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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연한출발 Jan 25. 2019

일본에서의 첫 아르바이트

그리고 퇴사하는 날. 고마웠어요 ...!

백수 왕 시절


2016년 4월.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교토에 왔다.

7년이 넘는 장거리 연애 동안 열 번도 넘게 놀러온 일본이었지만 생활은 처음이었기에 천천히 적응 기간을 갖기로 했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도시락을 싸주고 동네를 산책하거나 남편과 여행을 다니며 10개월을 주부...라기 보다는 백수 왕처럼 잘 놀며 지냈다.


일이 하고 싶어졌다. 한국에서 미리 일본어 자격증인 JLPT N1을 따놓긴 했지만 사실 일본어를 제대로 써본 적은 없었다. 남편과의 대화 외에는 동네 슈퍼에서의 몇 마디가 전부였고 1급을 갖고 있다해도 진짜 실력보다 중국어 덕이 컸던 합격이었다. 경어 사용이 필요없는 중국에 비해 한국보다 엄격한 경어 사용이 요구되는 일본의 비즈니스 상황에 뛰어들기가 다소 무서웠지만 잔뜩 지루해졌던 나는 일단 부딪쳐보기로 했다.


일본에서 아르바이트 구하기


내가 갖고 있는 일본 체류 비자는 일본인 남편과 결혼해 취득한 ‘배우자 비자’로 근로 가능 시간이 자유롭다. (가족 비자나 학생 비자의 경우 주 28시간 등의 제한이 있다.) 사업주가 비자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조건이다.


구인 정보를 찾는 방법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구직 사이트, 한국의 노동부 기관격인 ‘하로워크ハロワーク’, 편의점이나 시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무료 구인 잡지에서 정보를 구한다.


내가 원하는 조건은

1. 출퇴근 거리 : 30분 이내

2. 한국어/중국어 활용 가능 업무

3. 평일 주간의 고정된 시간


이렇게 필터링을 거치니 생각보다 맘에드는 자리는 많지 않았는데 눈에 들어오는 정보가 있었다.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검수하는 게임 번역 아르바이트 자리. 한국 번역회사에서 검수 업무를 한 경험이 있어 더더욱 반가운 자리였다.


집에서 버스로 30분 거리. 하루 7시간. 주 5일 근무. 게다가 구내 식당이 있는데 한끼에 250엔...!


이력서와 면접


이력서를 썼다. 일본은 아직도 이력서를 자필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글씨를 반듯하게 쓰느라 한참이 걸렸다. 이력서를 보내고 일주일 후 면접 일정이 잡혔다. 아주 정중한 말투로 전화가 걸려와서 진땀을 뺐다.


면접 당일. 아르바이트 면접이고 비교적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에 정장까지는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남편의 말에 단정한 원피스에 구두를 신고 갔다. 다행히 면접에 합격을 했고 계약서를 썼다.


일본에서의 첫 아르바이트


일주일, 이주일의 어리바리한 신입의 시간을 보내고나니 일과 사람들에 적응이 되었다. 업무도 적성에 잘 맞았다. 아르바이트 자리여서 그랬던 건지 이 회사의 특징인지 모르겠으나 마감도 여유로운 편이었고 칼퇴는 당연했다. 나와 같은 외국인 번역 스탭들, 일본 스탭들과 함께 일했는데 모두가 친절했고 농담도 자주 나누며 편안한 분위기에서 일했다.


그 사이 나는 계획했던 임신을 했고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렸다. 팀의 총 책임자인 과장님은 본인 일처럼 임신을 축하해주었고 몸조심해야 한다며 사람들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바꿔주고 의자도 바꿔주었다.


퇴사하는 날, 그 동안 고마웠어요...!


납작했던 배는 점점 불러왔고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이 왔다. 퇴사하는 날... 평소처럼 일을 했지만 중간중간 묘해지는 기분에 자꾸만 멍해졌다. 퇴근 10분 전 석회 시간. 외국인 스탭 리더가 내게 마지막 스피치를 제안했다.


그동안 여러모로 신세를 졌습니다.

일본에서의 첫 직장으로 모두들 친절하게 대해 주셨기에 정말 즐겁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아기를 낳고 다시 교토로 돌아올 거니까 교토 어딘가에서 저를 만나게 되면 말 걸어주세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럼 건강히!


이 몇 마디를 하는데 목이 얼마나 메던지... 일부러 친했던 사람들의 눈을 피해가며 겨우 눈물을 참고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마쳤다. 다행히 과장님이 농담으로 마무리를 지어주어 나도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아마도 그들을 금방 잊을 거고 그들도 날 금방 잊겠지만, 오늘의 아쉬운 마음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마지막 퇴근길, 회사에서의 자잘한 추억들을 곱씹으며 집에 왔다. 수고했어요! 하며 반기는 남편의 인사와 ‘퇴직 축하’ 편지에 참았던 눈물이 났다.


좋은 이별이었다.


남편의 ‘퇴직 축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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