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베티 Oct 19. 2022

니들이 레트로를 알아?

신흥시장 O카페 

“여기 커피 공짜냐?”

O카페에 들어선 엄마의 첫마디였다.

"공짜는? 여기 커피 얼마나 비싼데. 5천원 6천원해." 

잘 나가는 카페의 커피 시세를 알 턱 없는 엄마는 5,6천원이라는 말에 입을 떡 벌린다. 

"아니, '이런데서' 커피를 그렇게 비싸게 판다고?"

"엄마가 몰라서 그래. 여기 지금 얼마나 잘 나가는덴데? 이것 봐, 사람이 엄청 많잖아. 자리도 없네."

엄마는 2차충격으로 입을 떡 벌리다 못해 혀를 끌끌 찬다. 


O카페는 해방촌 신흥시장안에 있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지 모르니 실명은 밝히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이미 카페투어를 하는 사람이라면 다 알만한 곳이다. 몇십년 전 부잣집 소리 들었을 2층 양옥집 내부를 때려 부수고 난 뒤,  콘크리트를 그대로 내버려둔, 이른바 콘크리트 노출 인테리어다.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백열등 전기 배선은 공사하다 멈춘 듯 위태로운 매력을 발산한다. 먼지 낀 나무창 너머로 하얀 썬팅이 발린 옆집 창문이 마주보인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쇠 방범창은 박물관에서 뜯어온 것처럼 녹 슬어 있다. 구획화되지 못하고 얼기설기 만들어진, 전형적인 80년대 주택가 모습이다. 카페 중앙에는 학교 다닐 때 쓰던 책상에, 거칠게 마감된 나무탁자가 카페의 놓여있다. 계단은 직각수준으로 좁고 가파라서, 관절이 안 좋은 엄마는 한 계단마다 에고고 소리를 감추지 않았다.      


“엄마가 요즘 유행을 몰라 그래. 더럽긴 한데 뭔가 신경 써서 더럽잖아.”

말을 뱉고 보니 나도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신기하게도 인스타에서 그렇게 힙하다고 소문난 이 O카페가 엄마의 눈으로 보니 아무리 잘 쳐줘도 부수다 만 공사판이다.  

“엄마 저거 봐. 젊은 애들 인터넷에 올릴라고 다들 사진 찍고 있잖아.”

“제 정신들이 아니구만.”

엄마의 기가 찬 말에 결국 터진 웃음을 주체하지 못해 진땀이 났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2,30대였고 그들은 모두 가장 너저분한 구석을 찾아 가장 예쁜 표정을 짓느라 분주했다. 퇴색해가는 낡은 것들 사이에서 그들의 생기는 기묘할 정도로 빛을 발했다. 어쩌면 레트로라는 것은 죽음이나 재건축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젊은이들에게만 어울리는 잔치인지도 모른다.


그건 O카페뿐만 아니라 신흥시장이라는 재래시장의 운명과도 비슷하다. 낡은 재래시장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살린 신흥시장은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갑자기 유명해졌다. 인스타에 #레트로 #갬성 #복고 #빈티지 같은 해시태그가 달리기 시작하더니, 연예인 노홍철이 책방을 내고, 백화점에나 입점하는 고가의 커스텀슈즈샵이 분점을 낼 정도로 핫플레이스가 된 것이다. 먼지 낀 다시다 간판을 단 슈퍼가 여전히 장사를 하고 있고, 그 옆에는 세련된 베이커리 카페가 들어서 있는 식으로 어느것이 레트로를 표방한 것이고 어느 것이 진짜 가게인지 헷갈린다.  진짜 생선과 진짜 과일을 파는 초로의 상인은 구색맞추기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이 바로 신흥시장이다. 



O카페는 그런 신흥시장 안, 상징이라 할만한 곳이다. 제대로 레트로라면 다방커피나 냉커피를 내야 하는데 그건 또 아니다. 보통 이렇게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인테리어를 하는 카페들은, 고급 원두를 다루는 스페셜티 전문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80년대의 가난을 소비하는 21세기의 전형적인 방법이다. 카페고어의 눈으로 보고 있자면 담장에 뾰족하게 박아둔 유리조각조차 빛을 반사하는 가우디 인테리어 같다. 실상은 한 집 털면 다음 집, 곶감털리듯 주주룩 털리는 좀도둑 방지용 임시방편이었는데 말이다. 좀도둑이 사라진 요즘, 그 유리 조각들은 가난의 시대를 반추하는 화석으로 남았다. 그건 재개발지역인 우리 동네의 운명하고도 비슷하다. 그러고보니 요즘 우리동네에도 꽤 레트로한 카페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힙함과 구질구질함은 종이 한 장 차이이니까. 


요즘 세대에게 재개발지역은 놀이 공원같은 가상의 공간, 한때 존재했었다고는 하나 박물관에서나 보아왔던 것을 직접 체험하는 곳이다. 생활과 연결되지 않으니 그들의 힙함은 안전해진다. 그러나 나의 엄마에게 재개발지역은 현실이며 현재진행형이다. 안 그래도 지저분하고 낡은 것들에 평생 치여 산 엄마가, 돈을 줘가면서까지 이것들을 즐길것이다 생각했던 것은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다음에는 앤틱가구가 있고 인테리어가 덜 힙한 곳으로 모셔야겠다고 생각해본다. 


그러나 저러나 O카페의 플랫화이트는 맛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