 나가시나 보다. 침묵 속에 입을 먼저 뗀 건 할머니였다. 지난날 동네 아버님에게 듣던 제주도 방언. 언제 들어도 익숙지 않다. 귀엽기도 하고. 첫음절과 끝음절 사이로 줄넘기를 하듯 소리가 부드럽게 넘어간다.


할머니는 나를 '육지 처녀'라고 불렀다. 왜 이곳에서 버스를 타냐고 물었다. 타지 사람들이 늘 나에게 묻는 첫 질문이다. 그렇담 나는 늘 그렇듯 처음 대답하는 양 말했다.


- 여행 중이에요, 걷다가 여기서 쉬고 있어요


늘어진 주름살에 가려졌던 눈이었나 보다. 내 대답에 할머니는 놀라신 듯 나를 보며 두 눈이 커지셨다. 여자 혼자 겁이 없다며, 언제 육지로 돌아가냐 물었다. 할머니는 자꾸 내가 할머니를 놀라게 할 만한 질문만 거듭하신다. 그런데 왜였을까, 난감하다기보다 할머니의 놀란 표정을 또 볼 수 있을 것 같아 신이 났다.


- 한 달 뒤에 돌아가요


역시나 또, 할머니는 고개를 나에게 휙 돌리시며 두 눈을 땡그랗게 뜨셨다. 뭐라고오-? 그렇게 우린 30분이 넘게 상덕천 정류장에서 대화를 나눴다. 대개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은 한 번 말씀을 시작하시면 끝을 모르신다. 어느 순간 그 답을 알았다. 그들이 외롭다는 걸.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도 나눌 사람도 곁에 없어 어쩌다 사람이라도 만나면 그 기회가 아쉬워 속을 다 꺼내놓는다는 걸.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올해까지 여든 해 인생을 사신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노년의 인생에서 주된 대화 소재는 단연 자식 이야기다.


아들 둘, 딸 하나. 큰 아들은 프랑스 2년 유학 후, 서울대학교 교수를 하고 계시고 작은 아들은 LG에서 근무한다. 작은 딸은 분당으로 시집갔다. 세상 말로 하자면 자식 농사 하나는 잘 지어서 뿌듯하다는 할머니. 그녀의 표정이 어쩐지 개운치 않았다.


나중에 결혼하거든 부모 곁에 살아.

자주 얼굴 보고, 같이 밥도 먹고.

그거만큼 큰 효도도 없어.


이스타 항공이 무엇인지, 티켓 예매를 일찍 할수록 값이 싸다는 것도 아실 만큼 요즘 세상 것에 익숙한 할머니셨지만 자식은 쉽게 만날 수 없었다. 할머니는 가족이 그리웠다. 이 말을 끝으로 그녀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녀는 무릎 위 가방 손잡이를 괜시레 만지작거린다. 기미와 주름살로 누가 봐도 할머니 손이지만, 여전히 고우셨다.


- 그간 고생 많으셨겠어요.


이 말이 할머니에게 어떤 울림을 주었는지는 사실 잘 모른다. 다만, 할머니는 자신의 두 손을 어쩌지 못하고 괜히 쥐었다 폈다 하셨다. 나는 왜, 그 모습에 가슴이 울렁거렸는지 모를 일이다. 관광지가 아닌 곳이기에 할머니에겐 타지 사람을 마주칠 것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 탓에 지금의 인연이 소중할지도 모른다. 읍내로 나가는 버스가 도착했고, 할머니는 손 한 번 흔드시곤 버스에 오르셨다.




#말 한마디의 힘


오늘의 목적지, 비자림에 도착했다. 눈에 보이지 않던 바람도, 이곳에선 눈에 선하다. 주변의 비자나무를 보면서도 내 시선을 끈 건, 다른 여행객들이었다. 친한 사람들과 혹은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장난을 치고 웃고 떠든다. 그 모습에 괜히 행복해졌다. 내가 혼자 왔기 때문에 생긴 부러움은 절대, 아니다. (아니라고! ..으응..?)


내 앞으로 뛰어가는 꼬마와 할머니가 보인다. 꼬마는 비자나무에 걸어놓은 번호를 소리 내어 읽었고, 할머니는 자기가 먼저 읽지 못했다며 괜히 아쉬워했다. 꼬마는 신이 나서 옆 나무 번호도 큰 소리로 읽었다. 할머니는 또 다른 나무로 뛰어가는 시늉을 하셨다. 이에 질세라 꼬마가 그걸 가로채 읽었고, 할머니는 좋아하셨다. 꼬마는 성취감에 기분이 좋았고 더 열심히 이리저리 뛰었다. 애초에 할머니는 이 게임 승패엔 큰 의미가 없었다. 꼬마의 웃음이 보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지금 이런 모습들이 나의 눈에 보이듯, 꼬마도 크면 알게 되겠지. 할머니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셨는지.


천년 비자나무


저녁때가 다 되어 이만 나가야 할 것 같았다. 때마침 갈림길이다. 나가는 곳과 천년 비자나무를 볼 수 있는 곳.


- 여기까지만 보고 가세요. 100미터만 가면 엄청 큰 나무를 볼 수 있어요.


솔깃. 그래 100미터라는데, 엄청 크다는데, 꼭 보고 가야겠단 욕심이 생겼다. 가서 보니 크다는 말로는 성에 차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어떤 각도로도 카메라 안에 다 담기지 않아 낑낑댔다. 결국 이내 포기하고 눈에 담는 걸로 족하기로 했다.


- 아가씨, 우리 사진 좀 찍어주면 좋겠는데요.


소리 나는 쪽으로 뒤돌아보니 아홉 분의 어머니들이 날 쳐다보고 계셨다. 알록달록 등산복으로 곱게 치장하신 어머니들. 얼결에 스마트폰을 받아 들고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있었다. 자길 따라오라며 이쪽에서 찍어달란다. 귀신이라도 홀린 사람처럼 어머니가 잡아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옷 잡아당기는 거 싫어하는 탓에 그녀의 리드에 미간이 찡그려졌다. 소심한 건지 어쩐 건지 어떤 반항도 못한다, 나란 사람은. 이왕 찍는 거 또 잘 찍어야 성에 찬다. 두 번 찍고 스마트폰을 돌려드리곤 확인차 잠시 주변에 머물렀다. A/S 요청이 올 수도 있으니까!


어머니들은 동시에 방청객 호응을 해주셨다.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어머 너무 잘 찍었다.' '예술이다.' '얘 나도 보내줘.' '사진사 양반이 찍어서 그런가 뭔가 다르네.' 아홉 분의 어머니께서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더니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고마워요.


이런 말 듣자고 한 건 아닌데, 아까 기분이 나빴던 게 맞나 싶게 수줍어하며 고개를 연신 숙여댔다. 비록 나는 '사진사 양반'은 아니었지만, 나름 나쁘지 않은 찬사다. 그래, 뭐라 불리든 무슨 상관이람. 그녀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드렸음 그걸로 된 것 아닌가?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 돌아갈 땐 버스 타야겠다. 종일 고생한 허리가 더 이상 못 걷겠다고 아우성이다.





@Yogurt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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