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로 흘러 들어가기 전 부다페스트를 휘돌아 나가면서 강은 아름다운 다리를 지나고 고풍스러운 건물과 광장, 터널과 기념비들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세체니 다리가 가장 아름답다고들 하지만 독특한 철골 구조를 가진 서버드샤그(자유) 다리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혹자는 이 대목에서 똑같이 철골로 된 칙칙하고 멋대가리 없는 한강의 다리들을 떠올리면서, 아름답다는 나의 수식어를 의아하게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서버드샤그 다리의 올리브 그린에 가까운 짙은 녹색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육중함과 날렵함을 모두 충족시키면서 다뉴브 강을 가로지른다. 구조는 또 어떠한가. 가장자리의기둥 두 개는고압적이지 않게 적당히 높고, 완만한 U자를 그리며 서로 이어지는데 그 턱이 멀리서 보기에도 독특하게 낮다. 1896년 개통될 때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마지막 리베(못)를 직접 결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부다페스트의 젊은이들은 그야말로 '문턱이 낮은' 이곳에 걸터앉아 다뉴브 강으로 떨어지는 해를 보며 맥주를 마신다고 한다. 낭만이 물씬 묻어나는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이 다리의 끝에는 19세기 유럽에서 최초로 설립된 공과대학의 역사를 가진 부다페스트 공대가 있고, 얼핏 기차역처럼 보이지만 전통시장인 중앙시장(센트럴마켓홀) 건물이 다리의 존재감을 더해준다.
중앙시장은 시장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쇼핑몰에 가까웠는데 시장의 규모와 높이가 압도적이었다. 토커이와인과팔린커, 푸아그라와 파프리카는 물론 전통 문양을 수 놓은 자수용품 같은 헝가리쿰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서울의 한강 다리에는 한때, 투신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설득하는 문구가 붙어있기도 했었다. 제1한강교 가운데 턱의 오르막 부분에 번들거리는 철판을 덧댄 사진을 본 적이 있는가. 최소한 더는 올라갈 수 없게 한 그 물리적인 안전 장치가 더 슬펐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CCTV 가 설치됐다고 들었다.
부다페스트의 젊은이들은 그린색자유다리 위에서 맥주를 마시며 아름다운 다뉴브 강의 일몰을 감상하고... 가슴 아픈 대조다.
멀리 좌측 끝이 중앙시장, 앞으로 보이는 건물은 부다페스트 공대 건물.
노란색 도자기 지붕을 인 3층짜리 전통시장과,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공과대학을 끼고 있는 둔 아름답고 자유로운 녹색의 다리라니. 아이러니하면서도 잘 어울리지 않는가. 대학이 있으면 죄다 <OO대 입구>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문학적이기까지 하다.
노란 트램이 다리를 통과할 때 보여주는 노랑과 초록의 조화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트램이 지나가기를 기다려 다리로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 젊은이들처럼 손을 들어 수줍게 밖으로 뻗으니 겨드랑이 사이로 살짝 바람이 지나갔다. 내 날개를 들어올리는 바람. 노래 가사처럼 wind beneath my wing, 찰나의 자유로움을 느껴본다.
문득자유는 무슨 색일까 생각했다.
부다페스트 사람들은 서버그샤드(자유)에 녹색을 입혔다. 자유는 역시그린이야. 그래서 그린브릿지, 자유의 다리가 태어났던 거지.... 엉뚱하고도 싱거운 이런 말장난 혹은 낱말놀이.