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도보여행, 25킬로미터를 걸으며 만난 사람들.
아침이다. 나의 로망을 실천할 시간. 평상에 앉아 아침을 만끽하는 일이다. 들뜬 마음에 몸을 부리나케 일으켜 뒷마당 평상에 앉았다. 사과 한 개와 우유 말은 시리얼과 함께. 바람이 불고 새가 지저귄다. 옆집의 당근밭은 오늘도 초록초록하다. 어제와 다른 듯 같은 제주도였다. 해야 할 일이라곤 나와 대화하는 일뿐이다.
책 한 권, 스마트폰, 선글라스 그리고 카메라. 떠날 채비를 마치고 문을 나섰다. 서울에서 본 하늘과 같은데 웬일인지, 제주도의 하늘은 남다르다. 눈에 걸리는 높은 건물들이 없어서일까. <행원리>는 월정리와 한동리 사이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사람이 편리해지고자 지명을 나눠놓았지만, 풍경 속엔 경계가 없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초록과 파랑 빛의 향연이다.
속도에 따라 볼 수 있는 것들은 정해져 있다. 속도가 빠른 걸 탈수록 같은 시간 내 많은 것을 볼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깊이는 얕을지도 모른다. 자전거, 스쿠터 혹은 그보다 빠른 버스나 차.
자동차 - - - - - - -
도보 ㅡㅡㅡㅡㅡㅡㅡㅡㅡ
눈을 감고 여행이 끝난 후 그간의 시간을 떠올려본다. 몸이 힘든 여행일수록 기억에 남는 것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 그래서 오늘도, 도보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한 달 후,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듬성듬성 박힌 기억이 아니라 곧은 선들로 이어진 그림일 거라 기대해본다.
관광지가 유명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역사적으로 유명해서, 뛰어난 자연경관 때문에, 하다못해 드라마/영화 촬영지였기 때문에. 다들 하나같이 명분이 있다. 지금 걷는 이 길에는 어떤 명분이 있을까? 한 걸음 앞으로 옮길 때마다, 길목을 바꿀 때마다 느낀다. 빛나는 명분은 없지만 세상엔 더 빛나는 여행지가 많다는 것을. 이곳이 어디냐 묻는다면, '비자림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밖에 말 못 한다. 그럼 어떠한가. 이름 모를 길목에서 반짝반짝 빛이 난다. 한편에 개나리가 노오랗게 피었다.
굽이굽이 작은 고개를 넘고 꽃길을 지난다. 해는 뜨겁고 바람은 차가웠다. 겨울의 흔적이 남아있는 3월이다. 걷다 걷다 잠시 정류장에 앉았다. 10분에 차 한 대 지나갈까 말까 한 조용한 마을. 얼마나 앉아 쉴지는 모른다. 내키는 만큼 앉아있기로 하자. 혼자 하는 여행의 장점은 바로 이런 점이다. 자유롭다. 내 속이 옆사람으로 인해 시끄럽지 않은 것. 오로지 나만 바라보면 된다. 바람이 볕에 붉게 오른 얼굴을 식혀준다. 한결 좋다.
다리가 불편하신 할머니께서 멀리서 걸어오신다. 곱게 입으신 걸 보니 먼길 나가시나 보다. 침묵 속에 입을 먼저 뗀 건 할머니였다. 지난날 동네 아버님에게 듣던 제주도 방언. 언제 들어도 익숙지 않다. 귀엽기도 하고. 첫음절과 끝음절 사이로 줄넘기를 하듯 소리가 부드럽게 넘어간다.
할머니는 나를 '육지 처녀'라고 불렀다. 왜 이곳에서 버스를 타냐고 물었다. 타지 사람들이 늘 나에게 묻는 첫 질문이다. 그렇담 나는 늘 그렇듯 처음 대답하는 양 말했다.
- 여행 중이에요, 걷다가 여기서 쉬고 있어요
늘어진 주름살에 가려졌던 눈이었나 보다. 내 대답에 할머니는 놀라신 듯 나를 보며 두 눈이 커지셨다. 여자 혼자 겁이 없다며, 언제 육지로 돌아가냐 물었다. 할머니는 자꾸 내가 할머니를 놀라게 할 만한 질문만 거듭하신다. 그런데 왜였을까, 난감하다기보다 할머니의 놀란 표정을 또 볼 수 있을 것 같아 신이 났다.
- 한 달 뒤에 돌아가요
역시나 또, 할머니는 고개를 나에게 휙 돌리시며 두 눈을 땡그랗게 뜨셨다. 뭐라고오-? 그렇게 우린 30분이 넘게 상덕천 정류장에서 대화를 나눴다. 대개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은 한 번 말씀을 시작하시면 끝을 모르신다. 어느 순간 그 답을 알았다. 그들이 외롭다는 걸.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도 나눌 사람도 곁에 없어 어쩌다 사람이라도 만나면 그 기회가 아쉬워 속을 다 꺼내놓는다는 걸.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올해까지 여든 해 인생을 사신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노년의 인생에서 주된 대화 소재는 단연 자식 이야기다.
