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마흔의 의미

나를 위한 변명

by NoZam

언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이 마흔 인 아저씨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음... 마흔, 인생을 많이 산분이구나. 내가 저 나이쯤이면 무얼 하고 있을까? 멋진 아내와 한둘 쯤 되는 아이들, 안락한 집, 조금은 고급스러운 승용차, 그리고 여유로운 생활...'

지금 내 나이가 마흔이다.
어릴 적 품었던 나이 마흔 아저씨의 환상과 지금의 나는 참 많은 차이를 갖는다.
일곱 살 난 딸아이 하나...
이젠 늙어서 조금씩 기력이 쇠해 가시는 부모님...
1년 전, 아내와는 이혼을 했고...

서른 중반을 넘기면서 위축된 마음에 참 많은 밤을 고민으로 새웠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도 구분하지 못하면서 나와 가족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고생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생활.

어떻게 보면 나이 마흔이 되기 전, 나는 혹독한 불혹에의 전입신고를 했다.
가정이 깨지고, 알량하나마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아파트도 이혼하면서 아내에게 넘어갔다.
이젠 어머님께서 내 밥상을 차려주신다.
늙으셔서 기력이 쇠잔해 가시는 걸 보면서도 무엇 하나 해드릴 여력도 없는 나...

이 나이에 이 정도면...
글쎄, 이쯤에서 인생이 막을 내린다면, 아마도 나는 실패한 인생일 거다.

주말에만 만나는 아빠에게 사랑한다며 연신 뽀뽀를 날리는 일곱 살 수민이.
수민이가 없었다면, 부모님이 안 계셨다면 어쩌면 이쯤에서 나는 포기라는 단어를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나는 새해맞이 준비를 했다. 10년을 넘게 쓰는 일기장과 노랑색 만년필도 하나 새로 장만했다.

새 일기장을 샀다는 건 일기장을 채울 날들이 아직 남아있고, 스스로 그걸 자각하고 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적어도 10년을 넘게 써야 할 매일 매일이 내게는 준비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런 믿음이 아니었으면 무얼 하러 그런 무모한 새해 준비를 했겠는가?

인생은 조금은 긴 여행, 또는 천천히 걸으며 사색을 할 수 있는 산책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 인생은 고속열차가 아니다. 천천히 걸으면서 잘못된 길에 들어섰을 때는 고개 들어 사방을 살피고 그렇게 방향을 수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포기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포기라는 단어를 싫어하기로 했다. 포기하는 순간, 모든 것은 그냥 정지되는 것이다.
내 삶을 포기한다는 건 내게 있어 내일이 없다는 걸 의미한다.

난 한 번도 재빠르게 움직여 본 기억이 없다.
국민학교 시절, 100m 달리기도 20초를 넘기는 바람에 친구들과 선생님의 경악에 찬 표정을 봐야 했지만, 난 내가 100m를 달렸다는 사실에 만족했던 기억이 난다.
군 시절, 말년 병장보다 밥을 늦게 먹는 군기 빠진 신병이라는 소리를 듣고 수없이 얼차려를 받으면서도 밥 먹는 속도는 항상 느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난 한 번도 포기해 본 적이 없다.
단지 조금 늦춰졌을 뿐이다.

공고를 졸업하고 나서 대학엘 가고 싶다는 생각에 전문대학엘 진학했다.
군 제대 후엔, 더 공부하고 싶어서 편입을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대학원엘 진학했다.
85학번인 내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보니 2002년이 되었다.
남들이 불과 6년 만에 끝내는 과정을 17년이 걸려 마무리 지은 것이다.
그래도 난 내가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한 것에 대해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난 한동안 시간강사로 일을 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했다.
그러는 동안 제대로 돈벌이가 되지 않아 생활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고민도 많이 했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대리운전을 하면서도 난 가르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분명한 건 아직도 난 선생의 꿈을 접지 않았다는 것이다.

얼마 전, 일기장에 그렇게 적었다.
5년 후, 교육전문가로 활동하기
그게 대학교수일 수도 있고, 직장인, 사회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 강사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교육전문가가 될 것이다.

마흔, 불혹이라고 불리는 나이이다.
불혹,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는 나이이다.

잘 생각해보니, 맞는 말인 것 같다.
적어도 내가 해서는 안 되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구분할 수 있는 정도의 혜안을 갖게 된 것 같다.
해서 안 되는 일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만큼은 나를 다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불혹인가 보다.

반환점이라는 말이 있다. 보통 절반쯤 가면 반환점을 돌아 출발지로 돌아간다. 인생에도 반환점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나이 마흔이 아닐까 싶다.

이 반환점에서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살아온 만큼만 더 산다고 한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흔적을 기반으로 하여 다시 나아가는 게다.

사람 한평생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번쯤 다른 삶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믿는다.

그게 나이 마흔이다.

내 나이 이제 마흔이다.

** 글을 읽는 분들께 혼란(?)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아 사족을 답니다.

** 다른 글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글 역시 오래전에 썼던 것입니다.

** 당연히 지금 제 나이는 마흔이 아닙니다. 이 글은 마흔이 되던 해에 쓴 글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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