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일주일 간 이 바이크를 오키나와에서 렌트했습니다. 오키나와 전역의 풍경좋고 길좋은 도로를 빠짐없이 누비며 느낀 것들을 공유해 보겠습니다.
일단 이 바이크를 렌탈한 가장 큰 이유는 국내에서 타보기 힘든 기종이기 때문입니다. 실은 이 기종을 렌트하기 직전에 스즈키의 S1000GT를 빌렸는데 브레이크 문제로 바꾼건데, 의외로 좋은 선택이 되었습니다.
오래전에 CB400SF를 즐겁게 탔던 기억도 있고 해서 맘 편히 선택한 것도 있는데, 최신 바이크인 S1000GT를 탄 직후에 이 바이크에 타니까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고전적인 옛날 네이키드 바이크의 포지션이었습니다. 핸들 폭이 좁아 앞으로 나란히 팔을 뻗게 되면서 핸들을 적극적으로 조작한다기보다 뒷바퀴에 체중을 실어서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만드는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옛 바이크 느낌이 확 나서 놀랐습니다. 이것도 2018년식인가 정도는 되는 바이크였는데 말이죠.
아무튼 이 바이크는 직렬 4기통 1300cc 수랭 엔진을 장착한 혼다의 플래그십 네이키드 바이크입니다. 혼다에서는 꽤 역사 깊은 기종이기도 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CB 시리즈의 맏형이기도 합니다. 슈퍼 볼도르라는 이름은 레이스에서 가지고 온 명명인데, 방풍이 가능한 프론트 하프카울이 달려있는 버전입니다. 그냥 스탠다드는 슈퍼 포라고 부릅니다.
엔진은 오버리터라서 일단 토크가 무척 좋습니다. 저회전부터 묵직하게 밀어주는 토크는 시내주행에서도 굉장히 맘 편하게 가속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무척 부드러운 엔진 회전 질감이 안심하게 해 주고 사실상 무서운 토크인데도 자신 있게 다룰 수 있게 해 줍니다. 클러치는 약간 무거운 편이지만 시내주행만 아니라면 피로감은 없었습니다.
앞 뒤 타이어가 120, 180으로 미들급 스포츠바이크 세팅인 것이 의외입니다. 따라서 핸들링이나 차체 움직임이 체급에 맞지 않게 굉장히 가볍습니다. 실제 무게는 260kg도 넘는 것으로 아는데, 다룰 때는 미들급 4기통 바이크 느낌정도일 뿐입니다.
라이딩 모드가 스탠다드, 스포츠, 레인이 있는데 스포츠 모드로 두면 정말 경쾌한 필링으로 바뀌면서 4기통 엔진만의 쏘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바뀝니다. 사실 첫날은 비가 와서 스탠다드모드로 다니다가 이튿날부터 땅이 말라 스포츠 모드를 사용해 봤는데, 너무 신세계여서 반납하는 마지막 날까지 스포츠 모드로 모든 도로를 활보했습니다.
오키나와 북쪽은 천혜의 와인딩 코스가 몇 시간 동안 이어지는 길이 많습니다. 차량도 거의 없다시피 하고, 길도 아주 깨끗합니다. 정말 지칠 때까지 와인딩을 탔었는데, 이 바이크는 오버리터인데도 사람을 흥분시키며 한계까지 쓰게 만듭니다. 너무 다루기가 쉽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고회전을 막 쓰기는 어려운 게, 토크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중간회전 정도에서 풍부한 토크로 가속 감속을 반복해 주며 리듬 있게 달리면 편안하면서도 즐겁게 와인딩을 즐길 수 있습니다. 혼다의 바이크란 이런 맛이구나 싶더군요. 느긋한 가운데 한계를 알아차리기가 쉽습니다.
라이딩 포지션이 편안한 편이라 가끔 스트레칭만 해주면 종일 달려도 괜찮은 편입니다. 이제 40대라 한 시간마다 쉬어주는 것이 좋긴 한데 아무래도 렌탈 바이크는 시간 제약도 있고 하다 보니 좀 무리했는데도 큰 피로감이 들지는 않더군요. 특히 시트는 투박하게 생긴 모양인데도 엉덩이에 피로감은 거의 없었습니다.
전자장비로는 ABS, 트랙션컨트롤, 크루즈 컨트롤뿐입니다. 계기반은 옛날 네이키드 바이크의 두 개 원형 속도계, 회전계가 전부이고 가운데 작은 디지털 액정에 다양한 정보가 표시됩니다. 기어단수라든지, 연료계 같은 기본적인 것들이요. 재미있는 건 프론트 카울 양쪽으로 조그마한 수납공간이 있는데, 깊이가 꽤나 깊어서 휴대폰이나 여행용 배터리같은 큼직한 것들이 꽤 들어간다는 겁니다. 나중에는 여기에 500밀리리터 음료페트도 넣고 다녔습니다. 뚜껑은 안 닫혔지만 괜찮더군요. 충전 포트도 있고요.
오버리터 치고는 연비도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리터당 15~20킬로미터는 나왔던 거 같습니다. 알피엠을 꽉 차게 쓰고 다닌 것 감안하면 좋은 연비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받게 된 기종인데 이렇게 만족스러울 줄은 몰랐습니다. 한 번은 오키나와 최북단에 에도 곶이란 곳으로 떠났는데, 그 근처에 오프로드 길이 많았거든요. 이 바이크가 얼마나 몸에 잘 붙던지 오프로드도 막 들어가서 달렸다니까요. 260킬로가 넘는 1300cc 네이키드 바이크로말이죠. 이런 거 보면 정말 타기 쉽게 만든 혼다 마인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쉬운 일제바이크보다는 아무래도 모난 매력이 있는 유럽제 바이크를 몇 개 가지고 있지만, 여행 같은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다루기 편한 것이 제일이더라고요.
일주일간 매일 바이크만 타고 돌아온 오키나와 투어는 한겨울 바이크 타기 좋은 곳은 역시 오키나와겠지... 하면서 떠난 바이크 전용 여행이었기 때문에, 너무나 만족했습니다. 렌탈 과정에서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바이크 덕분에 다 잊고 재밌게 놀다 올 수 있었어요.
혹시 이 기종에 대해 더 궁금하신 게 있으면 댓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좋아요 구독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