아들 둘, 딸 하나. 큰 아들은 프랑스 2년 유학 후, 서울대학교 교수를 하고 계시고 작은 아들은 LG에서 근무한다. 작은 딸은 분당으로 시집갔다. 세상 말로 하자면 자식 농사 하나는 잘 지어서 뿌듯하다는 할머니. 그녀의 표정이 어쩐지 개운치 않았다.
이스타 항공이 무엇인지, 티켓 예매를 일찍 할수록 값이 싸다는 것도 아실 만큼 요즘 세상 것에 익숙한 할머니셨지만 자식은 쉽게 만날 수 없었다. 할머니는 가족이 그리웠다. 이 말을 끝으로 그녀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녀는 무릎 위 가방 손잡이를 괜시레 만지작거린다. 기미와 주름살로 누가 봐도 할머니 손이지만, 여전히 고우셨다.
- 그간 고생 많으셨겠어요.
이 말이 할머니에게 어떤 울림을 주었는지는 사실 잘 모른다. 다만, 할머니는 자신의 두 손을 어쩌지 못하고 괜히 쥐었다 폈다 하셨다. 나는 왜, 그 모습에 가슴이 울렁거렸는지 모를 일이다. 관광지가 아닌 곳이기에 할머니에겐 타지 사람을 마주칠 것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 탓에 지금의 인연이 소중할지도 모른다. 읍내로 나가는 버스가 도착했고, 할머니는 손 한 번 흔드시곤 버스에 오르셨다.
오늘의 목적지, 비자림에 도착했다. 눈에 보이지 않던 바람도, 이곳에선 눈에 선하다. 주변의 비자나무를 보면서도 내 시선을 끈 건, 다른 여행객들이었다. 친한 사람들과 혹은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장난을 치고 웃고 떠든다. 그 모습에 괜히 행복해졌다. 내가 혼자 왔기 때문에 생긴 부러움은 절대, 아니다. (아니라고! ..으응..?)
내 앞으로 뛰어가는 꼬마와 할머니가 보인다. 꼬마는 비자나무에 걸어놓은 번호를 소리 내어 읽었고, 할머니는 자기가 먼저 읽지 못했다며 괜히 아쉬워했다. 꼬마는 신이 나서 옆 나무 번호도 큰 소리로 읽었다. 할머니는 또 다른 나무로 뛰어가는 시늉을 하셨다. 이에 질세라 꼬마가 그걸 가로채 읽었고, 할머니는 좋아하셨다. 꼬마는 성취감에 기분이 좋았고 더 열심히 이리저리 뛰었다. 애초에 할머니는 이 게임 승패엔 큰 의미가 없었다. 꼬마의 웃음이 보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지금 이런 모습들이 나의 눈에 보이듯, 꼬마도 크면 알게 되겠지. 할머니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셨는지.
저녁때가 다 되어 이만 나가야 할 것 같았다. 때마침 갈림길이다. 나가는 곳과 천년 비자나무를 볼 수 있는 곳.
- 여기까지만 보고 가세요. 100미터만 가면 엄청 큰 나무를 볼 수 있어요.
솔깃. 그래 100미터라는데, 엄청 크다는데, 꼭 보고 가야겠단 욕심이 생겼다. 가서 보니 크다는 말로는 성에 차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어떤 각도로도 카메라 안에 다 담기지 않아 낑낑댔다. 결국 이내 포기하고 눈에 담는 걸로 족하기로 했다.
- 아가씨, 우리 사진 좀 찍어주면 좋겠는데요.
소리 나는 쪽으로 뒤돌아보니 아홉 분의 어머니들이 날 쳐다보고 계셨다. 알록달록 등산복으로 곱게 치장하신 어머니들. 얼결에 스마트폰을 받아 들고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있었다. 자길 따라오라며 이쪽에서 찍어달란다. 귀신이라도 홀린 사람처럼 어머니가 잡아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옷 잡아당기는 거 싫어하는 탓에 그녀의 리드에 미간이 찡그려졌다. 소심한 건지 어쩐 건지 어떤 반항도 못한다, 나란 사람은. 이왕 찍는 거 또 잘 찍어야 성에 찬다. 두 번 찍고 스마트폰을 돌려드리곤 확인차 잠시 주변에 머물렀다. A/S 요청이 올 수도 있으니까!
어머니들은 동시에 방청객 호응을 해주셨다.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어머 너무 잘 찍었다.' '예술이다.' '얘 나도 보내줘.' '사진사 양반이 찍어서 그런가 뭔가 다르네.' 아홉 분의 어머니께서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더니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고마워요.
이런 말 듣자고 한 건 아닌데, 아까 기분이 나빴던 게 맞나 싶게 수줍어하며 고개를 연신 숙여댔다. 비록 나는 '사진사 양반'은 아니었지만, 나름 나쁘지 않은 찬사다. 그래, 뭐라 불리든 무슨 상관이람. 그녀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드렸음 그걸로 된 것 아닌가?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 돌아갈 땐 버스 타야겠다. 종일 고생한 허리가 더 이상 못 걷겠다고 아우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