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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베티 Oct 18. 2022

해방촌의 봄

해방촌 업사이드카페 


그 카페를 간 것은 순전히 해방촌 성당 앞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해방촌 성당을 찾아간 것은 우쿨렐레 강좌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유치원 졸업반이 되던 해, 우연히 용산지역신문에서 무료 우쿨렐레 강의 소식을 봤다. 집에서 해방촌까지 40분 남짓, 아이 하원 시간까지 좀 빠듯해도 시간을 쪼개면 못할 것도 아니었기에 일단 신청부터 했다. 

무료 강의라고 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건만 의외로 연륜 있는 교수님의 정통 클래스였다. 선생님은 이태리에서 만돌린을 전공한 분이시라 귀여운 악기라고만 생각했던 우쿨렐레를 이태리 용어부터 제대로 클래식하게 가르쳐 주셨다. 한 번 들어보고 영 아니면 나오지 말아야지 했는데 첫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로 악기를 구입했다. 


정말이지 눈부신 5월이었다.


내가 우쿨렐레를 처음 알게 된 것도 어느 해 5월이었다. 대학원 첫 학기를 보내던 어느 봄, 밤을 새워 읽어도 기본 원서도 다 읽지 못해 만성피로에 시달리던 나는 학교 언덕배기를 걸어갈 힘도 없어 늘 셔틀을 탔다. 고바위를 힘겹게 올라가는 셔틀은 꼭 경영관 앞 푸른 잔디밭에서 한 번씩 숨 고르기를 하고 부앙~하고 인문관 쪽으로 올라갔는데 그럴 때면 버스에 탄 사람들은 경영관 앞 잔디밭에서 나이만으로 예쁜 대학생들이 젊음을 마음껏 뽐내고 있는 장면을 감상해야만 했다. 마치 학교 홍보 사진을 찍기 위해 설정한 것처럼 과하게 눈부셨다. 그 장면이 내 기억에 콕 남아있었던 이유는, 다 늙어 학업을 시작한 탓에 체력도 지력도 딸리고 봄인지 여름 인지도 알지 못하는 내 처지와 너무나 상반되어서였다. 어느 날도 피곤에 절어 그 경영관 앞을 지나던 중 우연히 하와이 우쿨렐레 가수 Iz의 what a wonderful world / 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듣게 되었다. 이상했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아니 가라앉았던 마음이 폭풍처럼 살아났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까? 


'아! 봄이구나!! 그래 참 봄이었지!! 왜 몰랐지?'

사실 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었다. 그렇게 잊고 있던 봄을 마음에 불어넣던, 그 햇살 같던 악기가 우쿨렐레였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고 그 악기를 내가 직접 손에 쥐게 된 것은 십몇 년이 지난 후였다. 


우쿨렐레를 배운 지 한 달쯤 되었을까?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선생님, 이 악보에 '도' 아래는 어떻게 치는 거죠?"

"우쿨렐레에는 ‘도’ 아래가 없어요."

선생님은 여태 그것도 몰랐냐는 듯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도’가 치고 싶으면 바리톤, 테너 우쿨렐레를 데려와 이중주를 할 수도 있고, 튜닝을 해서 ‘도’ 아래음을 만들 수도 있고, 높은 ‘시’를 낮은 ‘시’로 대체할 수 있다고 했다. 그제야 그 통통 튀는 밝은 음색의 비밀을 알 수 있었다. ‘도’ 아래가 없는 악기라니! 너는 사랑할 수밖에 없구나!!


