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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Mar 12. 2019

여긴 서울과 달라요

첫날엔 아무 생각 없이 서성거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2016년 3월부터 6월까지. 두 번째 퇴사 후 어떤 연고 없던 제주에 짐을 풀었다. 다들 물었다. 왜 하필 제주였느냐고. ‘어떤 연고 없는’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회사생활에 지쳐있던 나는 누구도 없는 곳에서 숨어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나를 평가하지 않는 그런 곳. 긴 기간 제주에 머물면서 여러 단상들을 블로그에 글로 올렸었다. 그리고 1년 뒤, 운이 좋게도, 브런치북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 글을 다시 꺼내보려 한다. 정확히 3년 전의 글을 다시 읽으면서 나 또한 제주를 다시금 여행해보려 한다.






#애물단지와 총각


드디어 제주에 왔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반기던 건 한라산도, 돌하르방도 아니었다. 길목마다 줄지어 서있는 야자수 나무들. 고등학교 1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와보고 10년 만에 재방문이다. 


숨어있고 싶었다기엔 꽤, 들떠있던 것 같다. 짐 개수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캐리어만 두 개에 배낭 하나. 하나는 바퀴도 잘 굴러가지 않는 이름만 명품인 쌤 머시기, 다른 하나는 나의 여행 단짝, 빨강 캐리어.(이 아이는 최대 일주일치 정도 소화 가능하다) 누가 보면 이민 가는 줄 알겠어.


제주에 오기 전까지 여러 번의 짧은 여행을 다녔다. 그 탓일까? 긴 여행을 위한 짐 싸는 법을 잊은지도 모르겠다. 막상 짐 챙길 때가 되면 가져가고 싶은 물건들이 많았다. 혹시 모르니까, 라는 생각에 빨강 캐리어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어떤 것도 포기하지 못하고 다 들고 나왔는데 집 나온 지 5분 만에 후회를 했더랬다. 짐을 내던지고 싶단 생각(사실 무거워서 들지도 못한다)을 수도 없이 했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꾸역꾸역 이고 지고 버스에 오르는 수밖에.


세상에 이런 곳은 없었다. 이곳은 해외인가 국내인가.


정류장에서부터 계속 눈에 거슬리는 한 총각. 나 못지않게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었더랬다. 두 눈과 핸드폰 위에 손가락이 분주히 움직이는 거 보니 ‘방황’이 분명하다. 숙소 위치를 찾는 건가. 이내 나의 관심은 창밖 경치에 머물렀다. 이럴 때 나는 꼭 청승맞은 여주인공 흉내를 낸다. 창문을 활짝 열고 머리칼을 날려본다. 대체 어떤 영화를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면 청순할 줄 알았나 보다. 뭐든 과하면 취한다. 취하면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법. 캐리어가 어디로 나뒹구는지 신경 쓰지도 않았다. 바퀴 방향 따라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캐리어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떤 이의 발로 꽁꽁 묶여있었다. 그 총각이었다. 고맙다는 건조한 인사로 당황스러움을 숨겼다. 사실 캐리어보다 청순하지 않은 여자가 청순한 여자를 흉내 내고 있었다는 걸 들킨 것 같아 수치스러웠다.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 201번 버스를 타야 했고, 이 버스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다시 럭키- 15킬로도 넘는 애물단지를 버스에 간신히 들어 올렸는데 기사님께서 트렁크에 실으라 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 나란 사람은 넉살 좋은 사람도 아닌지라 도와달란 애교는커녕, 뻔뻔하지도 않아 그냥 실으면 안 되냐고 구시렁대지도 못한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캐리어랑 씨름하고 있을 때 다시 그 총각이 나타났다. 나에겐 바위 덩어리 같던 물건을 거뜬히 들어내는 모습에 잠시 설렜다. (이것이 운명인가!) 공항에서부터 지금까지 여러 우연이 겹치면 인연인 걸까, 라며 갖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중, 총각은 버스를 잘못 탔는지 버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허둥지둥 내려버렸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끝이 났다. (역시 운명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히치하이킹


내가 머무는 집주인은 젊은 부부다. 7년째 신혼여행 중이라는 모토로 삶을 사는 부부. 사실 블로그에서 ‘7년째 신혼여행 중’이란 문구를 보고 이 집을 계약했다.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인 걸까? 그들을 취재해보고 싶었다. 그들은 한 달 전 계약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인도 여행 중이다. 오늘 제주도에 들어오신다더니 일주일 뒤에 귀국한다고 하신다. 역시!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야,라고 생각하며 만날 날이 더욱 기다려진다. 


덕분에 이 집 전부 내 것이 되었다. 방 하나 값에 일주일간 독채를 쓰게 된 셈이다. 숙소를 알아보면서 독채도 눈여겨봤었지만 나 같이 지갑이 얇은 이에겐 그저 그림의 떡이었다. 그런데! 우연찮게 집 전체가 나의 것이 된 것이다. 아무도 없는 집, 누구도 모르는 동네. 어떤 이의 방해도 없이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바람을 쐰다. 나에겐 이런, 값비싼 로망이 있었다. 그게 바로 실현된 것이다. 이 역시, 럭키-


집주인과 친한 언니라고 읽고 이웃이라 적힌 언니분이 집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속성 강좌. 이 분이 알려주시는 다른 정보들은 덤이었다. 나는 당장에 필요한 것 3가지만 알고자 했다.


