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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May 16. 2019

 상처에 관한 쓸모있는 이야기

-아프지마오 약국 보고서2. 상처에 관한 고찰

 팔과 다리 한쪽이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어 약국을 찾아온 환자가 있었습니다. 화장실에 가려다 어지러워 넘어졌다는데 식구들 누구도 몰랐다고 합니다. 한밤중 차가운 타일 바닥에 얼마나 오래 누워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면서도, 짐짓 삽상한 말투로 집이 너무 넓어서 그래요 약사님 호호호, 그랬습니다.

 그 삽상함 뒤 언뜻 보이는 그늘 같은 것...그래서 더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다행히 멍이 심하게 들지는 않았지만 다친 부위가 꽤 여러 군데라 당귀수산 과립제와, 흔히 메디폼이라 부르는 하이드로콜로이드 밴드를 좀 넉넉히 주었습니다. 위로의 말에 덧붙여, 다른 회사 사은품으로 나온 플라스틱 가위와 작은 손거울도 함께요.     


 상처가 얼마나 깊었던지 진물을 빨아들여 잔뜩 부풀어 오른 밴드를 (보통은 사나흘 만에 갈아주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벌써 세 번을 갈아붙였다며 다음날 다시 찾아왔습니다.

 잘 붙도록 끝을 동그랗게 오려 주라고 했던 내 말을 따라서 밴드는 예쁘게 잘 붙어 있었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고름이 가득 차 있다고 여길 만큼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푼 채로 말이지요.


 당신이 입었던 상처는 지금 (상처에서 나오는 진물을 흠뻑 빨아들이며) 잘 관리되고 있는 것이니 곧 아물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였습니다.     


 단편 「왼손」에서 삽화를 그리는 주인공 말희는 상처에서 나오는 진물과 흉터의 상관관계에 관한 최신 정보를 언급하며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곪은 상처를 터뜨릴 수 있으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상처에서 나오는 진물에는 피부 재생에 필요한 성분이 들어있다. 지금도 가끔 내게 컷 일을 주는 어느 제약회사에 다닌 덕에 아는 풍월이다. 아무리 사소한 상처라도 딱지가 앉기 전 처음부터 돌보고 치료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단편 「왼손」 (2008년 월간문학 6월호) 중에서.    


 상처 치유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형성된 시기는 지금부터 칠십 년이 채 안 된다고 합니다. 동물학자인 영국의 조지 윈터는 1962년, 상처는 건조시키는 것보다 적당한 수분이 함유됐을 때 40% 정도 빠르게 회복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했습니다.

 이전까지는 딱지가 앉아야 상처가 빨리 치료된다고 알려져 있었지요. 의성(醫聖)이라는 히포크라테스조차도 “상처는 감염되지 않도록 건조시켜 딱지를 만드는 것이 최선의 처치”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사람들은 상처를 ‘히포크라테스’적으로 생각합니다. 꾸덕꾸덕 딱지가 앉은 상처를 보며 이제 거의 아물었구나 하고 느끼는 거지요.

하지만 애초에 딱지가 생기지 않도록 촉촉하게 젖은 상태를 유지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재생 상피세포가 만들어지고, 잘 아물어요. 그런 의미에서 하이드로콜로이드 밴드를 우리말로 '습윤' 재생 밴드라 번역한 것은 제품의 특성을 아주 잘 나타낸 드문 경우라 생각합니다.

 상처는, 그렇게 낫는 것입니다.


 “이제 그 상처는 아물어 어느새 딱지가 앉았다”는 식의 문학적 진술은 그러니까 매우 무책임하며, 상처의 치유에 대한 은유로도 실은 부적절합니다.   


 아래의 진술은 문학적 진술과는 달리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진술이므로 일부러 문장으로 쓰지 않았습니다. 도표를 만들거나 삽화를 넣는 건 내 능력 밖이라 아쉽군요.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냥 건너뛰어도 무방합니다. 이걸 몰라도 상처가 아무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상처는 의학적으로 염증기와 증식기, 성숙기를 거쳐 회복됩니다.     

1.염증기     

통증과 함께 진물이 나오는 시기다.

진물은 죽은 피부세포나 이물질을 배출시키고, 세균을 없애 상처를 깨끗이 하는 역할을 한다.

기간은 사나흘 정도 걸린다. 이때 재생 상피세포가 만들어진다.     


2.증식기    

염증기에 생성된 재생 상피세포가 이제 상처 면을 따라 피부를 덮기 시작하면서 증식기로 이어진다.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 실핏줄이 만들어져 피부세포의 증식을 돕는 시기로 3주쯤 지속된다.    


3.성숙기

세포 결합이 단단해지고 불필요한 실핏줄이 없어지면서 정상적인 피부 빛깔을 되찾는다.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린다.      


권 약사의 꿀팁   


 “그럼 여기에 약이 발라져 있나요?”

 “실리콘처럼 생긴 그런 거 있잖아요.”

 “방수도 되나요? 공기가 안 통해서 더 안 좋은 거 아닌가요?”    


 * 위에서 말하는 건 모두, "진물이 너무 많이 나와서 떼어버렸다"고 울상을 짓기도 하는,하이드로콜로이드 밴드를 이르는 말입니다. 밴드를 붙였기 때문에 진물이 많이 나온 게 아닙니다. 그만큼 상처가 깊다는 뜻입니다.    


* 시간이 지나면 투명한 부분이 하얗게 부풀어 오릅니다. 잘못된 게 아닙니다. 잘 낫고 있다는 것이고 새로 갈아달라는 신호입니다.


* 여러 브랜드가 있습니다. 일회용 포장으로 된 것도 있고 덕용 포장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흔히 여드름패치라 부르는 것도 이런 종류입니다.


 * 약이 발라져 있어서가 아니라 상처의 진물을 보호해서, 즉 촉촉한 상태를 유지해 치유하기 때문에 약을 바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어지간해선 물이 안 들어가니까 목욕하거나 세수할 때 따로 방수필름을 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 상처가 마르지 않게 습윤 상태를 유지시키는 것이라 생각하면 의문이 풀립니다.


 * 가벼운 화상에는 써도 되지만 물집이 잡힐 정도의 깊은 화상에는 쓰지 않습니다.    


 * 끝으로, 이런 셀프케어 제품들은 사용법을 잘 숙지해서 쓰도록 합니다. 

  



 상처 치유에는 이렇게, 의학적으로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물며 내적인 치유까지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상처에 대해 혹은 치유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그대의 상처는 이제 아물었나요.

 그대 부디, 아프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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