그렇게 나는 우쿨렐레와 사랑에 빠졌고, 가볍게 시작했던 우쿨렐레 지도사 자격증을 따느라 꼬박 일 년을 해방촌으로 출근했다. 우쿨렐레와 악보를 짊어지고 보성 여중고 앞에서 내려 해방촌의 오래된 시장 골목을 따라 십여분 쯤 내려가면 성당이 보였다. 열심히 연습한 것을 선생님에게 보여드리러 가는 길은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으러 가는 길처럼 신났다. 정말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열심히 연습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까지 30여분 정도의 애매한 짬이 났다. 점심은 굶어도 커피는 마시고 싶어 성당 바로 앞에 있는 써니 업사이드 카페에 들렀다. 카페에는 동네 주민들이 마실 들르듯이 들어와 안부 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작은 규모라 흔한 동네 커피집이라고 생각했는데 로스팅 룸도 있고 인스타각 사진을 찍으러 오는 커플들도 있는 걸 보니 나름 알려진 카페인 것 같았다. 시그니처 커피가 있길래 그것을 주문해보았다. 그러나 막상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란 말에 나는 0.5초정도 멈칫했다. 소주잔 보다 조금 더 큰 잔에 나온, 갈색의 걸쭉한 그 커피는 양이 너무 적었다. '그냥 아메리카노 시킬껄. 장난하냐. 딱 세 모금이네.' 나는 속으로 투덜대면서 자리로 와 일단 한 모금 마셨다.


어?


그런데 그 커피는 그때까지 내가 마셨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맛있었다! 깊고 진한 맛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더없이 잘 어울리는 그런 맛. 에스프레소처럼 과하지 않고 라떼처럼 무겁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건 플랫화이트였다. 그 '커피'가 꼭 마시고 싶어서 다시 찾았던 첫 카페가 바로 써니사이드업카페였을 정도로 그날의 커피는 대단했다.


커피맛도 커피맛이지만 써니 업사이드카페는 창도 넓고 볕도 잘 들었다. 겨울의 해방촌은 골목골목마다 피할 수 없는 냉기가 돌아다니는데 집으로 가기 전 커피 한 잔하며  몸을 녹이좋았다. 얼마나 볕드는지 창가에 탱자나무 화분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카페 한가운데 구식 난로가 놓여있고 물이 끓는 마저도 해방촌 다웠던 써니 사이드업 카페. 그 따스한 온기가 우쿨렐레 같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라도 함께 할 것 같은 우쿨렐레를 그 이듬해 접었다. 정확히 1년 만이었다. 여수에 출장을 다녀온 뒤부터 몸이 너무 안 좋아졌던 것이다. 계속해서 어지러웠고, 머리는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눈 감고도 칠 수 있던 음악의 코드를 짚는 것도 너무 힘들었고, 앉아만 있어도 식은땀이 났다. 힘든데 왜 어떻게 힘든 건지도 설명할 수가 없어 병원 투어를 다녀야 했다. 


얄궂게 그것도 5월이었다.


선생님께 작별인사를 하고 마지막 수업이 끝난 뒤, 성당 안 성모상 앞에서 잠깐 앉아 있었다. 믿지도 않는 신앞에서 답을 구하며 몇 분을 울었다. 얼마 뒤, 써니사이드업 카페도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고 내 빛나던 해방촌의 봄이 그야말로 완전히 끝난 것 같아 나는 조금 많이 울적했다. 


사실 그 카페는 써니사이드업 카페가 아니라 업사이드 카페다. 업사이드라는 이름은 해방촌의 산티아고 순례길 같은 언덕배기 때문에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름을 기억 잘하는 내가 유독 그 카페 이름만 두루뭉술하게 기억하는 것은 햇살이 가득한 그 이름이 그 카페와 더 잘 어울렸고, 나 혼자 그렇게 부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업사이드 카페는 성수동으로 옮겨 커피 핫플이 되었다. 그러나 사장님은 인스타그램에 해방촌을 떠나왔지만 업사이드의 돌아갈 날을 꿈꾼다며 카페 보드판해방촌에서의 업사이드 카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성수동의 업사이드 카페 한 구석에서 플렛 화이트를 손에 쥐고 마음속으로 사장님과 건배를 외쳐본다. 해방촌의 그 봄을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시작점이 ‘도’인 내 사랑하는 악기를 떠올리면 해방촌의 기억, 업사이드 카페의 햇살이 비즈처럼 딸려온다. 그때도 지금도 눈부신 것들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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