1. 와이파이 비밀번호

2. 마트 위치

3. 자전거 자물쇠 유무



여긴 서울과 달라요


자전거 자물쇠 따위 없단다. 편안한 미소와 함께 이런 말을 하니, 내가 못할 말을 한 것 같아 되려 무안하기까지 했다. 제주는 민심이 좋아서 가져가는 사람도 자물쇠를 채우는 사람도 없단다. 아직까진 반신반의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설명을 마치곤 나를 마트에 내려주겠다 하셨다. 냉큼 차에 올랐다. 경계심이 많은 나지만 짧은 시간이지만 그녀에게선 구린 냄새가 나지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낯선 이가 되려 편한 순간이 있다. 그들은 나에게 어떤 정보도 없기에 기대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는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양손 가득 식량을 사들고 나와 돌아가는 버스를 찾았다. 어느 곳에서도 버스정류장이 보이지 않았다. 애물단지 캐리어들 때문에 내 팔은 이미 만신창이였기에 얼른 버스를 찾아야 했다. 멋스럽게 단장을 하고 나오신 아버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빛에서 나를 도와주고 싶다는 의지를 읽었다. 


제주도 사투리인가. 정류장 위치를 묻는 나에게 대답하는 그의 어조가 굉장히 독특했다. 우연찮게도 아버님도 행원리 주민이셨고 자기 차로 같이 가자 하셨다. 괜찮을까, 싶은 마음에 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저씨의 행색도 빠르게 스캔했다. 오늘 세 번째로 만나는 낯선 이에게 쉽게 거리를 좁혀도 되는지 의문이었다. 


경계심은 여전히 풀지 않았다. 불안한 동공은 계속 이리저리 훑어댔다. 아저씨는 이런 나의 마음은 모른 채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계속하셨다. 같은 나라 말 맞나 싶게 제주도 방언은 정말 외계어처럼 들렸으니까. 머무는 집 위치를 말하자 젊은 부부가 사는 곳 아니냐고 물으셨다. 경계심 수치 -10. 이 동네에서 유명한 부부인가 보다.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계속된 나의 반문(네..?) 탓에 서로 알게 된 정보는 많지 않았다.


- 아버님, 감사합니다. 또 봬요!

- 우리가 어떻게 또 보나아~~~?


나의 인사치레 멘트에 뒤통수라도 꽝 하고 맞은 느낌. 그래, 이것도 결국 거짓말이다. 솔직한 말만 하자. 아버님 말마따나 우린 다시 못 볼 확률이 더 컸다. 그래도 거짓말이었다고 순순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어디쯤 사시냐고 물었다. 또 만날 수도 있겠네요- 라는 말과 함께.



#서울에선 보이지 않던 것들


대충 짐 정리를 하고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 동네를 걸어보기로 했다. 한 손엔 내 사랑 피스타치오 콘 아이스크림, 다른 한 손엔 책 한 권을 들고.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목적지는 없었다. 굳이 목적지라 말한다면 멀리 눈에 걸리는 듯 보이는 바다였다. 걸어서 10분이면 닿을 거리. 북극성을 보고 길을 찾듯 방향만 살피며 걸었다. 길을 잘 모르는 사람은 함부로 방향을 꺾지 않는다. 무조건 직진. 나침반이 없었지만 바다는 그 자리에 있었다. 골목을 걸으며 행원리의 저녁을 구경했다.


학원을 다녀오는 길인지, 봉고차에서 남학생이 내렸고 바로 앞집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담 너머로 마당을 쓸고 계시는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는 손자의 모습을 슬쩍 보곤 지나갔다. 땅거미 내려앉은 시각,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어느 집 안은 환했다. 문 바로 앞에서 생선 손질을 하시는지 붉은색 옷을 입은 어머니는 분주했다. 일정한 간격의 칼질 소리. 어제도, 그제도 같은 소리를 냈을 법한 일상의 소리다.



어느덧 바다에 닿았다. 멀리서 보던 풍차를 내 머리 위에 놓고 보니, 우주에 있는 거 마냥, 이곳이 아득하기만 하다. 풍차 너머로 보름달이 떠있다. 누가 창호지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낸 듯, 검푸른 바탕에서 새어 나오는 노란빛. 그 빛이 바다에 내려앉아 파도에 부서진다. 바다는 달빛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 이래서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구나.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사진을 찍고 싶다, 글을 쓰고 싶다는 느낌은 많았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은 처음이었다. 얼마 전에 본 전시회의 영향일까.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연상시키는 그때 그 시간. 어둠이 지상 가까이 내려앉았을 때, 이곳이 바다인지 저곳이 바다인지 분간이 어려울 때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여 행원리 이름 모를 바다를 느껴보았다.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글 돌았다. 빨강, 초록, 노랑.. 저마다의 색을 깜빡이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등대들. 주황빛 가로등이 바다와 만나 빛이 길게 번진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들이 내 생애 처음이 아닐 텐데, 새삼 놀랍기만 하다.



어둠이 깊어졌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한다. 다시 그 골목, 어느덧 익숙해진 사람들을 마주쳤다. 여전히 어머니는 생선을 손질 중이셨고, 아이는 할아버지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30분도 채 안됐을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걸 보고 느끼고 감동했다. 서울살이에 익숙해진 나는 오늘 가져온 두 개의 캐리어처럼 욕심만 많아진 건 아닐까. 다시 여행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겸허한 태도로 나를 내려놔야지.


마음이 급하다. 얼른 지금 느낌을 옮겨놔야겠다. 

그림을 그리듯 오늘은, 글을 적어본다.




@Yogurt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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