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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Jul 29. 2022

우울하지만 품위 있는,  부끄럽지만 도도한

부다페스트의 두 얼굴

다뉴브 강에 해가 지고 있다. 멀리 부더 성과 요새가 보이고, 유람선은 유유자적  낭만을 즐기며, 강변에 주인 잃은 신발을 조각해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강에.


 이 한 장의 사진이 부다페스트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다뉴브 강을 사이에 두고 부더와 페슈트로 나눠진 도시의 두 얼굴이 보인다.


 비가 올 것이라고 해서 우산을 준비했으나 다니는 내내 대기는 아주 맑고 하늘은 푸르러 눈이 부실 정도였다. 하지만 날이 저물자 뜻밖에 먹구름이 까맣게 몰려들었다.


 위.

 멀리 부더 성과 어부의 요새와 마차시 성당이 있는 왕궁지구가 보이고, 찌를 만큼은 아니지만 조금은 까칠하게 하늘로 솟은 성당의 첨탑들에 불이 들어와 있다. 헝가리 사람들은 건축물에 공을 들여 불을 밝힌다. 조명에 진심이다.


 한 가운데

 다뉴브 강에는 유람선이 한가하게 떠 있다. 미소와 쾌활함으로 내닫는 티없이 맑은 아이들처럼. 웃음과 음악과 음식이 함께한다.


 아래.

 강가에 주인을 잃은 신발들이 흩어져 있다. 슬픈 신발들은 강을 향해 어지럽게 놓였다. 사람들은 양초를 가지고 와서 신발 속에 혹은 깡통 안에, 또다른 불을 밝힌다.


 부다페스트에도 큰 게토가 있었다. 유대인 43만 명이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수용소로 보내졌다. 패전의 기색을 보이자 나치는 부다페스트를 떠났고, 이후 소련군이 들어오기 전까지 다뉴브 강 양편 둑에서 1만 명이 넘는 유대인이 총살됐다. 이 학살을 자행한 것은 놀랍게도 헝가리의 '화살십자가당'이었다.


 거리에서 레스토랑에서 또 마켓에서, 도무지 웃음기가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역사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흑해 부근의 초원을 떠나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온 머저르족은 이미 터를 잡고 있던 슬라브족을 몰아내고 철저한 이방인으로서 왕국을 세웠다. 15세기 후반 마차시 1세 황제(유명한 마차시 성당의 그 마차시)의 황금기를 끝으로 1918년 독립공화국을 세우기까지 오스만 제국에 이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는 길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왕국의 역사는 열등감과 자긍심을 혼재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나치 독일과 손을 잡았던 부끄러운 현대사는 1956년의 반소(反蘇) 혁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며, 책임감과 피해의식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게 한다.

 부다페스트의 우울은 어쩌면 거기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수박 겉핥기 식 내 깜냥의 속단....


 페슈트에서 성 이슈트반 대성당이며 국회의사당, 헝가리가 추앙하는 언드라시 등 여러 인물의 동상들, 코슈트 광장 건너 국회의사당 못지 않게 공을 들인 민속박물관을 건성 보고 돌아오는 길에 조금 독특하고 특별한 공간을 만났다. 서버드샤그 광장이었다. 부다페스트에서는 서버그샤드란 단어를 자주 만난다. 자유를 뜻한다.

코슈트 광장에서 본 국회의사당(사진1)
소비에트 전쟁 기념비.  러시아어라는 것은 알겠다. (사진2)

 원래 병영 감옥을 허물고 만든 자유의 광장이었으나 소련이 헝가리를 나치로부터 해방(?)시켰다는 동의할 수 없는 명분을 내세워 소비에트전쟁기념비를 전후에 건립하면서 자유라는 의미가 변질됐달까.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유대인을 추모하는 공간이라기보다 '소련'을 위한 곳이라 여겨졌다. 그후 소련은 헝가리를 공산화하고 내정에 간섭했다. 실제로  '독일 점령 희생자 기념비'(사진3)를 세울 때 의식 있는 헝가리 지식인들은 극렬히 반대했다고 들었다. 유대인 학살과 범죄를 주도한 것은 나치에 동조한 집권세력인 화살십자당이었으 역사를 부정하고 독일에 전적으로 책임을 돌리는 파렴치함에 반대한 것이다.


 이렇게 동구권 시절의 잔재가 그대로 남은 공간임에도 부근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헝가리국립은행과 증권거래소, 미 대사관과 레이건 전 미국대통령 동상이  었다. 이념은 개나 주라고 그래. 페슈트 지역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활기차고 번화한 도심이었다.


 희생자 기념비 주변은 철조망을 둘렀다. 철로 된 뽀족한 가시 위에 신문 기사와 낡은 사진과 가방들을 전시하고 홀로코스트의 추악함과 잔인함을 드러냈다. (사진4,5)

독일 점령 희생자 기념비(사진3)
설치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갖다 놓은 것처럼 보인다(사진4)
'황금'열차를 연상하게 하는 가방(사진5)
성 이슈트반 대성당(사진6)
(사진7)
민족(문화인류학 )박물관(사진8). 농업박물관과 버이드휴녀드 성이 있는 시민 공원으로의 이전을 준비 중이었다.


 헝가리 관광청은 여행객을 위한 안내 책자에 헝가리 정부가 저지른 학살 현장, 그 부끄러운 역사를 상징화한 <다뉴브 강의 신발>을 정직하게 싣고 있다. 수치스러운 과거도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인정하는 태도라 여겨졌고, 헝가리는 일본과 다르게 이를 용인하는 국민적 동의가 있는 성숙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숙함 혹은 도도함.

 

 도시는 아름답고 중후하나 사람들은 우울해보이고 그러면서도 도도하며 품격을 갖추되 뭔가 부끄러워하는 듯한 이 묘한 이중성은 두고두고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광장 근처  화창한 하늘과 구름의 어울림이 예뻐서  뭔지도 모르고 그냥 찍었다 관광객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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