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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May 23. 2019

'사의 찬미'와 생의 찬가

    -아프지마오약국 보고서 3. 동정과 연민에 관한 고찰

 동정과 연민은 때로 이렇게 해석됩니다.


동정은 행동으로 표출되고 연민은 마음으로 표출된다. 동정보다는 연민 때문에 우리는 더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묶인다. 동정하는 사람은 타자를 통해 내 자신은 그것을 이미 갖고 있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자긍심을 느낀다. 연민하는 사람은 타자를 통해 내 자신도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결핍감을 느낀다.

  (김소연의 『마음사전』 중에서)    


 얼핏 동정보다 연민을 더 감정적 우위에 두는 듯한 이 해석도 물론 좋아하지만 나는 밀란 쿤데라의 해석을 차용해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동정(同情, compassion)은 접두사 ‘콤’과, 라틴어에서 고통을 의미하는 ‘파시오passio’로 이루어진 영어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의 고통에 동조함을, 즉 고통스러워하는 이에 대한 공감을 뜻하지요. 라틴어와는 달리 우리말은 고통 대신 '情'(감정)을 넣어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고통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감정도 함께 느낄 수 있으며, 가슴 아파하고 위로한다는 점에서 우리말 동정(同情)이야말로 "남의 어려움을 딱하고 가엽게 여긴다"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따뜻한 단어가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지요.




 난데없이 웬 동정과 연민이냐고요?

 내가 일하는 일터, 약국에서 나와 타인과의 만남은 일회성에 그치기도 하고, 헤어졌다 다시 이어지기도 합니다. 지금부터 나는 내가 어느 날 두 여자를 다시 만났고, 그날 느꼈던 특별한 감정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한 여자와는 그날 세 번째 만났습니다. 몹시 지친 모습으로 처음 약국에 와, 깊은 인상을 남겼던 사람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그녀가 일부러 나를 찾아 왔었지요. 아버님은 돌아가셨어요, 하면서요. 내가 권해주었던 베타인과 아르기닌이 들어간 피로회복제 앰풀을 박스째 달라고 했습니다. 암으로 입원한 부친을 간호하면서 부부가 다 쇠약해져 있었던 것이 기억났고, 내가 권해주었던 약이 지친 몸과 마음에 큰 도움이 되었음을 알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오랜 병환이었던지 슬픔 속에서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허탈함과 안도감과, 또 피로가 엿보였습니다. 

 한동안 보이지 않았는데, 마침 그날 쇼핑할 일이 있었는지 마트 계산대를 통과해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계산대와 약국의 거리는 뭐랄까 모른 체 지나치기에도 알은체를 하며 다가오기에도 딱 적당한 거리라고 나는 늘 생각하고 있지요. 이번에는 내가 먼저 알은체를 했습니다. 

  “아, 좀 앓았어요. 좀 멀리 이사도 했고요.”

 그러고는 잊어버리고 갈 뻔했다는 몸짓과 함께 부부가 함께 복용할 만한 비타민제를 추천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냥 갈 수도 있었을 텐데 먼저 인사를 건넨 내게 뭔가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 씀이 참 고운 분이었던 거지요.

 그 후로도 우리는 몇 번 조우했습니다. 그때마다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잘 살고 있는지 묻고, 더욱 더 잘 지내길 바라는 인사를 남기곤 하지요.      


 또 한 사람은 보자마자 금세 얼굴과 상황을 기억할 정도의 짧은 시간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처음 왔을 때 그녀는 아버지가 병원에 오래 계시다 퇴원을 하셨는데 욕창인 것 같다며 여러 가지를 묻고 또 물었더랬습니다. 직원 하나가 일찍 들어간 날이라 손이 모자랐음에도 오래 나를 붙들고 있는 그녀를 나는 전혀 불편해하지 않았습니다. 욕창은 이미 시작되면 손쓰기 어렵다고, 솔직히 말하면 약국에서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다는 내 고지식함에 그녀는 무척 절망하는 눈치였었죠.    

 그런 딸이, 그래도 뭔가 도움이 되고자 사갔던, 상처에 뿌리는 파우더와 하이드로 콜로이드 밴드를 써보지도 못한 채 아버지가 결국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도 약국에 왔던 바로 다음날이요. 

 상을 치르자마자 물러 달라고 온 그녀의 심정을 나는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필요하다며 사간 제품을 물러 달라 다시 오면 누구라도 유쾌하지 않을 터이지만 나는 깊이 이해했습니다.

 아마 쳐다보기도 싫었을 겁니다. 약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고, 분명 그건 크나큰 고통이었을 테지요. 얼마나 큰 상처였겠습니까.... 내가 담아주었던 상태 그대로, 봉투째 내미는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더 허둥댔습니다. 신용카드 승인을 취소해야 하는데, IC칩을 읽을 수 있게 단말기에 꽂는 것까지는 했는데, 다음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이었습니다. 전표에 적힌 승인번호를 눌러야 하잖아. 그런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뭐야 이건. 왜 내가 이러는 거지. 여자의 눈에도 이슬이 맺혔습니다. 

 우리 만남은 내 어설픔으로 그렇게 허둥지둥 끝이 났습니다. 위로라거나, 공감이라거나 하는, 12년 전 똑같이 이런 4월에 아버지를 보낸 딸로서 할 수 있는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한 채로요. 


 연민 때문에 우리는 더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묶인다. 마음이 묶여버려서 연민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이 그날의 내 감정을 더 잘 설명하고 있군요.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영애의 <비하인드 타임> 시디를 플레이어에 넣고 이 노래를 들었습니다.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로다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네가 아느냐

 세상에 것은 너에게 허무니 너 죽은 후는 모두 다 없도다 


 후렴은 이렇게 반복됩니다.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가사를 옮겨 적으려다 기억력의 한계에 부딪쳐 리플릿을 컨닝했습니다. 아 이런. “허영에 빠져”라는 아주 단순한 가사를 나는 지금껏 “허연 백(魄) 빠져”라고, 매우 형이상학적으로 듣고 있었네요. 혼魂과 백魄의 차이를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내 현실감각은 늘 왜 이렇게 꽝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바노비치의 곡에 가사를 붙여 만들어진 게 1926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거의 백 년 전이군요. 요즘이라면 현해탄, 동반자살, 자유연애, 염세주의자 등의 해시태그가 붙었음직한데 윤심덕의 죽음이 어떠했는지 아니 그 삶이 어떠했는지,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요.    


 오늘은 특별한 죽음이 있었던 날입니다. 최근에 저도 존경하는 선생님을 잃었습니다.

 사람은 가고, 삶은 계속됩니다. 삶은 그런 것이지요.  


 두 사람 다 건강한 모습으로 약국을 찾아올 날을 기다립니다.

 아닙니다. 찾아올 일이 없기를, 다시는 아프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대 부디, 아프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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